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이웃과의 인격적인 관계에서 복음이 전해집니다:예술을 통해 소외된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는 최정은 대표
- 보현 전
- Jul 29, 2022
- 9 min read
Updated: Sep 23, 2022

Q: 본인과 하고 계시는 일을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A: 안녕하세요? 최정은 성도입니다. 지금 예술융합연구소 새론이라는 1인 기업을 통해서 예술을 통해 다양한 분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새론은 ‘새로운’이라는 순 우리 말의 줄임말입니다. 1인 기업을 시작하기 전에는 뮤지컬이나 연극 무대에서 배우로 활동해왔습니다. 새론은 주로 뮤지컬, 연극, 무용을 기반으로 다양한 예술융합교육을 제공하는 회사입니다.
Q: 배우라는 직업은 하고 싶다고 도전할 수 있는 직업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어떻게 배우가 되셨습니까? 그리고 예술융합교육이라는 개념이 좀 생소합니다. 어떤 개념인지 궁금합니다. 또 어떤 계기로 이 분야에서 일하게 되셨는지요?
A: 학부에서는 국제관계학을 전공했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던 모범생이었는데 국제관계학으로 석사를 준비하다가 갑자기 연극에 대한 열망이 생겨서 전공과는 무관한 연극 영화를 전공으로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릴 때부터 “끼”가 있는 아이였는데, 저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주어진 목표에만 집중하고 살아오던 제 인생을 아버지께서 극적으로 인도해 주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최정은 대표는 하나님이라는 단어보다 아버지라는 단어를 사용하였기 때문에 이후에 언급되는 아버지는 특별한 언급이 없는 한, 하나님 아버지를 뜻함) 아버지께서 길을 지나도 연극 단원 모집 광고만 눈에 들어오게 하시던 때였습니다. (웃음)
연극 영화학으로는 한국에서 최고 명문인 학교에 합격했지만, 가정의 반대가 너무 심했습니다. 제가 부산에서 태어나서 대학교도 부산에서 마쳤는데, 갑자기 모범생 딸이 연극을 하겠다고 하자, 부모님께서 인정하시기가 어려우셨을 것 같습니다. 때문에 반가출하다시피 아무런 지원 없이 23살에 서울에 홀로 올라왔습니다. 친척 집에서 조금 살다가, 보증금 150만 원에 월세 15만 원짜리 컨테이너에서 제 서울살이가 시작되었습니다. 어렵게 시작한 연극의 길은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하지만 비싼 학비를 아르바이트로 혼자 감당하기 어려워 중도에 그만두고, 이후에 연극과 뮤지컬 극단과 무대를 홀로 찾아다니며 배우로서의 커리어를 쌓을 수 있었습니다. 현대 뮤지컬 극장 극단, 극단 쎄실, 국립극단을 거쳐서 어느 정도 안정적인 배우의 길을 가게 되었고, 배우로서의 입지가 생기면서 연기 지도를 하는 강사 일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가르치는 일이 적성에 잘 맞아서 연기뿐만 아니라, 뮤지컬을 준비하면서 배운 무용, 노래 등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강의를 요청받았습니다. 강사로서의 인지도가 생기면서 경제적으로도 안정을 찾게 되었는데, 경제적으로 윤택하게 될수록 점점 가르치는 일의 즐거움을 잊고, 돈 버는 일 자체에 더 많은 관심을 두게 되었습니다. 가르치는 아이들을 보면 한 명당 얼마씩이라는 계산을 하고 있고, 남자친구를 만나더라도 경제적인 조건 등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어린 나이에 혼자 독립해 경제생활을 하다 보니, 재물에 대한 집착은 점점 강해져 갔습니다. 작품에서도 내가 주연이 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모든 인간이 그렇듯 교만으로 가득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제가 쌓아 올린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누구에게라도 의지하고 싶은 마음에 동네에 있는 교회를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사회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너무 힘든 시간들이었습니다. 공연도 레슨도 모두 놓고 1여 년간 피트니스센터에서 잡무를 하며 다시 마음을 다잡아갔고,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인정해 주셔서 매니저로 승진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제 옆집으로 한 예술 단체의 대표님이 이사를 오셨는데 이 분이 제게 뮤지컬 관련 업무를 부탁하시면서 다시 예술 쪽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본격적으로 융합 예술이라는 분야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일하던 예술 단체는 뮤지컬을 기반으로 다양한 주제를 예술을 통해 스토리텔링과 공연으로 구성해 내는 작업과 교육 목적의 영어뮤지컬 등을 기획하고 있었는데, 이 일을 주도적으로 하게 되면서 예술 장르가 갖고 있는 교육적 효과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제가 경험한 연기, 춤, 노래 그리고 지도라는 요소들이 하나로 융합되어 일하는 것이라서 정말 재미있게 일했던 것 같습니다. 영어 뮤지컬을 기획하면서 제대로 영어를 이해하고 해야 한다는 생각에 영어교육학 석사과정까지 시작할 만큼 일에 대한 열정이 큰 시기였습니다.

Q: 그 경험을 바탕으로 바로 창업을 하게 되신 것인가요?
A: 저는 저 스스로를 콘텐츠 기획자 혹은 공연 기획자로 생각했지 제가 사업을 한다는 것은 생각해 본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교육을 목적으로 공연을 기획하다 보니, 교육과 예술에 대한 철학 없이 단지 수익을 위해서만 운영하고 있는 회사의 한계가 느껴졌습니다. 보다 양질의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서는 적절한 투자가 필수적인데, 투자는 고사하고 비용을 최소화해서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회사의 운영 방식에 동의하기 어려웠습니다. 당시 신앙적인 이유로 인한 것은 아니었지만, 금전적인 이익만을 추구하는 회사의 도구가 된 것 같아서 마음이 많이 불편해졌습니다. 회사에서는 교육을 단지 사업의 하나로만 보는데 반해, 교육생들을 만날수록 교육적 가치를 포기해선 안된다는 생각이 제 안에서 확고해졌습니다. 결국은 회사를 그만두고 남아있는 학업을 마무리하고 있는 중에, 주변의 권유와 도움으로 1인 창조 비지니스센터에 입주하면서 창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를 돌아보면 지금도 놀라운 게 아버지께서 강권적으로 사업을 통해서 예술융합교육을 하도록 하신 것 같습니다. 창업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는데 갑자기 모든 일이 순식간에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아마 제 의지로 혼자 하려 했으면 못했을 일인데, 벌써 창업한 지 6년 정도가 지났습니다. 주로 정부나 지자체에서 주관하는 문화 예술사업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제가 사업을 6년간 지속해 온다는 것 자체가 너무 놀라운 일이고, 오로지 아버지의 역사하심이라고생각합니다.
Q: 굉장히 열정적으로 살아오신 것 같습니다. 신앙생활은 어떠셨습니까?
A: 제가 한차례 위기를 겪을 때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지만 아버지를 인격적으로 만난 것은 저를 낳아주신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입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그 부재가 참 크게 느껴졌는데, 어느 날 하나님 아버지가 저를 사랑하고 계신다는 사실이 갑자기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처음 간 교회에서 복음에 대한 열정을 느끼지 못하고 어느새 선데이 크리스천처럼 되어가고 있던 즈음, 아는 연출 선생님의 권유로 작은 개척교회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이 교회에서 복음에 대해서 점차 배울 수 있었고 저 역시 스펀지처럼 흡수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힘들게 살아오면서 스스로의 의가 강하게 생겨나 있던 터라, 아버지를 알아가는 지식이 쌓일수록 겸손해지는 게 아니라, 지식을 율법 삼아 다른 사람들을 평가하고 있었습니다.당시 다니던 작은 교회는 목사님께서 편안한 교회 분위기를 만들려고 애쓰셨는데, 파격적이라고 느껴질 만큼 기존의 교회 생활과 차이가 컸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편한 자세로 예배를 드리거나 약속된 활동에 불성실한 모습을 보이면 제게는 아버지를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당시에 교회에서 하나님은 열심히 하는 걸 원하시는 게 아니라, 우리가 하는 것 자체를 좋아하신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는데, 제게는 자율이 아닌, 무질서한 모습으로 보이는 부분이 있어서 마음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정말 울면서 많이 기도했습니다. 그 시간을 통해서 예배의 본질, 율법과 복음에 대해 많은 생각과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중심이 중요하지만 그 중심이 성화되어가면, 자연스레 행동으로 표현되는 것인데, 그렇지 못한 교회 분위기에 다시 한번 혼란을 겪으며 뭔가 더 갈급한 마음이 쌓이게 되었습니다.
그 뒤에 자연스럽게 지금 섬기는 교회로 옮기게 되었는데, 교육 프로그램이 잘 짜여 있는 복음 중심의 교회여서 복음에 대해 열정이 커져 가던 제게 너무 좋은 환경이었습니다. 신앙도 복음도 급격히 성장하고, 주야로 아버지와 교제하는 게 너무나 행복해서 하루하루 감사와 눈물이 터져 나왔습니다. 절 보는 가족과 지인들이 변해가는 저의 모습에 놀랄 정도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러 간증 영상들을 보고, 어려운 이웃들을 만나면 만날수록 마음속에 의문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신앙이 너무나 훌륭한 크리스천들이 받는 고난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존재, 힘들게 살아가는 신앙인들, 그럼에도 순종해야 하는 섭리, 이것들이 너무나도 무겁게 다가오며, 아버지와 삼 개월가량 씨름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이 시기는 제 신앙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였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아버지를 신뢰하고 아버지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은 깨달았는데, 아버지가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고난의 이유, 아버지가 어떤 분인지, 무슨 일을 하시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는 제 자신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뒤로 물러날 수도 없고, 앞으로 나갈 수도 없는 상황이라 하나님을 붙잡고 매달리는 것 외에 방법이 없었습니다. ‘믿음을 믿기 위해’ 밤낮으로 분투하고 소리치며 매일 울었습니다. 그런데 믿음은 선물이라는 말씀처럼, 어느 날 저에게 의심스럽고 확신할 수 없던 말씀들이 그냥, 갑자기 믿어졌습니다. 아버지께서 어떤 사인을 보내주시지 않더라도 아버지의 존재와 일하심이 제 안에서 확신되었습니다. 아버지가 제 세포 하나하나와 피 속에 존재하며, 생생히 살아계신다는 것이 기적처럼, 은혜처럼 다가왔습니다. 달리 표현하고 싶지만, 그냥 믿어졌다는 것이 솔직한 표현입니다.
그 뒤로 제 자아가 많이 꺾인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아버지를 믿는 자의 삶은 어디로 가든 형통하다"라는 의미가 이전에는 좋은 일들이 계속 이어진다는 것으로 이해되었는데, 지금은 당장 눈앞의 일이 제 기준처럼 되지 않아도 결국에는 좋은 것을 주시는 길의 과정임을 알았습니다. 크게 보면, 제 삶의 끝에는 구원이라는 복된 삶이 있을 것이고 그것을 알고 살아가는 오늘이 바로 복된 날이기 때문에 늘 형통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일하시는 중에 어려움에 처한 가정의 아이들 혹은 어르신들을 만나실 텐데, 성도로서 좀 느낌이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그분들을 만날 때에 어떤 생각들이 드십니까? 그리고 교회가 그분들께 어떤 태도록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A: 처음에는 제가 이분들을 치유해 주어야 한다는 건방진 태도가 있던 것 같습니다. 융합교육을 통해서 이분들의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서 그 성공사례를 외부에 공유함으로써 어려운 이웃에 대한 사회의 관심을 모으는 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그런데 사회적 효과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네 내가 그분들보다 더 우월한 위치에 서서 그분들의 문제를 다루려고 하는 경향이 생기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매우 교만한 태도였습니다. 이런 구조는 그분들을 인간적으로 동등하게 인식하고 인격적으로 대하기보다 이분들의 어려움을 홍보의 재료로 사용해서 교육적 효과만을 강조하기가 쉽습니다. 또한, 그 홍보의 효과는 결국 저의 밥벌이와 무관할 수 없기에 그분들의 어려움을 이용하는 잘못도 범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죄인인 이상 우리 자신이 가진 힘으로 약자를 돕고자 할 때, 그 도움이 자신의 이익과 밀접하게 얽히기 쉬운 것 같습니다. 이런 지점에 대해서 깊이 있게 생각하고 건강한 관계를 설정해서 다른 분들을 도와야 하는데 이런 관계 설정의 중요성이 종종 간과되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사회적 효과보다도 교육을 통한 변화 자체에 초점을 맞춥니다. 참석하신 분들이 즐거워하시고 마음껏 자신을 표현하실 수 있는 시간이 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가 기획한 프로그램에 참여하시는 강사들께 꼭 강조하는 게 있습니다. 우리가 제공하는 교육에 참여하시는 분들이 그 시간만큼은 정말 즐거워하시고 행복감을 느끼시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교육에서 무언가를 얻어 가시고 발견해가시는 것은 그분들의 몫입니다. 그런데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분들이 잘 얻어 가실 수 있도록 잘 생각해 보실 수 있도록 이 시간 자체를 충실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분들이 편하게 이 시간을 즐기려면 그분들을 소외되었다고 보는 시선 자체를 버려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이주민 가정 대상의 교육을 준비할 때는 반드시 선주민 가정과 함께 교육을 받도록 프로그램을 구성하는데, 이는 가정 내의 소통은 물론, 같은 지역 주민으로써의 자연스러운 유대감도 활발해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주 가정과 선주민 가정의 상호 이해가 높아지고 다름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생긴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몇몇 다문화 프로그램들이 단지 선물이나 생필품을 나누어 줌으로써 교육생을 모으거나, 프로그램에 대한 고민 없이 이벤트성으로 단순하게 운영합니다. 이주 가정 안에도 다양한 삶의 모습이 있기 때문에 일방적인 접근은 지양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주변을 보면, 어떤 분들은 물질적인 도움이 필요하지만, 누구는 사회적인 도움이 시급한 것처럼 이주 가정 안에도 다양한 모습이 있는 만큼 이주 가정들에게 접근하는 방식도 이분들을 이해하는 데서 시작해야 됩니다. 저 역시 이 문제를 계속 고민하고 있습니다.

Q: 최정은 대표님께서 경험하신 현장은 어떻습니까? 교회가 어떻게 소외된 이웃들과 함께 할 수 있을까요?
A: 교육에서 만나는 분들 중에는 상상도 어려운 처지에 있는 분들도 많습니다. 이들은 즐겁던 수업이 끝나면 다시 지옥 같은 삶의 현장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짧은 순간이지만 자신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자신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 나가는 시작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각자가 처한 삶의 현실은 영화처럼 아름답지 않지만, 일부러 저는 비극적인 상황을 희극으로 바꾸어 보려고 합니다. 자신의 상황을 비관적으로만 보지 않고, 그 상황에서 웃을 수 있는 이유를 찾아보자는 것입니다. 교육 중간에 성경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녹여냅니다. 성경에 너무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넘치기 때문에 그분들이 자연스럽게 아버지에 대해 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많이 있습니다. 나중에 그 독특하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성경에 있다는 걸 알고 깜짝 놀라시는 분들도 많이 보았습니다. 지금은 그분들을 치유하기보다는 그분들이 사랑받는 존재임을 전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저는 이 일이 아버지의 마음을 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인생에서 웃기 어려운 시간들을 겪었지만, 아버지 안에서 이제는 언제든 웃을 이유가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제 안에 심으신 이 빛을 마음의 어려움을 겪는 분들과 조금이라도 나누고 싶은 마음입니다. 이런 표현 자체가 제가 그럴 만한 가치나 능력이 있는 사람처럼 들릴 수도 있어서 조심스럽지만, 저는 교육에서 만나는 분들이 너무나도 존귀한 아버지께서 사랑하는 분이라는 점을 전해 드리고 싶습니다.
교회가 다양한 분야에서 이웃을 돕고자 하기 때문에 제가 잘 모르는 영역에 대해서 말씀드리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다만, 제가 경험하고 있는 문화 영역에 국한해서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교회는 무엇인가를 베풀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한 것 같습니다. 일반적인 문화 사역은 교회에서 훈련된 팀들이 공연을 하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크리스천들만을 위한 공연이 되어간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비신앙들도 즐길 수 있는 공연의 내용, 방식, 접근법이 중요합니다. 우리끼리의 잔치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다양한 계층마다 소구점이 더 명확한 예술 장르가 있지만, 일방적인 공연 활동은 그런 다양한 문화적 기대를 충족시키기 어렵습니다. 반면에 저 같이 문화 예술교육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다양한 계층에 대해 효과적인 콘텐츠가 무엇인지는 알고 있지만, 이런 교육 경험을 필요로 하는 분들을 만나는 것이 어렵습니다. 저 역시 지자체나 기관에서 주관하는 사업들에 참여하는 이유가 개인적으로 이런 분들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소외된 이웃들을 만나는 경로를 모르는 문화 사업가들도 많고, 이런 만남을 지속적으로 이어가는 것도 어렵습니다. 교회에서 이런 역량을 갖춘 분들과 함께 소외된 이웃들을 섬기는 일들을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을 문화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교회에 먼저 말씀드리기는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습니다. 공연이나 예술 교육 활동은 준비과정에서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자비량으로 섬긴다고 하더라도, 제반 비용까지 스스로 부담하지 않는 이상 사업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살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 있어서 저 역시 섬기는 교회가 있지만 제가 먼저 문화 예술교육 사역을 제안하는 것은 아주 조심스럽습니다.

Q: 한국 교회를 보시면서 안타까운 부분은 무엇입니까? 그럼에도 우리가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A: 한때 제 의를 율법 삼아서 다른 분들을 판단하고 평가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의 존재와 행위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아버지를 믿고 예배에 참석하고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모든 것이 은혜가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제 기준을 앞세워서 다가가면 내 안의 빛을 이웃들에게 전하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내 안에 빛이 있고 그 빛이 나를 통해서 나타날 때 사람들이 그 빛을 느끼고 전도가 되는 것 같습니다. 수업에 참석한 친구들이 “선생님이 아는 하나님이라면 저도 알고 싶어요”라는 말을 할 때가 있습니다. 저는 여전히 부족하고 실수도 하지만, 주 안에 있을 때 회복도 빠르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때로는 실수하더라도 곧 회복해서 제 안에 있는 빛을 비추는 일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한국 교회가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할 때, 그 기준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바울은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이방인에게는 이방인처럼 다가가려고 했는데 이 유연함이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육신의 욕심을 우선으로 삼는 삶을 살다가 아버지를 만나면서 삶의 가치들이 바뀌었습니다. 세상과는 다른 삶의 기준을 갖고 있는 성도들이 희망의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 한국 교회는 그동안 쌓아온 전통적인 가치들이 위협받는 시기인 것 같습니다. 교회의 안팎에 논쟁이 끊이지 않고 이로 인한 분열도 더 심해지는 것 같습니다. 개인의 자유에 대한 강조가 역설적으로 내 생각을 표현하는 데에도 더욱 신중한 태도를 취하게 합니다. 이 상황 가운데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복음의 빛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통도 새로운 생각도 중요하지만 복음이 진정한 희망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목회자들의 역할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복음이 말하는 사랑과 거룩함 그리고 성령으로 충만한 목회자들의 가슴에서 나오는 진실한 설교와 애통함과 안타까움이 성령님의 임재 가운데 사람들에게 전해지면 좋겠습니다. 저는 그런 설교를 통해서 복음의 진리에서 벗어나지 않고 아버지의 마음을 더 깊이 이해하고 있습니다. 저는 제 수업을 시작할 때 항상 제 자신이 크리스천임을 말씀드립니다. 제 수업을 통해서 크리스천이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더 정확히는 제 안에 계신 분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숨어있는 크리스천이 제 수업에서 힘을 얻고 당당하게 자신의 믿음을 세상에서 나타내기를 기대합니다. 이런 선순환적인 구조를 만들어 내는 게 우리가 할 일인 것 같습니다. 진정한 크리스천들이 세상에 빛을 나타낼 때 그것이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이유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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