04.‘완전한 나’가 아니라 ‘온전히 드리는 나’가 될 때 회복이 시작됩니다:커피를 통해서 하나님을 이야기하는 사선희 대표
- 보현 전
- Jul 22, 2022
- 10 min read

Q: 본인과 하시는 일에 대해서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A: 커피 로스팅과 교육을 주로 하는 사이펀 커피랩을 운영하고 있는 사선희입니다. 2001년부터 커피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커피가 좋아서 커피 관련한 일을 시작했는데 좋은 선생님들을 만나서 배우다 보니 벌써 20년 넘는 시간을 커피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커피와 관련된 일을 하던 중에 남편을 만나서 결혼하고, 믿음으로 결단하고 홍대에서 카페를 열었는데 큰 실패를 맛보았습니다. (사선희 대표의 남편인 안대민 사이포니스트는 사이폰 국제 대회 월드챔피온이자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국제 대회에서 심사위원을 맡은 사이폰 전문가이다.) 너무 큰 상실감에 일을 쉬고 싶었지만, 남편을 비롯한 주변에서는 제 경력이 단절되지 않도록 일을 계속하라고 권유하셨습니다. 저는 망원동에 있는 작은 교회를 섬기고 있는데 저희 남편과 세 아이 그리고 목사님 가정 그리고 어르신 몇 분 밖에 없는 정말 작은 규모의 교회입니다. 목사님께 저는 일을 쉬고 싶고 남편은 계속 경력을 이어가기를 바라는 상황을 말씀드리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여쭈어보니 어떤 결정을 내려도 좋은데 남편과 뜻이 같도록 하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남편 뜻에 순종해서 일을 하기는 하지만 하나님께 구체적인 조건을 걸고 안 들어주시면 하지 않겠다는 막무가내 같은 기도를 했습니다. 당시에 일을 하기 싫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위치는 1층이어야 한다거나 보증금은 얼마에 월세는 얼마를 넘어서는 안된다 같은 핑계 같은 기도였습니다. 그러던 중 동네의 자주 지나다니는 길에 있는 상가 1층에 임대 공고가 붙어있어서 “하나님 저 일해야 하면 여기서 하게 해 주세요.”라고 마음속으로 기도했는데, 정말 그 일이 이루어졌습니다. 처음 중개사 분과 방문했을 때는 저의 재정 상태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곳이라 포기했었는데, 저희 집에 오신 시어머니와 함께 가게 앞을 지나다가 왜 계약을 하지 못했는지 이런저런 말씀을 나누던 중, 건물주 분이 우연히 저희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가능한 조건에 맞춰 주셔서 계약을 하게 되었습니다. 신기하기도 하고, 이런 세밀한 기도까지 들으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면서 두려움도 생겼습니다. 그렇게 사이펀 커피 랩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사이펀 문을 연 날에 교회 식구들과 함께 사업장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목사님께서 한 고등학생 친구에게 기도를 부탁하셨습니다. 그 친구가 어떤 생각으로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이 하나님이 일하시기 적합한 곳이 되도록 해달라"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 이후로 이곳에서 커피로 이어진 많은 분들을 만나고 있는데, 이분들과 하나님에 대해서 대화하면서 이곳이 하나님을 전하는 공간 그리고 하나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공간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대화를 통해서 힐링이 되었다는 분들도 많이 계시는데 어떤 특별한 일을 한다기보다는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 안에서 제가 경험한 하나님을 발견하고 공감해 주는 일 자체가 그분들에게는 힐링의 경험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제가 누군가의 이야기를 공감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그런 만남이 주어지지 않지만, 제가 무언가를 들을 수 있는 때에는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가 필요한 분들을 만나게 해주시는 것 같습니다.

Q: 말씀 중에 큰 실패라고 하셨는데, 어떤 일이었는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A: 결혼할 당시에 저도 신앙적으로 뜨거워지던 시기였고 남편도 다시 신앙을 회복하던 시기였습니다. 당시 저희 아가씨가 본가에서 혼자 지내고 있었는데, 나이도 어린 아가씨가 혼자 지내는 게 마음이 많이 쓰였습니다. 저희 신혼집에 아가씨도 같이 살기로 하고 저와 남편 그리고 아가씨와 뱃속에 있는 큰 아이의 동거가 시작되었습니다. 저희 입장에서는 나이 차가 많이 나기도 했지만, 저희가 아가씨를 전도했기 때문에 신앙적으로도 아가씨를 잘 인도하고 싶었습니다. 신혼부부와 시누이가 같이 사니까 이상해 보일 수도 있었지만, 셋의 관계가 너무 좋아서, 주변에서도 우애 있게 지내는 저희 모습을 참 예쁘게 봐주셨던 것 같습니다. 가족이 신앙 안에서 하나가 되면서 첫째를 낳고 둘째를 낳았습니다. 이 후 공교롭게 저희가 모두 일을 쉬게 된 시기가 있었고, 자연스럽게 셋이 같이 카페를 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와서, 꽃 관련된 일을 하던 아가씨와 함께 꽃과 커피가 함께 있는 플로럴 카페의 콘셉트로 홍대에서 카페를 시작했습니다. 저희가 믿음으로 결단하고 시작한 일이고 저희 모두 하나님을 기쁘게 믿고 있던 때라, 실패한다는 것은 생각하지도 않았던 때였습니다. 여호수와의 성경구절처럼 법궤를 메고 요단강을 건너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하면 물이 멈추는 기적이 저희 카페에서 일어날 것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저희가 함께 기도하고 내린 결정이었기 때문에 카페 운영에서도 교회 생활이 우선되었습니다. 당연히 주일은 교회에 가야 하니까 쉬고, 수요일과 금요일은 주중 예배 참석을 위해서 일찍 문을 닫았습니다. 가장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시간에 가게를 열지 않으니까 월세를 내기에도 빠듯한 상황이 이어졌습니다. 주변에서 오랫동안 장사를 해오신 분들이 보시기에는 말도 안 되는 운영이었습니다. 그렇게 카페 운영이 어려워지면서 너무 완벽한 가정 교회 같던 저희 가족 간에 서로에 대한 실망과 원망들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셋째가 뱃속에 있는 상태로 바를 지켜야 해서 체력적으로도 너무 힘든데, 남편은 어떻게 손을 써야 할지 무력감에 빠져서 자주 자리를 비우고, 아가씨는 꽃들이 팔리지 않아서 시드는 데도 이를 방관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저로 인해서 남편도 아가씨도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더욱이 저희를 돕기 위해서 친정 엄마까지 함께 살고 있는 상황에서 남편이 겪었을 스트레스는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듯합니다. 또한, 한참 즐거울 스물네 살 아가씨도 아무런 경제적 수입이 없이 가게에 매어있는 상황이 힘들었을 듯합니다. 저 역시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운 한계에 이른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카페를 닫기로 결정했는데, 인테리어까지 원상복구를 해주고 나오느라 재정적으로도 큰 손해를 보고, 가족 간의 관계도 최악으로 치닫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을 먹다가 더 이상 이렇게 지내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날이 마침 금요일이었는데 뭐라도 해결을 짓자는 마음으로 교회에 기도하러 가자고 했습니다. 9시에 교회에 가서 12시가 다 되도록 울고 원망도 하면서 기도했던 것 같습니다. 셋이 예배당에서 돌아오는 길에,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각자의 거짓된 자아였나 보다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희가 서로 사랑한다고 생각하고 고백했는데, 자기의 필요에 의해서 사랑한다고 생각한 것은 아닌가? 정말 사랑했다면 힘든 시기에 원망이 아니라 그 사람에 대한 걱정이 앞서야 하는 게 아닌가? 과연 내가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화평이 아니라 검을 주러 오셨다는 말씀이 이런 경우를 두고 말씀하신 것 같았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이 그걸 깨닫게 하려고 그 어려움을 주셨는가?”라고 묻는다면 확실하게 답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저희 세 사람이 그날 울면서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고 내린 결론이 우리가 사랑할 수 없는 존재들이라는 점만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저희가 내린 결론이 카페 실패 경험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었는지는 지금도 모르겠습니다. 그 후에 연남동에 작은 교육장을 시작했고, 위에 말씀드린 이야기처럼 건물주 분께서 호의를 베풀어 주신 망원동 자리에서 8년 동안 사이펀을 운영할 수 있었습니다. 얼마 전 건물주가 바뀌면서 임대료가 너무 올라서 지금은 마포구청 근처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망원동에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 생기면서 임대료가 많이 올랐습니다.
저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저의 모든 상황을 아신다면, 저희 가정의 재정 상황 그리고 저의 씀씀이까지도 아신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씀씀이가 큰 사람이고 지금 우리 집 통장이 비어있는 것도 아시는데 하나님께서 그냥 두시겠어?” 이런 무모한 믿음이 있습니다. 제가 커피에 대한 열정이 있고 열심히 커피에 대해서 공부해 오기는 했지만, 사업적으로는 많이 미숙합니다. 주변에서 더 홍보하고 더 마케팅하면 사업적으로 더 잘 될 텐데 그런 활동을 왜 하지 않는지 많이 궁금해하십니다. 사이펀을 시작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으로 먹고살겠다고 서원했는데, 제 게으름인지 서원을 지키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찾아오시는 분들을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문 닫지 않을 만큼만 주시는 것 같습니다.

Q: 섬기시는 교회가 목사님 가정과 사선희 대표님 가정 두 가정 그리고 몇 분의 어르신들이 계신다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지금 다니시는 교회에 나가게 되셨습니까?
A: 당시 일하고 있던 곳의 대표님께서 지금 다니는 교회의 목사님과 성경 공부를 하고 계셨는데, 대표님께서 제가 논리적이고 꼼꼼하게 따지는 성격임을 아시고는 소개해 주셨습니다. 결혼 전에 커피를 공부하려고 케냐에 있는 커피 농장에 가려던 때가 있었습니다. 커피 공부가 명분이었지만, 막연하지만 오래전부터 케냐에 대한 마음을 주셔서 계속 마음에 품고 있던 땅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동양인 젊은 여성이 혼자 아프리카에 간다고 하니까 두려운 마음이 있어서, 목사님께서 해주시는 기도를 받고 출발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당시 교회에서 부흥회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목사님 뵈러 간 길에 부흥회에 참석해서 뒷자리에 앉아있었습니다. 기도 제목을 적어서 내는 시간이 있었는데, 저는 “왜 제가 여기에 있어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적어냈습니다. 부흥회를 인도하시던 강사 목사님께서 이 기도 제목을 보시고 매우 건방진 기도 제목이 있다고 하시면서, 제가 인생에서 아주 부끄럽게 여기는 기억을 언급하시면서 그 순간에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계셨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 조차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을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서 듣게 되니 놀랍기도 했지만 아주 불쾌했습니다. 제 비밀이 그런 식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에 대해 화가 났습니다. 부흥회가 끝나자마자 친구들을 만나서 화를 내면서 엄청 술을 마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다음 날이 되니까 제 비밀이 드러난 데 대해서 화도 나지만, “정말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어떻게 하지?”라는 두려움이 들었습니다. 둘째 날도 예배당에 가서 부흥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제일 뒷자리에 삐딱하게 앉아서 집회가 끝나기를 기다렸습니다. 부흥 집회 참석이 목적이 아니라, 강사 목사님을 찾아가서 어떻게 저의 과거를 아셨는지를 따져 물으려고 간 것이었습니다. 그 목사님께서 믿지도 않는데 왜 왔는지 제게 물으시더니 제가 여쭈었던 질문에 대해 답은 안 주시고, “그런 너도 하나님이 사랑하신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정말 그 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자리에 주저앉아서 울고 있는데 아마 교회 분들은 제가 신앙적으로 무엇인가를 깨달았다고 생각하셨겠지만, 제 마음속에는 그동안 하나님을 부인하고 살았는데 살아계시면 어쩌지라는 두려움과 강사 목사님이 제 비밀을 어떻게 아셨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더 크게 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둘째 날 집회가 끝나고 나니, 제 마음속에 있던 비밀이 드러난 것에 대한 분노는 많이 사라졌습니다. 마지막 날이 되었고, 케냐로 출발하기 위해 짐을 빼야 하는 날도 다가왔습니다. 왠지 마지막 날 집회에 참석하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사님께 문자로 더 이상 부흥회는 참석하지 않겠다는 말씀과 그동안 감사했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방에서 짐을 빼고 케냐로 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께서 마지막 날이니까 와서 집회 마치고 같이 기도하고 가면 어떻겠냐고 답장을 주셨습니다. 고민하다가 집회 시간에 예배당에 갔는데, 들어서면서부터 눈물이 나고, 무릎 꿇고 앉아서 집회 내내 찬양하고 기도했습니다. 회개한다 잘못했다는 말을 정말 많이 했고, 예수님 사랑한다는 말도 정말 많이 한 것 같습니다. 다음 날이 되어서 평소의 저와 너무도 다른 집회에서의 제 모습을 보고 나니 스스로 이중인격같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목사님을 뵙고 인사를 드리는데, 목사님께서 지금의 교회에 남아서 섬길 것을 권면하셨습니다. 그리고 집회 중에 제가 느꼈던 불쾌감에 대해서 사과하시면서 그 상처는 교회가 같이 보듬고 가겠다고 하셨는데, 그 말씀에 정말 큰 신뢰감이 생겼습니다. 목사님 면담 후에 교회에 가장 가까운 곳에 집을 새로 얻고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벌써 15년 정도 이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Q: 세 아들을 키우시는 엄마이기도 하신데, 주일학교가 없는 아이들의 신앙 교육 어렵지 않으신가요?
A: 아이들을 키우면서 주변에서 소위 시스템이 잘 갖추어진 교회로 옮기라는 권유도 많이 받았습니다. 주중 내내 부부가 일하는 사정을 아시니까 주일이라도 아이들이 교회의 돌봄을 받는 게 좋지 않겠냐는 말씀이었습니다. 저도 어린 시절 다녔던 주일학교에서 배운 성경 말씀 그리고 찬양이 제가 비록 교회를 떠나 있는 시간에도 제게 오랫동안 영향을 미치고 있었는데, 저희 아이들은 그런 경험이 없겠구나 싶은 마음에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저희 가정이 교회를 떠나면 목사님 가정과 어르신 세 분만 남게 되기 때문에 그런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지나고 보니 저희가 교회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저를 지켜준 것 같습니다. 제가 교회를 지킨다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이었음을 깨닫습니다. 여전히 저는 미숙하고 실수가 많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저 자신을 정죄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지금도 실패도 하고 실수도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쓰러져도 하나님 안에서 쓰러진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희 아이들은 아무런 이벤트가 없는 교회에 다니고 있습니다. 주중 예배에 가면 애들이 너무 지루해서 그냥 예배당 의자에 누워있기도 하고, 핸드폰을 보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그런 모습이 바른 예배 태도가 아닌 것 같아서 나무라기도 했는데, 그냥 교회라는 공간과 그 분위기에 익숙해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목사님께서도 아이들이 노는 것 같아도 영으로 다 듣고 있다고 아이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시기도 합니다. 프로그램이 잘 갖추어진 교회와 다르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아이들 각자가 자신의 모습으로 교회에서 자라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교회라는 공간에서 보낸 어린 시절이 하나님을 떠나 있는 동안에도 제게 영향을 주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Q: 방금 쓰러져도 하나님 안에서 쓰러진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의미인지 좀 더 자세히 설명을 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A: 위에서 지금 섬기는 교회를 어떻게 섬기게 되었는지 말씀드렸는데, 그 이후에 결혼하고 세 아이를 키우는 동안에, 목사님께 1:1양육 받고 교회 봉사하고 모든 교회 예배에 참석하면서 말 그대로 교회에서 살았던 시간이 7년 정도 됩니다. 아마 주변에서는 정말 믿음이 좋은 사람으로 보였을 것 같습니다. 제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는데, 교회를 나가면서 술도 싫어지고 그런 자리도 즐겁지 않게 되었습니다. 삶이 바뀌다 보니 이전의 많은 관계들이 끊어졌습니다. 저희 목사님께서 죄에 대해 아주 예민하시고, 순결을 강조하시는 영향도 있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죄를 짓지 않을까를 생각하다 보니, 모든 일이 조심스러워졌습니다. 생각 자체를 멈추면 죄를 짓지 않을 것 같았는데 그럴 수는 없으니까 늘 불안하고 조심스러운 마음이 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삶의 모습이 많이 바뀌었지만, 목사님께서 말씀하시는 기준을 따르지 못할 때는 저 자신을 부정적으로 보았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만 동시에 제 마음 안에 여전히 연약한 부분이 있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7년 동안 술도 완전히 끊었을 뿐 아니라, 록이나 헤비메탈 같은 음악은 듣지도 않고 복음성가나 찬송가만 듣는 그런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들 아빠와 심하게 다툰 날, 그래도 연락이 끊어지지 않았던 친구들에게 술 한잔 사달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몇 년 만의 일탈이었는데 제 연약함을 억누르고 살아온 삶에서 자유로워지는 듯한 해방감과 함께 마음을 짓누르는 죄책감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지금까지도 일탈과 모범적인 삶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더 성숙해지면 해방감과 죄책감이 줄어들 수도 있겠지만, 그 성숙함을 거부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아직 저 스스로가 그렇게 성숙한 사람이 아닌데, 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예배도 늘 기쁨이 넘치는 것만은 아닌 것 같고, 기도하다가 눈물이 나면, 복음성가 가사나 멜로디가 좋아서 그런 것인지도 잘 모를 때도 있습니다.
쓰러진다는 것은 하나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거나 혹은 교회로서 모범적인 삶을 살아내지 못한 때를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실수와 실패의 순간에 저의 부족함이나 연약함이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 쓰러진다는 것은 저의 부족함과 연약함 모두 주님께서 아시기 때문에 감추거나 숨기지 않고 은혜를 구하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가 저의 부족함을 채워서 완전하게 만들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제 삶이 어느 순간 광야에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광야에서는 의지할 곳이 하나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또 나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가릴 그늘도 없는 것 같습니다. 제게 있어서 하나님 안에서 쓰러진다는 것은 연약하고 부족한 상태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 그 연약함과 부족함으로 인해 실수하고 실패하지만 그 순간에 나의 한계를 깨닫고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Q: 왜 하나님께서 커피 일을 하게 하셨다고 생각하십니까?
A: 한동안은 왜 나는 커피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많이 고민했습니다만, 지금은 이 질문에 부족하지만 답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커피를 통해서 사람들을 만나게 하시는 것 같습니다. 제 일의 가장 큰 매력은 커피 한 잔을 통해서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분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입니다. 제가 커피에 관련된 세미나를 자주 진행하는데 저는 제가 크리스천임을 꼭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커피를 통해서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저의 많은 실패와 실수들이 다른 분들께는 위로와 치유가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커피는 저라는 사람을 가장 솔직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부족하지만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좋은 커피를 만들고 그 커피를 통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제가 만난 하나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전도지를 들고 거리에서 나누어주는 것보다 제가 가장 자연스럽게 예수님을 전할 수 있는 자리가 바로 커피와 함께 하는 자리입니다. 얼마 전에 어떤 분께서 어떻게 하나님을 믿는지 물으셨는데, 정확하게 설명하기 어려웠습니다. 믿으려고 노력했던 때는 믿어지지 않았는데, 지금은 믿어진다고,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이 인정이 된다는 점만 솔직하게 말씀드렸습니다. 그런 대화를 통해서도 하나님께서 일을 하시고 사람들에게 자신을 드러내심을 보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커피는 하나님이 제게 주신 일이라는 생각이 더욱 분명해집니다. 제가 성경에 깊이 빠져 있을 때, 사모님께서 신학을 공부해 볼 것을 권유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미 커피를 하고 있는데요.”라고 답을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커피를 주셔서 제가 커피를 통해 사람들을 만나고 또 그 사람들과 하나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Q: 한국 교회를 보시면서 가장 마음이 아프신 점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그럼에도 우리가 희망을 놓지 않아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A: 최근 20대와 30대의 크리스천이 줄어들고 있어서 많은 분들이 걱정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최근 어떤 선교사님의 말씀을 들었는데 신학교에 가셔서 말씀을 선포하시는데 젊은 신학생들이 올바르지 않은 자세로 경청하지 않는 것을 질책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개인의 자유가 중요하지만, 잘못된 행동이 자유로 포장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도 듭니다.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말씀을 안 듣기 때문에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기 때문에 듣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본인들을 마주할 수 있는 말씀을 들어야 하는데 한 쪽에서는 교회의 죄나 잘못에 대해서만 너무 강조하시면서 잘 하고 있는 것은 없는 것처럼 질책하시거나, 다른 쪽에서는 교회의 삶이 아무 문제 없이 마냥 아름답다고 형통하다는 말씀으로 양극화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저에게 삶은 그렇게 평화롭고 아름답지만은 않습니다. 삶의 현장에서 신앙 생활을 한다는게 아주 힘들고 치열하다고 생각합니다. 힘든 싸움을 해내야 하는 삶이 있고 한편으로 교회 공동체에서 누릴 수 있는 임재와 평화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두 세계 안에서 살아내야 하는 20대와 30대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말씀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꾸짖을 때는 꾸짖어주고 격려할 때는 격려해 주는 어른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커피에 관심이 있는 20대와 30대들을 많이 만납니다. 이 세대들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이해하는게 중요합니다.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면서 그들의 언어로 소통할 수 있는 목회자들이 많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한편으로는 한국교회가 갖고 있던 전통적인 힘이 사라지고 있어서 안타깝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주일학교 다닐 때 만난 선생님들은 한 명이라도 더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려던 그런 끈질김이 있으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헌신으로 채워지던 부분들이 지금은 ‘하나님께서 너와 늘 함께 계셔’라는 은혜의 표현들로 대체되는 것 같은 느낌이 있습니다. 교회가 말씀에 대한 실천과 헌신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교회가 다른 사회 조직과 무엇을 달리 보여줄 수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상호 간의 인격적인 배려와 존중이 사람들이 서로 관계 맺기를 포기하는 이유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기 때문에 한국 교회에 아직도 희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은 몇 세대를 거쳐도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요즘 제 삶의 목적에 대해서 많이 생각합니다. 광야 같은 삶을 지나면서 나만 바라보다가 죽을 수도 있겠지만, 제가 예수님을 알았고 그분의 살아계심을 믿어서 지금도 그분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면 내 인생에서 가장 가치가 있는 것은 바로 예수님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내 인생을 모두 다 올인해도 후회가 없을 목적이 바로 예수님이라면 인생을 올인할 그 방법을 찾는 것입니다. 아직 제가 솔로몬처럼 많은 것을 가져보고 경험해 봐서 모두가 헛되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내게는 살아계시는 예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 진짜 지금도 살아계시는 하나님이 있으시다는 것이 그리고, 그게 믿어지는 것이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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