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영혼에 우선 순위를 두는 것이 건강한 공동체를 만듭니다:일터와 가정에서 영혼을 위해 일하는 마선아 성도
- 보현 전
- Aug 26, 2022
- 11 min read
Updated: Sep 23, 2022

Q: 본인에 대해서 그리고 어떤 일을 하고 계시는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A: 저는 지금 의류 브랜드를 전개하는 회사에서 온라인 MD로 일하고 있는 마선아라고 합니다. 회사에서 일한 지는 10년이 되었는데, 온라인 MD로 직무 전환이 된 것은 2년 정도 되었습니다. 경기도 광명시에 있는 성도가 200명 정도 되는 중형 교회를 섬기고 있고, 모태신앙으로 고등학교 2학년 때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 흔히 말하는 문제 학생까지는 아니었지만, 친구들과 어울려서 놀러 다니는 것을 아주 좋아했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려서 야간 자율학습도 빠지는 등 모범 학생이라고 하기는 어려웠던 때 같습니다. 하지만 모태 신앙이었기 때문에 그 외의 대부분의 시간은 교회에서 보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친구들과 야간 자율 학습을 몰래 빠지고 저녁에 노래방에 가서 두세 시간을 신나게 놀고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너무 재미있게 놀고 왔는데, 마음속에 “내가 왜 이렇게 허무하지?”라는 질문이 생겼습니다. 친구들과 너무 즐겁게 놀고 돌아오는데 터벅터벅 걷는 제 발걸음 소리가 제 귀에 들리면서 극심한 허무감이 밀려왔습니다. 그날 “내가 하나님 딸이지, 내가 하나님 자녀지, 내가 하나님 자녀인데, 내가 학생인데 이렇게 하는 걸 하나님께서 좋아하실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날 집으로 걸어오면서 하나님하고 약속했습니다. “제가 이제 하나님 자녀로서 학생이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하면, 하나님 자녀가 아닙니다. 저 이제 하나님 자녀답게 살겠습니다.” 이 약속을 하나님과 하고 그때부터, 하나님의 딸이라는 정체성이 분명해지면서 여기에 맞는 삶을 살려고 무척 노력한 것 같습니다. 대학에 진학해서도 CCC(Campus Crusade for Christ) 활동을 하면서 저 스스로 좀 더 성도로서 훈련받으려고 했고, 공부도 열심히 했습니다. 제가 학교에 다닐 때는 대학 내에 음주 문화가 있었는데 당시 과에서 교수님과 함께 식사도 하고 술도 마시는 자리가 많이 있었습니다. 계속 술을 권하시던 교수님이 계셨는데 제가 계속해서 거절하니까 저를 따로 자주 부르셔서 사회에 나가려면 그런 태도를 고쳐야 한다고 말씀하곤 하셨습니다. 제가 전문대를 다녔는데, 당시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하는 데 있어서 교수님의 추천이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던 상황이라서 교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 쉽지 않던 분위기였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제가 술을 마시지 않으면 취업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씀하시기까지 하셨습니다. 뜻을 굽히지 않는 제 모습을 교수님께서 좀 괘씸하게 여기셨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러실 때마다 저는 되려 교수님께 '예수님 믿으셔야 한다'고 말씀을 드려서 교수님과 논쟁도 많이 했습니다. 아마 교수님께서 제가 술도 마시지 않고 상사에게 고분고분하지도 않으니 사회에서 잘 적응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200명 동기생 중에서 제가 가장 먼저 취업이 되었고, 그것도 제게 술을 마셔야 한다고 계속 말씀하시던 그 교수님의 소개로 인천공항 면세점에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제게는 이 경험이 내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자랑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를 때, 하나님께서 제 상황을 인도해 주신다는 것을 확신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대학을 마치면서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그런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면세점에서는 일본인 고객들을 대상으로 주로 일본어를 사용했는데, 근무하다 보니 영어를 사용해야 할 상황이 많이 생겼습니다. 영어를 공부하기 위해서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갔습니다. 어학연수를 다녀온 후에는 6~7년 동안 학원에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근무했습니다. 삼십 대가 되면서 학원 교사를 그만두고 태국으로 단기 선교를 갔습니다. 잘 근무하던 학원을 그만둔 것은 이십 대 동안 열심히 살아왔으니까 하나님께서 선교를 다녀오면 새로운 길을 열어주시고 더 좋은 자리를 주실 것 같다는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막상 선교를 잘 다녀왔는데 백수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뜻하지 않게 백수 생활이 길어지면서 집에 마음 편히 있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어머니의 눈치도 보게 되고, 점점 모아둔 돈도 떨어져 가고, 사회적으로 위축되면서 자존감도 바닥을 치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때 교회 동생이 지금 제가 근무하는 회사의 물류 팀장으로 있었는데, 온라인으로 판매된 신발이 반품되었을 때, 그 반품된 제품의 상자를 까는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이 일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제 나이도 서른 두 살이 되었고 아무리 내가 어려워도 어떻게 박스 까는 일을 할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집에서 압박이 심해지니까 거의 도망치는 심정으로 알바를 하기로 했습니다. 매일 500개에서 700개 되는 신발 포장 상자를 까는 일을 한 달 내내 했습니다. 일에 귀하고 천한 것이 없다지만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하자마자 박스를 까서 저녁까지 계속하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만 하다 보니 제 자존감이 많이 낮아지게 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제가 상상하던 삼십 대 초반의 모습은 이제 안정적으로 사회에 자리를 잡은 모습, 즉 직장에서 어느 정도의 직급도 있고 전문성도 기를 수 있는 그런 모습을 상상했는데, 어두컴컴한 사무실에서 온종일 박스를 까고 있는 것 자체가 저를 힘들게 했습니다. 되게 힘든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이 일이 너의 존재가 아니다. 너의 존재는 나를 인격적으로 만났던 내 딸이다. 네 존재는 내 딸이다.”라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너의 근본적인 존재부터 시작해야 한다. 네가 어떤 일을 한다고 해서 그 일이 너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라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마음을 부어주시고 나서 그때부터 열심히 박스를 까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빨리 까고, 정리도 하고, 청소도 하고, 그러면서 저보다 어린 친구들 책상도 닦아주고 그렇게 열심을 내면서 일했습니다. 그런데 회사에서 아르바이트 중에서 한 명을 계약직으로 채용하겠다는 결정을 내리고, 정직원들의 투표로 계약직으로 채용할 사람을 선발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15명 정도의 정직원들이 투표한 결과 만장일치로 제가 뽑히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좀 우스운 방식 같기는 하지만 그렇게 계약직이 되어서 몇 개월 열심히 일하던 중에 CS 팀장님께서 저를 정직원으로 채용하고 싶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정직원으로 CS팀에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CS팀의 주된 업무가 고객 불만 전화를 응대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두려움이 컸습니다. 그래도 이런 기회들이 제가 열심히 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라는 생각들이 들어서 두려움이 있는 채로 CS팀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부터 정말 제 인생의 고난이 시작되었습니다. (웃음) 제가 생각해 보지도 않았던 CS팀에서 8년을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Q: 일터에서 그런 경험들이 마선아 자매님의 신앙에 어떤 영향을 준 것 같으신가요?
A: 어떤 영향이라기보다는 제힘을 뺄 수 있도록 해준 것 같습니다. 제가 어떤 방법을 생각해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그냥 끌려가야 하는 상황을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2년 전에 온라인 MD로 직무 전환이 되었을 때, 사직 권고를 받은 온라인 MD 분과 두 분의 CS 담당자 즉 세 명의 역할이 제게 맡겨졌습니다. 세 분 모두 사직 권고를 받았기 때문에 빨리 퇴사를 원하셨고 결국 인수인계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퇴사하게 되었습니다. 온라인 MD 직무를 맡고 아무런 배경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제가 당장 할인 판매를 위한 사이트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이 당황스럽기도 하고 화도 났습니다. 회사가 대책 없이 사람을 내보내고 그 역할을 제게 해내라고 하는 상황이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브랜드 담당 팀장님께도 몇 번씩 못하겠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3개월 동안 매일 밤 11시 12시까지 울면서 주어진 일들을 해내느라 정말 고생이 많았습니다. 하나님을 원망도 했습니다. “하나님 너무 하시는 거 아니세요?” 그때는 내일 할 일 때문에 밤에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아침에 회사에 가까이 오면 출입문에 들어서기가 너무 싫은 날들이었습니다. 아침이 오지 않았으면 했던 시간이 한 3개월 정도 지속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때에도 말씀이 저를 붙잡아주고 찬양이 저를 버티게 했습니다. 그때 “이제 하늘에 닿아도 주님밖에 없고, 땅에 놓여도 주님밖에 없다. (하늘에 닿아도: 시편 73편/어노인팅)”는 찬양이 정말 와 닿았습니다. “나에게 정말 하나님밖에 없다.”는 고백이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진짜로 하나님만 생각하게 되고 일하는 내내 ‘하나님 도와주세요’라는 말이 입에서 떠나지를 않았습니다. “송신이 안 돼요… 상품 등록이 안 돼요… 이거 어떻게 하죠?” 정말 이런 실제적인 질문을 하나님께 드리고 있었습니다. 이 시기를 지나면서 결국에는 내 힘으로 하려는 제 고집이 많이 꺾이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냥 그냥 상황에 끌려가는 것을 요구하시지 않으셨나 싶습니다. 실은 제가 매우 계획적이고 컨트롤하려는 성향이 강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비록 제 인생이지만 제가 컨트롤하지 않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일터에서의 고된 시간을 통해서 비록 제 인생이지만 저 자신의 힘을 빼게 된 것 같습니다.

Q: 그런 고난의 시기에 교회 공동체가 어떤 역할을 해주었습니까?
A: 우리 교회는 구성이 조금 특별합니다. 성도 200명이 청년 100명, 교회학교 학생 50명 그리고 장년 성도 50여 분으로 구성되었습니다. 그래서 청년들 간에 매우 친밀하고 안정된 공동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제가 고난의 시간에 있을 때 교회 공동체의 지체들이 끊임없이 복음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설교에서도 복음을 듣지만, 서로서로 복음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해해 주고 또 피드백을 주는 게 정말 큰 힘이 되었습니다. 제가 결혼을 좀 늦게 했습니다. 마흔을 넘겨서 최근에 결혼했습니다. 그런데 결혼이 늦어지는 동안 결혼과 관련해서 참 많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믿지 않는 사람들도 복음을 듣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성경에 혈루병이 걸린 환자, 38년 된 병자 이야기, 회당장 야이로의 딸 이야기같이 오랜 시간 동안 아팠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긴 시간 동안 사람들이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했을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결혼도 늦어지고 회사에서도 어려운 시간을 보낼 때, 너무 늦었다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결혼은 어려울 것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고민이나 걱정을 이야기할 때 정말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 주시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저도 그분들의 조언이 저를 위한 진심에서 비롯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너무 현실적인 말을 듣다 보니 불안감은 더 커졌던 것 같습니다. 만약에 병자들에게 “너 이렇게 있으면 안 돼, 너 병원에 가야지, 너 이런 약을 써야지” 이런 말들이 병자가 낫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해주는 말일 수는 있지만 결국 위로가 되는 것은 예수님께서 “안심해라 내가 너를 구원했고, 너를 고칠 능력과 의지가 나에게 있다."라고 말씀해 주시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이 복음이 결국은 우리의 육신뿐만 아니라 영혼까지 살리는 것입니다. 제가 힘든 시기를 보낼 때, 교회 공동체가 현실적인 조언을 줄 수도 있었겠지만, 저에게 지속해서 “제 본질이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존재라는 것, 제가 잘하든 못 하든 그것과 관계없이 제 존재로 저를 기뻐해 주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라는 그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런 소망의 격려들이 제게 실재적인 힘을 주었습니다. “오늘도 잘못했고, 내일도 잘못할 수 있지만 나는 하나님께서 존귀하게 여기시는 존재구나. 하나님이 나를 여기 보내셨다면 이유가 있으실 거야."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런 소망의 위로들이 지금까지 저를 붙잡아 준 것 같습니다.
Q: 인생에서 중요한 일들을 목사님과 상의하셨다고 말씀하셨는데, 목사님께 가까이 가는 것이 어렵지 않으셨습니까?
A: 제게는 목사님이 아버지처럼 느껴집니다. 목사님께 가면 늘 복음을 들려주시니까 제가 힘들 때마다 찾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을 때도 성공적으로 창업을 한 여성 기업가의 이야기를 문자로 보내주시면서 그분도 처음은 저처럼 박스 까는 일부터 시작했다고 저도 이제 시작이니까 하나님께서 하실 일들을 기대하자는 그런 메시지를 보내주셨습니다. 제가 흐트러질 때마다 저를 올바로 잡아주시는 역할을 해 주신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도 사소한 부분까지도 목사님과 나눌 수 있던 것 같습니다. 제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가 세워지니까 목사님하고도 인격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도 교회 공동체에서 섬기는 지체들이 있는데, 저보다 스무 살 가까이 적은 후배들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후배들에게 “너 이렇게 하면 안 돼... 너 꼭 수련회와야 해...” 이런 식으로 제가 어떤 선택을 해주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경험해보니까 섬김에서의 중요한 역할은 중요한 문제에서 결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들려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복음의 관점에서는 저의 고민과 저보다 스무 살이나 더 어린 후배의 고민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도 이 친구도 모두 복음을 들어야 하고 사랑의 소리를 들어야 하므로, 제가 이 친구의 고민을 듣고 공감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인생의 선배로서 후배를 이끌어주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으로 채워져야 할 우리 삶의 빈자리를 공감하고 우리 인생의 빈자리에 계셔야 하는 분이 예수님임을 같이 고백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저도 제가 예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고민합니다. 그 친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에는 하나의 질문인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은 것으로 귀결되는 것 같습니다. 그 점에 초점을 맞추니 교제가 가능하고 나이 등과 같은 다른 요소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점에서 목사님과의 소통도 어렵다고 느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목사님도 저희에게 답을 주시거나 방향을 제시하시기보다는 같이 고민을 하시는 편이십니다. 그 과정에서 제가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맡겨야 하는 부분을 생각할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 주시고 이끌어 주십니다. 목사님께서도 저희를 이끌어 가야 할 방향을 알고는 계시지만 하나님께서 하셔야 하는 영역을 절대로 넘지 않으려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 영역에서 저희가 하나님과 직접 만나도록 도와주신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 듯합니다.

Q: 담임 목사님의 그런 목회 철학이 공동체에도 전달된 것으로 볼 수도 있을 듯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A: 영혼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목사님의 목회 철학이 공동체에 잘 전해진 것 같습니다. 저희는 공동체 안에서 사람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저희 교회학교는 교사가 50명이고 학생이 40명입니다. 학생 한 명당 교사가 1.2명 정도인 찾아보기 어려운 구조의 교회학교입니다. 우리 성가대는 연습을 20분밖에 하지 않습니다. 한 번 맞춰보는 정도에 가까운데, 화음을 넣는 경우는 많지 않고 거의 멜로디를 같이 부르는 수준입니다. 그런데 대신에 저희는 각 사람이 조장 또는 조원의 관계를 맺고 있는데 저는 조장으로서 조원들과 주일에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소통에 힘씁니다. 환영도 해주고 고민도 들어주고 목사님께서 영혼을 항상 우선순위에 두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교회 수련회는 별도의 프로그램이 없습니다. 그냥 조를 나누고 한 마을에 한 조씩 떨어뜨려 둡니다. 각 조는 마을에서 점심도 알아서 해결하고 복귀 장소까지 알아서 돌아와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전도도 알아서 해야 합니다. 아침 7시에 나가서 오후 4시까지 돌아오는 규칙 외에는 모든 것이 각 조에서 판단하고 결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영혼을 마주하는 그 지점에서 엄청난 에너지를 받는 것 같습니다. 직접 영혼을 만나서 얻는 그 에너지로 버티는 것 같습니다. 어떤 영혼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 교회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 이런 근심이 정말 축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에서의 어려움으로 고민을 하는 분들도 계시고 저도 때때로 그런 고민이 들 때도 있지만 세상의 일로 근심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일로 영혼의 일로 고민하는 것이 정말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나의 힘이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을 걱정하면서 편지를 쓰는데 (고후 2:1-5) 저는 바울의 이런 걱정이 사역을 이어가는 원동력이 되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경우에도 영혼에 대한 저의 걱정과 관심이 회사 생활과 가정생활 모두에 원동력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Q: 성도로서의 마선아의 비전은 무엇입니까?
A: 제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대학 때 선교단체 활동을 하면서 선교사로 헌신을 다짐했던 때가 있습니다. 선교 집회에서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이후로 저는 선교사가 되겠다는. 그런 이야기를 주변에도 많이 하고 다녔고, GBT라는 성경 번역 선교 단체에서 훈련받기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주변에서도 제가 사모가 되거나 사역자가 될 것 같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 (웃음). 저희 신랑은 평범한 성도인데 이분과 결혼하기 이전까지도, 선교를 다짐했던 때가 불쑥불쑥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좀 더 큰일을 하리라 생각했는데 코로나가 터지면서 선교는 고사하고 교회의 예배 자체가 어려워졌습니다. 교회 중심으로 살던 일상에서 교회에 가지 못하니까 퇴근하고 나서 할 일이 없어졌습니다. 교회 친구들을 만나기도 어렵고, 교회에 갈 수도 없고, 허전하기도 하고 허무한 그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 마음이 무엇일까?’ ‘내가 교회 일을 마치 사역처럼 생각하고 하고 있었나?’ ‘바쁜 교회 사역이 제 존재감을 채우고 드러내는 수단은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코로나 시기에 정말 산책을 많이 했는데, 걷는 시간에 하나님께 그런 질문을 여쭈었습니다. 그 질문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례를 다 가르친 후에도 가나안으로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시고 그냥 머무르라고 하시는 장면을 떠올리게 하셨습니다. 그 장면이 제게는 제가 어떤 사역을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하더라도 제가 하나님 곁에 머물러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씀으로 이해되었습니다. 사역으로 저의 존재를 드러낼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이런 점을 느끼면서 하나님과 저와의 교제와 친밀함 그리고 동행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교회에서 사역 때문에 힘들어하는 지체를 보게 될 때가 있습니다. “내가 이 일을 왜 해야 하지?”라고 고민하는 친구들입니다. 이전에는 이 친구들을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왜 그렇게 헌신이 없을까?” 제 마음속으로 정죄하고 책망하는 마음이 있던 것 같습니다. 코로나 기간을 지나면서 결국 그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야 가능한 일들이고 하나님께서 각자의 상황에 맞게 은혜를 주신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하나님은 모두의 상황을 아실 수 있지만, 그걸 알지 못하는 저 자신이 다른 사람들의 상태를 체크하고 확인하기 어렵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은 다른 지체들을 확인하고 점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옆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 것임을 배웠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고 난 이후 지금 저의 비전은 제가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제 주변의 가족이나 회사 동료들에게 복음을 전해주는 것, 영혼에게 복음을 들려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Q: 코로나 이후 공동체에는 어떤 변화가 있다고 보십니까? 그리고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A: 하나님과의 관계가 드러나는 계기가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존에 말씀 안에서 튼튼한 관계를 형성한 사람들은 비대면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교제를 이어 나가지만, 그러지 못했던 사람들이 교회에서 많이 멀어지게 되고, 영상 예배도 점점 드리지 않게 되고, 결국에는 교회에 나가는 일도 어렵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런 때에 교회 공동체가 성도들이 더 하나님 앞으로 나가도록, 하나님과의 관계를 튼튼히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제 주변에도 교회에서 여러 가지 사역으로 분주하던 지체들이 비대면 상황에서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대부분의 주변 지체들이 원래 토요일부터 예배를 준비하면서 보내던 것이 일상이었는데, 코로나 기간에 토요일에 개인 시간이 생기면서 (상황이 허락될 때는) 짧은 여행이나 캠핑을 다녀오기도 하고, '언제 이런 일이 또 가능할까?' 싶은 생각도 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한 편으로는 교회 일로 바쁘던 친구들이 개인 시간을 누리던 것이 가능했던 시기 같습니다. 다시 현장 예배가 가능해지면서 이전 일상으로 돌아와야 하는데 개인 생활이 교회에 매어버리는 것 같다는 생각으로 고민하는 친구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코로나 이전의 상황으로 돌아갈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하나님과 관계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하는 것만 남는다는 점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저희 목사님께서도 은혜의 중요성을 강조하십니다. 처음 교회에 나온 친구들에게는 십일조 헌금은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은혜가 채워지면 하라고 하셨는데, 그 은혜로 인해 우리에게 힘이 채워질 때 가능한 일들만 교회에 남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공동체의 교제가 더욱 중요해진다는 생각이 듭니다.

Q: 이 인터뷰를 보시는 분들과 나누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어떤 것입니까?
A: 결국 교회는 예수님께서 이끌어 가시기 때문에 사람들이 좌우하는 기관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해서 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그분 자체에 소망이 있고 교회를 위해 하나님께서 일하시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이런 시각에서 보니, '그동안 우리가 교회 안에서 인간적인 생각으로 해왔던 일들을 하나님께서 줄여가고 있지 않으신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하루하루 말씀을 보면서 ‘하나님 도와주세요. 하나님 알려주세요.’라고 고백하고 하나님께 의지하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단순한 위로와 평화를 얻는 것이 아니라, 내가 실제로 행동하고 결정하는 데 있어서 진짜 힘이 되는 그런 것들이 우리 한 명 한 명에게 이루어지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서로 서로가 현실적인 조언이 아닌 예수의 사랑이 주는 소망을 이야기해주면서 우리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존귀한 존재임을 알도록 해주는 게 필요한 것 같습니다.
Q: 한국 교회를 보시면서 어떤 점이 안타깝게 생각되시는지? 그럼에도 희망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A: 가장 안타까운 것은 세상의 기준이나 가치가 섞여서 복음이 변질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로 인해서 교회 안에서의 헌신, 시간이나 물질 혹은 나의 열정을 드리는 젊은이들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자신의 시간, 물질 그리고 열정을 드린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 모든 것들이 결코 내 힘이 아닌데 내 것처럼 여기는 것이 변질된 복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반면에 복음의 역사는 예수님께서 이루어 가신다는 점이 우리가 낙심할 수 없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믿지 않는 분들에게도 영적인 갈급함이 있습니다.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도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예수님에 대해서 잘 모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분들에게 복음이 들려졌을 때, 복음의 힘이 나타나는 것을 봅니다. 면세점에서 일할 때 알게 된 언니들과 함께 소통하는 대화 채팅방이 있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네 명이 있는데, 주로 하는 이야기가 주식, 부동산 그리고 점집에서 본 점괘가 주된 대화 주제입니다. 언니들이 제게도 ‘빨리 집을 사라, 어떤 주식에 투자해라’ ‘결혼할 때 시댁에 이런 정도는 받아야 한다.’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하시는데 저는 이 대화방에 계속 있어야 하나 고민이 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중에 한 언니가 얼마 전 수해로 인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장례식장에 가서 언니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하나님을 믿고 성도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언니들이 점을 보고 주식하고 투자한 이야기를 하고 나서 늘 인생이 허무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인생에 참 기쁨과 즐거움이 없다는 이야기를 자주 합니다. 세상을 떠난 언니의 장례식장에서 제가 이 모임에 있어야 하는 이유가 남아있는 언니들이 인생의 참 기쁨과 즐거움을 알 수 있도록 하나님이 주신 때에 복음을 전하는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복음의 능력을 알고 진정으로 믿고 체험한 사람이 교회에 있다면 교회에는 소망이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그런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매일매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을 누리고 말씀을 듣고 힘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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