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기도하는 마음으로 임할 때 가야금 연주도 예배가 됩니다:하나님이 주시는 것으로 찬양하는 가야금 연주자 이슬기
- 보현 전
- Aug 19, 2022
- 10 min read
Updated: Sep 23, 2022

Q: 본인과 하시는 일에 대해서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저는 가야금 연주자 이슬기입니다. 어릴 적부터 가야금을 연주해 오면서 가야금과 국악의 영역을 더 넓히고 또 많은 분들이 가야금을 더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도록 활동하고 있는 연주자입니다. 현재는 서울대학교와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Q: 이슬기 연주자께서는 국악을 재해석한 젊은 음악가로 유명하신데 음반도 여러 장 발표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음반에 꾸준히 찬양곡을 싣고 계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떻게 국악 찬양을 시작하게 되셨는지 그리고 국악 찬양가로서 어떤 어려움을 겪으셨는지 궁금합니다.
A: 제가 국악 찬양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어머니를 빼고 설명드리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어머니께서는 1980년대부터 국악으로 또 가야금으로 찬양을 하는 일을 시작하셨고 국악 찬양이라는 영역을 개척하신 분입니다. (이슬기 연주가의 어머니는 국가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 산조 및 병창 보유자인 문재숙 명인이다.) 제가 아주 어릴 때부터 어머니께서는 전국 곳곳의 교회와 선교지로 찬양을 하러 가실 때, 저를 데리고 다니셨습니다. 어릴 때 이가 쏙 빠진 채로 노래하기도 했고, 정말 조그마한 손으로 가야금도 타면서 어머니와 함께 찬양을 하면서 자라났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저도 국악인의 길을 걷게 되고 자연스럽게 어머니의 국악 찬양에 대한 꿈과 비전이 저의 꿈과 비전이 되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다만 어머니께서는 정말 전통적인 국악을 통해서 하나님을 찬양하셨다면, 저는 다양한 음악적 장르를 시도하는 음악가로서 클래식이나 재즈와 같은 요소들과의 결합 등을 꾸준히 시도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펑키와 같은 장르와 만나기도 합니다. 음악가로서 좀 더 현대적인 해석을 시도하는 점은 어머니와의 차별점이 될 수는 있지만, 어머니께서 자신의 음악으로 찬양을 하셨던 그 마음이 제게도 이어져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어머니의 꿈을 이어받아 지금까지 찬양의 자리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참 큰 복이라 생각하고 하나님께 늘 감사한 마음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국악 찬양이라는 영역이 아직 CCM이나 성가대 중심인 교회 음악에서는 생소할 수는 있지만 어머니 세대에서 뿌리셨던 국악 찬양의 씨앗의 열매를 제가 누리고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제가 국악 찬양을 하면서 뵈었던 대부분의 많은 분들은 국악 찬양을 격려해 주시고 그 필요성을 공감해 주셨습니다. 물론 국악 자체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습니다. 저는 찬양할 때 25줄로 된 개량 가야금을 자주 사용하는데 개량 가야금의 다양한 사운드에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호응해 주시는 것을 봅니다. 국악 찬양의 선배님들과 동시대의 국악인들의 노력에 힘입어서 저는 많은 교회에서 격려와 응원을 받으면서 성장했습니다. 그런 응원을 들을 때마다 앞서서 이 길을 걸어가신 국악 찬양의 선배님들께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그분들은 ‘교회에서 굿거리장단이 웬 말이냐?’는 핀잔도 많이 들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선배님들께서 국악이라는 장르가 교회 음악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지는데 어려움을 겪으셨지만, 그 덕분에 지금 저희 세대는 격려와 응원의 분위기에서 연주와 찬양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2008년에 뉴욕에 잠시 머물렀던 적이 있습니다. 한참 저의 음악적인 정체성을 세워나가는 시기였고, 문화의 도시라고 일컬을 만큼 뉴욕이 다양한 문화가 넘치는 도시이다 보니 저 역시 뉴욕에서 음악인으로서의 제 역량을 더욱 키워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의 음악적인 자양분을 마음껏 얻어 가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다양한 분들과 교류하면서 자주 받게 되는 질문은 ‘왜 술을 마시지 않는가?’였습니다. 그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술을 마시는 행위를 통해 대변되는, 자신의 어떤 한계를 시험하고 뛰어넘으면서 음악적 표현에 한계를 두지 않고 나의 예술성을 확장해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신앙을 갖고 있는 음악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많이 고민했던 시간이었습니다. 고민 끝에 결국 “술(로 대변되는 인간의 모든 노력 혹은 행위)에 의지해서 어떤 영감을 받는다면 그것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나는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을 믿고 그 하나님으로부터 영감을 받자."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하나님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니까 그만큼 영감이 충만하신 분이 어디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분의 창조적인 에너지로 예술을 하는 예술가가 되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뒤로 10년이 지났는데 지금도 이런 부분에 대한 고민은 계속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회와 문화가 지속적으로 변화해 갈 때, 저의 생각도 그 의미를 새롭게 되새기는 일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시대의 흐름을 따라서 제 중심이 변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제가 시도하려는 도전이 과연 신앙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끊임없이 성찰해야 한다는 점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Q: 연주자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입니까?
A: 제가 학창 시절이었던 1999년으로 기억합니다. 대학교 1학년 때, 세계 민속 축제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에서 축제가 열렸습니다. 이스라엘의 아주 넓은 야외 공연장이었는데 제 기억으로는 만 여 명의 관객이 운집한 아주 큰 공연이었습니다. 사물놀이에 이어 판소리도 하고 국악의 다양한 장르들이 공연되었습니다. 마지막 곡으로 국악 찬양곡을 연주했습니다. 저희 어머니께서 작곡하신 “감사 찬양”이라는 곡이었습니다. 이 곡은 아주 전통적인 국악의 형식을 갖는 곡입니다. 마지막에 ‘감사 찬양’을 소리 높여서 외치면서 마무리하는 곡인데 저희가 한국어로 노래한 한국의 음악이었지만 그 의미가 듣는 분들에게 공감되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너무 벅찬 순간이었고, 그 곳이 성경의 배경이 되는 이스라엘 땅이라서 더 새롭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시편의 찬양들이 진짜 노래되었던 땅에서 찬양을 하고 그 찬양이 사람들에게 공감되었다는 것이 제 삶에서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되었습니다. 덴마크에서도 함께 하신 분들과 울면서 찬양한 기억도 있고, 이외에도 많은 선교지에서 있었던 찬양했던 순간이 기억납니다. 제 음반에 수록된 찬양곡들은 연주곡이나 허밍으로 녹음된 경우가 많은데 그 중에는 제가 정말 은혜를 받고 사랑하는 곡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주의 사랑 흘러넘처 큰 바다를 이루고”라는 곡은 제가 대학부 때 너무 좋아하던 곡인데 그 곡을 앨범에 실을 수 있어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지금도 그 곡을 연주할 때마다 눈물이 나는데 은혜를 누렸던 곡들을 가야금으로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것이 너무 감사합니다.

Q: 음악인으로서 크리스찬이라는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이 어떤 영향을 주었습니까?
A: 저는 제 음악에 어떤 메시지를 담아야 하는지 고민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제가 저의 신앙적인 정체성을 분명히 하려고 애쓰고 있고,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기 때문에 또한 국악 찬양을 하는 찬양자로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음반을 준비합니다. 녹음실에서 녹음할 때도 참여하시는 분들과 함께 기도하면서 이 음악이 하나님의 위로와 소망을 전하는 도구가 되기를 소망하면서 녹음을 했습니다. 기억에 남는 음반이 2006년에 작업한 In the Green Cafe라는 크로스 오버 음반입니다. 벌써 꽤 많은 시간이 흘렸는데, 당시는 가야금과 재즈가 함께 시도되는 첫 번째 작업이라는 점에서 큰 반향이 있었습니다. 그 때 직장을 그만두어야 할 만큼 연주 요청이 많았습니다. 생각보다 큰 반응을 접하니까 하나님께서 무엇인가 이 일을 통해 하고자 하시는 계획이 있으시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특히 청년들에게 우리나라의 음악이 멀지 않고 가깝게 느껴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국악계에 있는 국악인들에게는 복음을 전할 수 있는 통로로서, 또 크리스찬들에게는 국악을 전할 수 있는 매개체로서 제가 존재해야하는, 사명감을 다시 느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를 이루어 가시는 것을 보면서 정말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제가 섬기고 있는 온누리교회에서 2007년부터 전도와 선교를 목적으로 일본에서 “러브 소나타”라는 콘서트 형식의 집회를 지속적으로 해왔습니다. 저도 이 집회에서 가야금을 여러 번 연주했습니다. 그 공연을 통해 함께 은혜를 받으시는 분들을 보면서 제가 연주하는 것 같지만, 그 모든 일들을 이루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그리고, 국악 찬양을 하나님께서 사용하고 계심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 일 이전에도 저는 국악 찬양의 형태와 양식에 관해서 많은 고민을 해 왔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제가 대학생 때 황병기 선생님의 작품인 “춘설”이라는 곡을 교회에서 연주한 적이 있습니다. 그 곡은 찬양 곡은 아니었지만, 이 곡을 연주하면서 저의 신앙 고백을 시로 써서 무대 뒤에 빔 프로젝터로 띄워 놓고 연주를 했습니다. 사람들이 비록 그 곡을 찬양곡으로 생각하지 않았는지는 모르지만. 찬양곡이 아닌 작품이라도 제가 하나님에 대한 저의 고백을 담아서 연주하였을 때, 국악을 통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드릴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런 경험과 생각이 쌓이면서 국악을 통해서 찬양하는 것이 저의 소명이 된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 때로 기억하는데 중 고등부 때 Passion이라는 집회에 참여해서 전통 가야금으로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를 연주했습니다. 집회를 마치고 두 시간 정도를 엄청나게 울면서 기도를 했는데 하나님께서 이 길, 찬양의 길을 가게 될 것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 뒤로 국악을 통해 찬양을 하는 제 소명에 대해서 흔들린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국악계와 음악계 그리고 교회를 연결할 수 있는 그런 다리와 같은 역할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또한, 오래전부터 영성과 실력을 겸비한 학생들을 키우고 싶다는 소망을 갖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가장 먼저 되어야 할 일은 가르치는 자리에 있는 제가 먼저 영성과 실력을 겸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소경이 소경을 끌어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소망으로 다음 세대를 위한 기도를 하고 있는데, 학생들을 만나면서 최근 학생들이 더욱 독립적인 성향으로 바뀌어 간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독립적이라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좋은 점도 있지만, 한 편으로는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몫이 너무 커진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의지를 하는 것도 점점 어려운 분위기인 것 같습니다. 음악계가 너무 치열한 분야이다 보니 스스로를 너무 몰아세워서 극심한 경쟁 속으로 밀어 넣거나, 혹은 자신이 정한 목표에 도달하지 못할 때에 학생들이 정신적으로 고갈되어 가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지금까지 연주자로서 해온 일에 더해서 영성과 실력을 겸비한 다음 세대를 키우는 일에 에너지를 좀 더 모으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Q: 연주가로써 끊임없이 공연을 통해서 대중을 만나고 계시는데, 대중과 만나는 음악가의 삶이 이슬기 성도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A: 저는 공연을 통해서 제 자신을 발견하는 것 같습니다. 거창한 말씀을 드리려는 것은 아닙니다. 제 음반에 수록된 곡 중 Hapiness(행복)라는 곡이 있는데 지금도 KTX가 종착역에 도착하면 그 음악이 나오고 있습니다. 제가 힘써서 된 일이 아님에도 제 연주곡이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들려지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 곡을 선교지 등에서도 자주 연주하는데, 제가 행복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 곡을 연주하는 것은 위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공연 전에 만약 제가 행복한 상황이 아니라면, 그 곡을 거짓으로 연주하지 않도록 하나님께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 제가 단 위에 서야 하는데, 제가 저 곳에 설 수 있는 마음을 허락해 주세요.”라고 말입니다 그런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시는 것을 여러 차례 경험했습니다. 사실 오늘 인터뷰에 응하는 것도 제가 준비가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이런 기회를 통해서 지금까지 부어주셨던 하나님의 은혜를 더 기억하고 싶어서 용기를 낸 것도 있습니다. 방언 기도를 하는 분들께서 방언 기도를 하면 그 기도가 하나님 앞에 곧바로 상달된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비슷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는 연주를 통해서 찬양할 때, 하나님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습니다. 제가 전심으로 찬양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지금 나의 찬양을 받으시는 구나라는 느낌이 즉각적이고 강력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이런 전율이 느껴지는 경험이 있는 반면, 어떤 날은 “내가 너무 준비가 되지 않았구나.”라는 생각, 즉 제가 드리는 찬양이 하나님께 닿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날도 있습니다. 그런 날은 제 자신에 대해 답답함을 느낍니다. 공연을 마치고 하나님께 기도를 하면서 제 자신을 돌아보기도 합니다. 공연에 대한 경험이 쌓이다 보니 하나님께서 저를 어떻게든 준비시키신다는 것을 알아 가고 있습니다. 제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저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기도를 하게 하시고, 제 마음속에 있는 불안이나 두려움을 털어버리고 찬양의 자리에 서게 하시는 것을 배워갑니다. 2014년도에 일본에 러브 소나타 집회에서 공연이 얼마남지 않았는데 제 마음속에 그날의 찬양에 대한 아무런 감동이 없었습니다. 무대에 서는 것이 두려워져서 가까이 있던 호텔로 돌아와서 침대에서 엎드려서 “하나님 제가 이대로는 무대에 설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께서 은혜를 주셔야 제가 설 수 있지 않겠습니까?”라는 절박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정말 무대에 서는 것이 두려워서 그대로는 무대에 서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그때 나무엔 님의 찬양을 들으면서 기도를 했는데 그 찬양을 통해서 제 마음 가운데 어떤 깊은 울림이 있었고 곧이어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힘을 주시겠구나 라는 확신을 갖고 다시 공연장으로 돌아가서 공연을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때의 경험들을 다시 떠올리면서 무대에 서는 그 시간이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Q: 이슬기 선생님의 연주가로서의 사명은 어머니께 많은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음악인 이슬기, 성도로서의 이슬기가 존재하는 데 있어서 교회 공동체가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궁금합니다.
A: 제가 대학교 때, 저희 교회 안에 국악 찬양팀을 만들었습니다. 당시 요한 공동체라는 이름의 대학부를 섬겼는데 그 안에서 국악을 전공하는 친구들끼리 모여 국악 찬양팀을 만들었습니다. 교회에서 저희에게 참 많은 기회를 주셨습니다. 성도들 앞에서 캐럴도 연주하고, 기존 찬양곡이나 어머니가 만드신 국악 찬양도 알려드릴 수 있는 많은 섬김의 자리를 주셨습니다. 그 중에서 추석을 앞둔 예배로 기억하는데 한 시간 정도의 예배의 처음부터 끝까지 국악 찬양으로 구성해서 진행을 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주셨습니다. 그때 저희가 정말 열심히 준비한 기억이 납니다. 대학생이라 미숙한 것도 많았지만 나름 서로 고민하고 기도하면서 교회 예배의 순서에 맞게 곡도 배치하고 순서도 짰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 것들이 국악 찬양을 하는 데 있어서 훈련의 시간이 되고 또한 교회의 지지를 확인할 수 있던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또 교회 안에 이런 사역을 같이 할 수 있는 좋은 동역자들이 있었다는 것도 교회 공동체의 영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도 대학부에 후배들이 국악 찬양팀을 이어오고 있다고 들었는데 저희의 도전이 교회의 전통으로 이어올 수 있도록 해 준 것 역시 교회 공동체가 없다면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지금 그 일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지 않음에도 이 일들이 교회 내에서 이어지는 것들을 보면 교회의 일은 역시 하나님이 하신다는 생각을 더욱 확신하게 됩니다. 개인적으로도 교회에서 국악 찬양에 대해서 편견 없이 대해 주신 것이나 ‘러브 소나타’ 같은 기회를 통해서 국악 찬양을 알릴 수 있게 해주신 것 모두가 교회 공동체의 도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의 일이 생각나는데,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함께 기도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Co-operation with Jesus’(CJ) 라는 이름의 모임이었는데 저를 포함해서 서 너명의 친구들이 시작한 모임이었습니다. 그 후 제 여동생이 그 모임에 들어온 이후 ‘예닮’이라는 이름으로 모임의 이름을 바꾼 후에 수십 명이 모이는 기도모임으로 성장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슬기 성도의 동생은 영화배우로 활동하는 이하늬 자매이다. 이하늬 자매도 어머니를 이어 언니와 함께 국악을 전공하였다.) 그런데 제가 지난 6월 22일에 독주회를 했는데, 레퍼토리 중 제가 따로 (찬양이라고) 설명하지 않았던 퍼포먼스 연주가 있었습니다. 공연은 종이를 구겨서 정신 나간 여자처럼 가야금 현을 문지른 후에 그 종이를 찢고 하모닉스라는 주법으로 따뜻한 음색과 분위를 연출하며 마무리하는 퍼포먼스 연주였습니다. 인간의 절규와 이에 대한 신의 구원을 제 나름으로 해석하여 표현한 곡인데, 몇 몇 분들이 그 연주를 통해서 하나님을 느꼈다고 하셨습니다. 그 중 대부분이 자신이 예닯 출신이라는 말씀을 하셔서 매우 놀랐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 시작한 작은 모임이 그 친구들에게 이어지고 또 그 친구들이 신앙을 지키며 자라와서 지금 각자의 자리에서 여전히 잘 서 있고, 음악으로 다시 만난 것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비록 고등학교 동아리가 소속된 교회의 공동체는 아니지만, 제가 신앙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살 수 있었던 데는 늘 이런 건강한 공동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대학에 가서도 국악과 선배들과 기도모임을 따로 만들었던 기억도 납니다. 모임 이름이 ‘카타콤’이었습니다. (웃음) 당시에는 “우리가 죽음을 각오하고 여기서 신앙인으로 살아내야 한다”라는 비장함이 있었습니다. 제가 입단했던 KBS 국악 관현악단에도 기도 모임이 있었습니다. 제가 만들지는 않았지만 소수의 선배님들이 이미 모이고 계셨고 저를 초대해 주셔서 저도 기쁜 마음으로 참석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도 잠시 잊고 지냈던 것 같은데 제 인생에서 교회 안 뿐만 아니라 교회 밖에서도 늘 제 자리에서 함께 기도하고 하나님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던 공동체가 있었습니다. 이런 공동체가 제 신앙을 든든히 지키는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개인적으로도 결혼하고 출산을 하면서 교회 안에 헬로맘 스쿨이라는 임산부의 기도 모임에 속하게 되었고, 이후에는 스텝으로 섬기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엄마로서 아내로서 서로 기도하고 의지가 되는 마더 와이즈(Mother wise)라는 공동체에 속해 있습니다. 연주가로서의 제 삶뿐만 아니라 성도로서의 제 삶에도 공동체가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해 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이 인터뷰를 보시는 분들께 꼭 나누어주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실까요?
A: 혹시 교회에서 혹은 교회 밖에서 국악 찬양을 하는 분들을 만난다면 그 찬양을 들으실 때, “얼쑤!” 하는 추임새를 넣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제가 어릴 때 동생과 함께 국악 찬양을 드릴 때마다 국악 찬양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별미와도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별미는 자주 먹지는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특별한 맛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어린 저희가 자부심을 갖도록 그렇게 말씀하셨고, 저희도 그 말씀을 듣고 더 열심히 국악 찬양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국악 찬양이 여전히 별미로만 남아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픕니다. 30년 전에 별미였으면 이제는 일반식에 포함이 되어도 좋을 텐데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국악 하면 왠지 어르신들이 좋아하실 것 같은 생각을 하시는 것 같은데, 사실 연주 현장에서 느낀 것은 청년들이 굉장히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청년들은 오히려 색다르게 느껴서인지 재미있어하고, 조금만 가르쳐 줘도 얼씨구, 절씨구 하면서 놀기도 합니다. 제가 경험한 바로는 전통 민요를 보사노바 선율에 얹어서 연주하는 것과 같은 실험적인 시도에도 잘 공감해 줍니다. 청년들의 이런 관심과 반응을 보면서 “국악 찬양이 일반식이 되는 날이 곧 오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이 제가 더 열심히 국악 찬양을 해야 하는 이유기도 합니다. 저희도 더 열심을 내고 가까이 다가가야 하겠지만, 성도님들께서도 관심도 더 주시면 좋겠고 추임새도 넣어주시고 우리의 소리와 음악에 대해 좀 더 마음을 열어주시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또 다른 어떤 세계를 접하실 수 있으실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Q: 한국 교회를 보시면서 안타까운 점과 그럼에도 우리가 소망을 가질 수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A: 제가 한국 교회의 일원으로서 안타까운 점이 비난처럼 들릴까 봐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습니다. 저부터 반성하는 마음으로 말씀드리면, 너무 외식하면서 살고 있지는 않은가에 대해 돌이켜 봅니다. 사실 오늘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제가 아끼는 분들에게 기도 부탁을 드렸습니다. 제가 외식하지 않고 솔직하게 답을 드릴 수 있기를 기도해 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질문지를 받고 저부터 겉과 속이 다르지 않은 크리스찬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비록 우리는 연약하고 지혜가 없어서 종종 넘어지고 실수하지만 그럼에도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에 주님께서 교회를 포기하지 않고 지키시리라 생각합니다. 그것이 희망이고 또 우리 역시 포기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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