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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우리 내면의 빈자리를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일터를 복음을 전하는 플랫폼으로 만들어 가는 윤성민 청년

Updated: Sep 23, 2022


Q: 본인과 하시는 일에 관해서 설명 부탁드립니다.

A: 강서구에서 물고기 식당이라는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는 34세 청년 윤성민이라고 합니다. 모태신앙으로 어려서부터 교회에 나갔지만 흔히 말하는 종교 생활을 오랫동안 해 온 것 같습니다. 복음에 대해서 깊이 알게 되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기도하고 묵상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Q: 음식점을 하신다고 하셨는데, 30대치고는 조금 일찍 자영업의 길로 들어서신 것 같습니다. 어떻게 요식업을 시작하게 되셨습니까?

A: 요식업이 대개는 자영업의 형태로 이루어지지만, 저는 요식업을 하나의 사업의 기회로 보았습니다. 평소 사업을 하는 데 있어서 팀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좋은 아이템이 있어도 좋은 팀이 없다면 결코 성공하기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창업하기 이전에 저는 기업에서 회계 업무를 담당하던 회사원이었습니다. 회계업무를 하면서 기업 운영에 대해서도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제 동생이 일식 요리사로서 경험을 쌓으면서 실력을 갖추게 되면서 동생과 함께 일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마침 마케팅을 도와주실 수 있는 분을 만나게 되면서 셋이 팀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사업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회사에 다니면서 월급을 받고 비교적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 만족할 수도 있었지만, 디모데전서 2장 4절에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이 진리를 알고 구원을 얻기를 원하신다는 말씀이 나오는데, 이 말씀을 알고 나서는 내가 회사원이라는 업을 통해서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영향력을 갖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복음을 알게 되면서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점점 분명히 갖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교회를 돕는다. 혹은 목회자나 선교사님을 돕는다고 해도, 회사원의 입장에서 당장 백만 원을 후원하거나 헌금하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하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에 있는 친구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물질의 문제도 있지만, 회사원으로 살 때 시간에 얽매이는 부분도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하는 데 있어서 걸림돌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온전한 십일조가 아니라 십의 구조를 드린다고 해도 충분히 내가 먹고 살게 하실 수도 있는 분이신데, 정말 중요한 것은 나의 중심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용기를 내서 그 중심에 따라서 헌신 된 삶을 살고자 한다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데 필요한 자원들과 시간을 마련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마침 뜻이 맞는 분들을 만나면서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Q: 식당 이름이 물고기 식당입니다. 물고기는 성경에서 상징적 의미를 갖는데 이 이름에 어떤 의도가 있으셨습니까?

A: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특별히 상징적인 의미는 없었습니다. (웃음) 요즘 젊은 세대들은 간단하고 단순하고 직관적인 이름을 좋아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식당 이름을 편하게 부를 수 있는 이름, 쉽게 기억될 수 있는 단순한 이름으로 지으려고 했습니다. 손님들께서도 물고기 식당이라는 이름을 한 번 들으시면 쉽게 기억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름을 잘 지었다고 생각합니다.


Q: 언제 창업을 하신 건가요?

A : 2020년 11월에 오픈했으니까 아직 2년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코로나 상황 중에 창업해서 어려움도 겪었지만 이제 자리를 잡아가는 단계입니다. 아직 망하지 않고 재미있게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일단 주문이 들어오는 것 자체가 신기했습니다. 처음에 신경 쓸 게 되게 많았습니다. 인사, 생산, 회계 등 학교에서 이론으로 배웠던 것들을 그리고 회사에서 간접적으로 보았던 일들이 직접 해야 하는 제 일로 집합이 되니까 머리가 매우 아팠습니다. 그 과정 중에도 결국은 내려놓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욕심을 부리게 되고, 제가 욕심을 부리면서 제 뜻대로 이끌어 가려는 적이 많았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하려는 자기 중심성을 매주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을 통해서 내려놓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배달과 밀키트 중심으로 사업을 구상했습니다. 홀도 운영하지 않았습니다. 준비를 마치고 시작하면서 배달이 많이 들어오기는 했는데, 많은 손질이 필요한 생선을 주재료로 하다 보니 충분한 인력이 필요했고, 매출 자체가 늘어나지 않으면 인력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생각에 홀에서 직접 손님들을 받는 것으로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지금은 배달과 밀키트 매출 그리고, 홀에서의 매출이 반반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저희 가게가 대로변에 자리 잡고 있지는 않아서 지나가시다가 그냥 오시기는 쉽지 않은데, 신기하게도 배달과 방문 손님이 서로 보완되는 효과를 내면서 운영이 안정화되고 있습니다.


Q: 지금 위치에 가게가 오랫동안 비어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오랫동안 나가지 않은 가게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알고 있는데 지금 위치에서 시작하시게 된 이유가 있습니까?

A: 저는 강서구에 있는 예원교회에 다니고 있습니다. 청년회에서 임원으로 섬기고 있었는데, 창업 과정에서 목사님과도 소통을 많이 했습니다. 목사님께서 교회 근처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주셨는데, 마침 교회 근처에 오랫동안 비어있던 가게가 있었습니다. 원래는 중국집이 있던 자리였는데 불이 나면서 가게 문을 닫아서 그 뒤로 오랫동안 그곳이 비어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중식당이다 보니 요리 냄새로 인해서 근처 아파트에서 민원도 많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저희가 처음 인테리어를 하려고 왔을 때도 다 그을려 있던 상태였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면에서는 이전에 설치된 구조물을 하나도 제거하지 않고 바로 저희가 원하는 방향으로 인테리어를 할 수 있던 상태였습니다. 흔히 재수가 없다는 말 때문에 이곳에서 새롭게 무엇을 시작하기가 꺼려지는 부분이 있던 것 같았지만 저희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마음이 쓰이지는 않았습니다. 저희가 손이 있는 날을 피해서 이사를 하거나, 사주나 팔자를 보고 사업을 시작하지는 않았으니 말입니다. 되려 저희는 잘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가게 자체는 지대도 높아서 잘 보이기도 했고, 층고도 높아서 저희가 바라던 조건이 잘 맞는 가게였습니다.


Q: 요식업이라는 업종이 경쟁이 매우 치열한 분야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사업을 하고 계시는 것인데,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느끼시는 무게는 어떠신가요? 특히 청년으로서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무게는 어떠합니까?

A: 처음에 이 일을 시작할 때, 많은 분이 조언을 주셨습니다. 사회가 얼마나 혹독한지에 대한 현실적인 조언을 많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런 말들이 하나도 귀에 들리지 않았습니다. 무조건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제 온몸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막상 시작해보니 조언해 주신대로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제 주위에 사업을 하려는 분들과 말씀을 나누어보면 아무리 조언을 드려도 제가 그랬던 것처럼 들리지 않는 것을 자주 보게 됩니다. 대부분은 듣는 척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사실 그런 확신에 가까운 기대감이 있어야 시작을 할 수 있기도 합니다.

사업을 하는 것은 예상하지 못하는 일들과 계속 마주하는 것입니다. 오늘 어떤 분이 가게에 방문하실지 모르고, 온라인을 통해서 누군가가 주문하실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결국은 노출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노출을 위해서는 마케팅을 잘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내가 좋은 물건을 가지고 있어도 알리지 못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음식의 맛과 질이 가장 기본이지만, 우리나라에 맛있는 것은 정말 많다고 생각합니다. 기본에 충실한 것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고 더 나가서 잘 알리고 잘 소통하는 곳들이 결국 고객들의 선택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어쩌다가 운이 좋아서 성공하는 사례는 점점 없어지는 시대가 되는 것 같습니다. 손님들이 줄을 서는 것은 분명히 이유가 있고, 표적화한 소비자의 니즈를 분명하게 맞추어 주는 것이 요즘의 사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매주 잘 되는 곳들을 방문하고 잘 되는 이유를 계속 찾고 공부하고 저희 가게에 적용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요즘 맥줏집 중에서 인생맥주나 크라운호프 같은 곳이 주목받습니다. 그런데 이전에도 비슷한 컨셉의 맥줏집은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새롭게 이런 브랜드가 잘 되고 있을까요? 일단 기본적으로 시원한 맥주가 준비된 곳이고, 여기에 저렴하지만 많은 선택 기회를 주는 메뉴들과 감성적인 매장 분위기가 그냥 편하게 가서 간단히 먹고 마시고자 하는 젊은 세대의 니즈를 충족시켜주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또 젊은 세대들이 즐겨 찾는 하이볼 같은 칵테일을 벨즈처럼 싼 위스키를 이용해서 일반적인 가격보다 저렴하게 제공해주는 실험들도 끊임없이 하고 있습니다. 즉 저렴하고 많은 선택지가 있고 유행에도 뒤지지 않는 젊은 세대의 니즈를 잘 만족시킨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게 영원히 지속되는 공식일까요?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고객들의 니즈 변화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변화시켜가는 역량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부분에 대한 고민이 많습니다. 지금 저희가 생선을 주로 다루는 식당을 하고 있지만, 이것을 고집해서 성공하기보다는 이 시대와 손님들과 소비자들의 니즈에 맞게 내가 유연하게 바뀌지 않으면 이 경쟁 시대에 살아남기가 어려우리라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별로 공부할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난 잘 할 수 있다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막상 현실에 부딪히고 경쟁에 뛰어들다 보니까 내가 공부하지 않고 성장하지 않으면, 또 새로운 기획을 할 수 있는 역량이 없다면 이 치열한 현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이후로 인스타그램도 공부하고 있고, 메뉴 개발과 내부 운영에서도 많은 것들을 공부하고 학습해 가고 있습니다. 홍보와 상품 그리고 운영 이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되는 삼각형을 어떤 한 부분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있게 넓혀가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Q: 신앙과 관련한 이야기로 넘어가 보고자 합니다. 함께 일하시는 분들께서 모두 신앙을 갖고 계시고 매주 시작을 함께 기도하고 말씀을 나누는 것으로 시작하신다고 알고 있습니다. 함께 일하는 분들을 신앙이 있는 분들을 뽑으신 것인가요? 그리고 매주 시작을 말씀과 기도로 여시는 이유가 있습니까?

A: 처음에 누가 시켜서 함께 말씀을 보고 기도를 한 것은 아닙니다. 지금 다니고 있는 교회의 영향도 있는 것 같은데, 당연한 문화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요즘 새로운 형태의 교회들이 생겨나고 있는데 다양한 변화들이 있지만 근본적인 부분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소속된 교회에서 같은 주일 설교 말씀을 듣지만, 그 말씀을 삶 또는 현장 가운데에서 적용하는 것은 각자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각자가 처한 상황과 환경들이 다르기 때문에 적용이 다양해지는 것이 당연합니다. 적용을 하려고 할 때 들은 말씀을 잊어버린다는 점이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기억한다고 해도 또 그 말씀에서 은혜를 누렸다고 해도, 말씀에 따라서 내가 선택한 삶의 기준과 방향을 수정하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저희는 누가 특별한 메시지를 준비하지도 않습니다. 각자 어제 들은 설교 말씀을 나누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저 어제 들은 말씀을 다시 반복해서 전달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선은 말하는 사람 자신에게 그 말씀이 새겨지는 것 같습니다. 내가 그 말씀을 설명하고 전달하면서 내 머리에 더 분명히 정리되고 그 말씀이 마음에 남게 됩니다. 물론 설교를 더 집중해서 듣게 되기도 합니다. 또한, 마음이 말씀에 남을 때 행동을 하게 되고, 행동이 쌓이다 보면 그것이 나의 꾸준한 실천으로 발전해 가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들이 쌓이면서 말씀대로 살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가는 것을 느낍니다.

또 다른 좋은 점은 이 시간을 통해서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한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서만 이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공유합니다. 전에 회사를 다닐 때도 주간 회의를 했습니다. 그런데 회의가 끝나고 나면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습니다. 제가 다른 친구들에게 물어보지 않아서 저만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저희는 늘 감사가 남습니다. 말씀에 대한 감사함입니다. 목사님도 계시지 않고, 축도도 없습니다. 그저 각자 교회에서 들은 설교를 나누고 기도 제목을 나누고 함께 기도할 뿐입니다. 그런데 그 시간 뒤에 항상 감사가 남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감사가 넘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구원받았고 새로운 피조물로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 그 부분에 대한 감사가 있을 때 우리가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 힘으로 도전하는 것 같습니다. 저희가 나누는 결론은 늘 이런 것입니다. 복음은 완전하지만 우리는 불완전합니다. 불완전한 나에게 복음을 맞추면 복음도 불완전한 것처럼 보이지만 완전한 복음에 우리를 맞추려고 노력하면 복음의 완전함을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희 목사님께서 해주신 말씀 중 여러분이 너무 소중하기 때문에 여러분 중심으로 살면 안 되고, 하나님 말씀을 온전히 붙잡고 살아야 한다는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있습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다는데 요즘은 내가 너무 소중하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대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게 더 당연하게 되는 때인 것 같습니다. 저도 제 주변에서 과거에는 흔하게 겪지 못한 일들을 자주 보게 됩니다. 이런 때일수록 마인드 셋(mindset)을 새롭게 하는 시간이 저희 팀에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부터 같은 교회에 다니는 친구들과 팀을 이루려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공교롭게 초기에 모였던 팀원들이 같은 교회에 다니고 있었을 뿐이고, 원래 믿지 않는 분들과도 일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같은 교회에 있는 청년들이 한 명 한 명 팀에 합류하면서 지금처럼 같은 교회에 있는 친구들과 함께 일하게 되었을 뿐입니다. 지금도 신앙이 있는 분들과만 일해야겠다는 생각은 갖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같은 신앙이 있다는 점에서 서로 더 잘 이해하고 소통이 쉬운 것은 사실입니다. 더욱이 이 친구들과 가깝게 소통하면서 겉으로만 알고 있던 관계에서 벗어나서 더 깊은 곳까지 교제할 수 있다는 점이 유익한 것 같습니다. 사실 교회에서 모두 아무렇지 않은 듯 자신을 포장하고 있지만, 사실 그 포장 뒤에 우리의 불완전함에서 비롯되는 들키지 않고 싶은 모습들도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함께 오랫동안 일을 하면 그런 포장 뒤에 감추어진 자신의 본 모습을 내보이게 되는 것 같습니다. 다 보이지는 않아도 분명 이전보다 서로를 더 잘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앙 공동체가 일터 공동체로 묶이다 보니까 자신이 가진 불완전한 부분들로 인해서 서로 상처를 입거나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감싸주고 모자란 부분을 채워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나의 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자연스러워지고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일터 공동체를 통해서 보다 깊은 신앙 공동체를 경험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희가 단일한 신앙이 있는 일터 교회를 지향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희가 지금의 가게에서 멈추지 않고 더 확장해가려는 계획도 있기 때문에 더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게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도 지금의 문화와 가치를 바탕으로 형성된 우리의 정체성은 분명히 지켜나가려고 합니다. 저는 저와 일하는 친구들에게 방주와 같은 공동체를 제공하고 싶습니다. 누구든지 이 방주 안으로 들어오면 예수님을 만나고 그 은혜로 살아갈 이유와 용기를 얻는 그럼 플랫폼이 되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Q: 지금의 답변을 들어보니, 윤성민 대표께서는 단지 이 일을 사업적인 비전을 갖고 시작하신 것뿐만 아니라, 어떤 면에서는 선교적인 비전도 갖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A: 아직 저희가 하는 사업이 큰 수익을 내고 있지는 않지만 어떤 면에서가 아니라 처음부터 성도를 위해서 세워진 사업장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시작했습니다. 그저 생계를 해결하는 것이 목표였다면 안정적인 1호점을 운영하면서 만족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저희는 처음부터 하나의 성공 모델을 만들고 이것을 재생산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만들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성장을 위한 고민을 지속해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성장에는 전도와 선교에 대한 열망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지금으로는 저희 세 명 모두 이전에 받던 월급에 미치지 못하는 수익을 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데도 저희가 지금의 상태에서 기쁨을 느끼는 것은 이 일이 전도와 선교를 위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Q: 직장인의 삶을 안정적이지만 도전이 적은 삶이라면 지금의 삶은 도전적이지만 또 불확실성이 큰 삶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아마도 이 시대의 청년들이라면 안정과 도전이라는 두 축 사이의 어디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았을 때, 양쪽을 경험한 청년 윤성민에게는 어떤 쪽이 좀 더 만족도가 큰 것 같으십니까?

A: 고민 없이 지금의 삶이 더 만족스럽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요즘 시편 48편을 마음에 새기고 묵상하고 있는데 ‘이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그가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리로다’라는 다윗의 고백인데,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것을 주심을 믿고 있고, 지금의 여정도 하나님의 인도하심 아래 있다고 믿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저와 영원히 함께하신다고 약속하셨고, 그 약속은 성취될 것이기 때문에 지금의 사업이 잘되는 것과 관계없이 제게는 현재의 삶이 가장 좋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사실, 많은 분이 고민을 상담하러 오시는데, 그중에는 저보다 선배들도 있고 후배들도 있습니다. 저도 매우 안정된 직장에 다니시는 분들에게 그 삶을 포기하고 도전하라고 쉽게 말씀을 드리지는 못합니다. 그중에는 억대 연봉을 받는 분들도 계셨는데, 저도 이전에 교회에서 같이 섬겼던 경험이 있어서 비교적 잘 알고 있던 분이었음에도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테니까 회사 그만두시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저 역시 제가 시작할 때 들었던 현실적인 조언을 해 주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말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으라는 말씀을 드렸는데, 결국 이분께서 사람들의 말을 다 듣고, 기도하고 말씀을 붙잡고 결정을 내리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일을 통해서 각자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다 귀한 것 같습니다. 누구는 선교사가 되어야 하고 누구는 목회자가 되어야 하고 누군가는 사회에서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각 여정에서 겪는 경험이 모두 같을 수는 없고 또한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도 다른 것 같습니다. 저도 사업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는 폭도 점점 넓어지는 것 같습니다. 저 또한 제 여정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고 있기도 합니다.


Q: 요즘 청년들이 매우 불안해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청년기를 거쳐온 40대의 입장에서 지금의 30대와 20대를 보면, 40대가 누렸던 기회들과 비교할 때 상대적인 박탈감이 젊은 세대로 갈수록 점점 커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모 세대가 누렸던 성장의 기회를 누릴 수 없는 세대들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을 듯합니다. 기업가로서 또한 성도로서 이런 현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A: 저 역시 그 세대에 속한 사람으로서 원론적인 답을 드릴 수밖에 없을 듯 합니다. 제 주변을 보면 그냥 눈뜨니까 살아간다는 친구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무엇인가 도전을 하고 혁신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냥 눈을 떠서 하루를 살아가는 청년들 그 중에는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는 친구들도 많고, 수면제 없이는 잠을 이루지 못하는 친구들도 많습니다. 알코올에 의존하는 친구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건강한 삶의 모습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친구들이 저를 찾아오기도 하고, 고민을 상담하기도 합니다.

주변에 있는 이런 친구들을 보면서 전도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게 됩니다. 제 생각에 하나님을 믿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영적인 존재인 인간은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알고 계시는 것처럼 하나님을 만나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잘 나거나 잘해서 믿는 게 아니라, 은혜로 믿는 것입니다. 제 신앙의 핵심은 간단히 이처럼 설명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 3장 15절에 처음부터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떠났을 때 여자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말씀하셨고, 그 약속이 성취되어 이사야 7장 14절에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이름이 임마누엘이라고 쓰여 있는 것, 그리고 마태복음 1장 21절에 그의 이름이 예수가 되어 이는 모든 사람을 구원할 구원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구원자로서의 직분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것을 믿음으로써 근본을 바꾸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서 물고기가 물 밖에 있을 때, 미역을 준다고 살아날 수는 없습니다. 물고기를 물속에 넣어주어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 방법과 행위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너무 발전되어 있고 모든 점에서 편리한 시대입니다. 무엇이든 혼자서 할 수 있는 시대, 일상에서 다른 사람들이 없어도 살아가는 것이 가능한 시대입니다. 모든 것이 편해지고 가능해지는 상황에서 왜 개인들의 상태는 더 어려워지고 있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제 답은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저 역시 율법과 종교와 행위로서는 아주 바르게 살고 있다고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께서 저를 창조하신 것과 예수 그리스도가 저를 구원하셨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제 근본이 변화한 것입니다. 이 근본이 바뀌는 것이 다라고 생각합니다. 나머지 여정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따라갈 뿐이지 제가 지금 무엇을 한다고 해서 제 삶의 주인이 바뀔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변의 많은 경우에는 그 삶의 주인은 자신입니다. 거칠게 말하면 하나님의 자녀와 자기 자신이 왕인 사람으로 나뉘는 것입니다. 신자와 불신자입니다. 그 중간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결국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야만 행복하도록 창조되어 있는데 그 유일한 한 길인 그리스도를 모르면 행복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행복의 기준도 잘 먹고, 잘 살고, 돈 많이 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해야 하는 것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저는 복음이 곧 그리스도라는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 오랫동안 마음에 품어 왔습니다. 복음은 복된 소리라는 뜻입니다. 그 복된 소식이 왜 그리스도인가? 그 근거는 무엇인가? 로마서 1장에서 사도 바울이 자신을 예수님의 종이라고 이야기하고, 이 복음이 하나님이 선지자를 통해 그의 아들에 관해 성경에 미리 약속하셨다는 말씀을 보았습니다. 그 아들은 다윗의 후손이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해서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설명에서 저는 제 고민의 답을 찾았습니다. ‘왜 그리스도 자신이 복음 자체이신가?’라는 저의 오랜 질문에 대한 답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나서 제 고민이 정말 간단하게 정리되었습니다. 저는 복잡하면 못 믿는 사람입니다. 복음이 어렵고 백 팔 배를 해야 하는 수고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면 저는 믿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나를 믿게 한다는 그 사실이 제게는 정말 크게 다가왔습니다. 지금 청년 세대의 어려움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누군지에 대한 정체성이 확인되면 더 이상 먹이를 찾으러 다니지 않아도 됩니다. 저는 물고기인데 지금 물 안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안전합니다. 비록 물속에서도 힘이 들 때도 있고 어려움이 있겠지만, 이미 방주 안에 있기 때문에 방주가 흔들려도 저는 안전합니다.



Q: 요즘 가나안 성도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아마 주변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교회 공동체를 떠나서 있는 사람들이 있으실 듯합니다. 코로나 기간에 이런 상태에 계신 분들이 더 늘어난 것 같기도 합니다. 특히 청년 세대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는 것으로 보입니다. 아까 복음에 있어서 중간은 없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사실 신자와 불신자의 두 부류로 나누려 할 때, 가나안 성도가 어디에 속하는지는 바로 답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청년으로서 이런 현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A: 모이기를 폐하는 사람들처럼 하지 말라는 말씀이 성경에 있는데, 이런 점에서 초대 교회 성도들은 참 모범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때는 순교하는 사람들도 있을 만큼 거센 핍박이 있었지만, 사도행전 2장을 보면 날마다 모이기에 힘썼던 것 같습니다. 또한 구원 얻기로 작정 된 자들, 구원받는 자들이 늘어났다고 쓰여 있습니다. 성도가 모여서 교제하는 것은 자기들이 좋기 위함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날마다 모이기에 힘쓰라는 말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왜 모여야 하는지 모르겠는데 자꾸 모이라고 하니까 모이기가 싫었습니다. 세상 친구들과 즐겁게 놀면서 함께 어울려서 술도 마시고 하면서 즐겁게 지냈습니다. 이렇게 친구들과 지내는 게 즐거운데 왜 자꾸 교회에서 모이라고 하지? 나는 예수님 믿고 구원받았다는데 왜 교회에 다녀야 하지? 그 구원은 취소되지 않는다는데 왜 계속해서 교회에 나가야 하지? 이런 근본적인 의문들이 있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때에 원하시는 자리에서 원하시는 일을 하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이 의문에 대해 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그렇게 순종할 때 영원히 살아있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이것을 체험하고 나서 말씀에서 다시 확인하고 나니까 제 삶에서의 방향이 온전히 하나님을 향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그래서 결국 제가 찾은 답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이 구원 얻기를 원하신다는 것과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그 일을 하기를 원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전도의 미련한 것이라는 구절에서 제가 어떻게 전도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답이 문화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코로나 시기를 겪으면서 노방 전도와 같은 대면 방식을 통한 전도가 정말 어려워졌습니다. 개인적인 접촉을 회피하는 시대가 되었으니까 말입니다. 또한 지금은 한국 문화의 절정기 같습니다. 청년들이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런데 정말 복음을 알고 복음을 누리는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문화가 있다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아무리 재미있어도 결국 남는 것은 허무밖에 없습니다. 저는 정말 술 마시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지금도 가끔 술을 마시기는 합니다. (웃음) 그런데 술을 마실 때는 즐겁지만 다음 날 일어나면서도 ‘어제 술 마셔서 감사하다.’ 이러면서 일어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늘 마음속에 허무함과 후회가 남았습니다. 스스로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다짐도 여러 번 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 가서 ‘내가 다시는 교회에 안 온다.’ 이런 생각을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늘 제 빈 곳을 감사로 채워주셨습니다. 이것이 세상의 문화와 교회 문화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차이를 제가 어떻게 누리면서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줄 것인가가 저의 고민입니다. 그런데 구원으로 들어가는 문은 좁지만, 멸망으로 가는 길은 넓다고 했습니다. 세상 문은 너무 넓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저도 이 문으로 빨려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이 세상의 흐름은 그만큼 거세기 때문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세상은 이미 나라는 자기 중심성과 물질로 대표되는 편리함 그리고 성공을 통한 자기 욕망의 실현을 완전히 지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그 구조 안에서 제가 대항을 한다는 건 정말 하나님이 주시는 힘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대적하려는 마음조차 잊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저는 문화에 주목합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누리는 사람들 그리고 절대 주권과 섭리를 믿는 사람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교회와 내일의 인터뷰에 흔쾌히 응한 이유도 이런 측면에서의 고민을 하고 계신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요즘 친구들을 만나면, 신앙이 없는 친구들은 다들 먹고사는 것과 관련된 이야기뿐입니다. 친구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저는 이 친구들과는 대화가 잘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다만 그들의 가치관을 존중할 뿐입니다. 그러나, 저의 가치관과 다르기 때문에 쉽게 그 친구들 말에 맞장구를 치거나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주로 듣는 편입니다. 그런데 그 대화 중 상당 부분이 불평과 불만 그리고 짜증 섞인 말이나 욕설이라서 듣기가 어렵습니다. 이런 언어 속에서 살아가는데 그 친구들의 영혼이 살아날 수 있을까요? 저는 살아나기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 안에서 영혼이 계속 말라 죽어가는 것 같습니다. 우울은 그 증상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동시에 그렇다면 크리스천들끼리만 좋을 것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 또한 답은 아닙니다. 우리만 좋다고 이 복음을 독점하고 있으면 성경의 말씀과도 일치하지 않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전도의 미련한 방법으로 저들을 구원하신다는 것과 땅끝까지 가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말씀은 누가 듣고 행해야 하는 것일까요? 저는 제가 그 증인이 되어야겠다고 삶의 방향을 정했습니다. 말만 하는 말쟁이가 되지 말고 정말 저렇게 한번 살아봐야겠다. 내가 정말 말씀대로 살았을 때 사람들이 나를 찾아오도록 해야겠다. 그런 플랫폼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가서 말하는 것 말고, 나 이렇게 복음 듣고 이런 문화에서 살고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그들을 찾아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 청년부에 새 가족이 되게 많이 오는데 자원해서 오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제가 청년부에서 섬길 때, 문화를 통한 전도를 시도해 보기 위해서 농구 캠프를 기획한 적이 있습니다. 저희가 우선 돈을 모으고 프로젝트에 대한 기획서를 써서 교회에 제출하고 일부 재정을 지원받아서 600만 원 규모의 펀드를 모았습니다. 그리고, 저희 새 가족 중 농구 하는 친구들과 일반 농구 동아리 등을 초청해서 400여 명을 모았습니다. 명지전문대 체육관을 빌렸는데, 실내 정규 농구 코트에서 경기하는 일이 흔치 않은데, 거기에다 상금도 주는 대회이다 보니 많은 분이 관심을 두고 참여했습니다. 이 일을 통해서 그냥 교회 안에서 무기력하게 누군가 오기만을 기다리지 않고, 그냥 우리끼리 좋다고 만족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 새로운 전도의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그 경험을 통해서 직접 복음을 말하지 않아도 이 일을 통해서 누군가는 또 교회로 유입되는 것을 보았고, 하나님의 구원을 얻기로 작정 된 자들을 위해서 계속 씨를 뿌리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Q: 질문을 교회 공동체로 옮겨보고 싶습니다. 지금 답변 중에 성경을 자주 인용해서 말씀하시는데, 본인이 관심이 있으셔서 성경을 열심히 읽으신 것인가요? 아니면 교회의 프로그램에서 훈련받으신 것인가요? 말씀 중에도 원래 이렇게 복음에 깊이 빠져있지는 않았다고 하셨는데, 어떤 계기가 있으셨는지도 궁금합니다.

A: 지금 제가 다니는 교회는 제가 어렸을 때 우리 집 아래에 있던 작은 교회였습니다. 부모님께서 출석하시면서 저도 자연스럽게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교회 시스템에서 모범적으로 자란 사람도 아닙니다. 심지어는 학생부 예배도 잘 가지 않았습니다. 대학부에서도 대학부 예배만 드리고 소그룹 활동은 하지 않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계속 듣고 자랐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복음에 대해서 그냥 많이 들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너무 귀에 박히도록 들은 이야기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나무는 땅속에 물고기는 물속에 인간은 하나님 속에 있어야 한다거나, 그리스도의 세 가지 직분 왕, 선지자, 제사장 뭐 이런 단편적인 지식이나 반복되는 비유들이 너무 익숙해진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저보다 다섯 살 정도 많은 형이 같이 교회를 다니다가 미국으로 공부하러 갔는데 그곳에서 목회로 부르심을 받고 공부를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그 형이 회심하는 과정과 부르심으로 인도하시는 과정을 제가 보았고, 그 형을 만났을 때 형이 제게 전해 준 복음이 그 형의 삶과 함께 전달되면서 정말 임팩트 있게 전해졌습니다. 구원이 노력이 아니라,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받는다는 그 단순한 진리를 전해주면서 제가 말씀을 안 믿고 있다는 것을 깨우쳐 준 선배였습니다.

그 형과 만남 이후 제 신앙을 돌이켜보니 그저 하나님의 말씀을 참고하는 수준으로 여기고 있었지 제가 믿고 순종하는 말씀으로 여기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강권적인 은혜로 믿음을 주셨는데 내가 순종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이후로 제 안에 있는 염려와 두려움에 대해서 질문이 생겼고, 그 답이 말씀 안에서 찾아지게 되었습니다. 사실 제가 어떤 훈련을 받거나 암송을 연습한 것이 아닙니다. 제가 정말 간절하게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고, 그 답을 성경에서 발견했을 때, 그 영향력이 정말로 크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외워진 것입니다. 아직도 성경을 통독해보지 못했습니다. 몇 번이나 도전했지만, 레위기를 넘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성경 말씀 읽는 것이 어려운 사람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그리스도를 중심에 두고 보기 시작하면서 선지자를 통한 구약의 약속이 복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십자가 사건이 제 사건으로 이해되었고 그리스도의 부활이 저를 위한 것이라는 것이 마음에서 고백 되기 시작했습니다. 복음이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그 짧은 거리로 내려오는데 정말 많은 시간이 걸린 것 같습니다. 이후에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고백하게 되었고 내 삶이 하나님의 큰 계획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제 삶에서도 복음이 주는 자유로움을 알게 되었습니다.


Q: 한국 교회를 보시면서 가장 안타까운 점과 그런데도 희망을 찾는다면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습니까?

A: 모이기를 폐하는 시대가 된 것 같아서 너무 안타깝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새롭게 오는 분들도 있지만 공동체를 떠난 분들도 많이 보입니다. 코로나 기간 중 온라인을 통해서 예배를 드리기는 했지만, 온라인 예배에 집중하기가 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3년을 지내다 보니까 공동체가 어려워지는 것은 당연한데, 이 또한 하나님이 허락하신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형식적으로 예배를 드린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 이런 만남도 있는 것 아닐까요? 저도 이런 고민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만약 교회가 겪었던 어려운 시간이 없었다면 그저 믿는 사람들끼리만 좋은 그런 모습으로 남았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전도와 선교에 있다고 하지만 우리가 얼마나 여기에 대해서 갈급함을 가졌는지 돌이켜 봅니다.

그런데 최근에 교회의 내일에 대해서 고민하는 단체들과 교회들이 보여서 정말 반갑고 기쁘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초점을 맞추어서 방향성을 정확하게 알고 나아가면 반드시 제자들이 일어난다고 생각합니다. 이 복음은 계속 선포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를 약속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에 대해 나누는 교제가 정말 중요한 것 같습니다. 말씀은 듣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말씀을 선포하고 내 삶에 적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인터뷰를 통해서 저 스스로도 제 삶의 방향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저만 그리스도에게 삶을 맞추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저 우리끼리만 좋던 문화에서 벗어나고 나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만나고 어울리기를 거부했던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를 원하신다는 말씀을 따라, 우리가 로마에도 가고 헬라인에게도 가고 유대인에게도 가야 하는 것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그런 제자들이 늘어나고 이들이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내는 것이 희망이라고 생각합니다. 코로나를 통해서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 더 관심을 두게 된 것이 제게는 큰 기회로 생각이 듭니다. 이때 제자들이 일어난다면 그것이 바로 희망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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