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교회 안에 세대간의 열린 대화와 소통이 있어야 합니다:기업 혁신의 현장에서 교회를 바라보는 벤처 투자가 송진호 안수집사
- 보현 전
- Sep 22, 2022
- 12 min read

Q: 본인과 현재 하시는 일에 관해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송진호라고 합니다. 경영학을 전공하고 30년 넘게 금융업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첫 직장인 증권거래소 조사부에서 통계를 다루는 일을 했는데, 코스피200지수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면서 단순히 자본시장의 통계 숫자를 다루는 일이 아닌 그 숫자를 만들어 내는 거래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원래 증권거래소는 아주 안정적인 직장이어서 퇴사가 거의 발생하지 않습니다만, 저는 뚜렷한 의지가 있었다기 보다는 무모한 도전을 했던 것 같습니다. 이후 증권사에서 자산운용 업무를 하면서 투자를 업으로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투자자문사를 창업하기도 했고 자산운용사, 은행 등에서 다양한 분야의 투자 업무를 경험했고, 지금은 창업투자회사에서 벤처캐피탈리스트로 비상장기업에 투자하고 육성하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신앙과 관련해서는 분당에 있는 지구촌 교회에서 안수집사로 섬기고 있습니다. (침례교회는 직임에 있어서 별도로 장로를 두고 있지 않고 안수집사로 제직을 구성함) 우리 교회는 하나의 큰 교회 공동체로 구성된 단순한 구조가 아니라 성도들의 작은 공동체인 셀교회(목장 교회)를 바탕으로 큰 교회 공동체를 구성하는 두 날개로 운영이 되고 있습니다. 침례교회 전통에 따라서 평신도들이 이끄는 목장도 ‘목장교회’로 그 목장의 리더들을 목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지구촌 교회는 2003년 처음 셀 교회를 선언하고 목장을 조직했습니다. 당시 제가 속한 목장의 목자님께서 캐나다로 이민을 떠나면서 제비뽑기로 목자를 정했는데 제일 막내였던 제가 목자가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줄곧 목자로 그 목장을 계속 섬기고 있습니다. 사실 형제들이 모이는 셀 교회는 자매들의 셀 교회에 비해 성장도 더디고 배가하는 일도 매우 드뭅니다. 다행히 오랫동안 섬기면서 배가는 못했지만 잘 살아남았고 형제님들과 좋은 교제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에 교회의 여름 국내 단기 선교를 준비하다가 함께 모인 분들 중 30~40대 젊은 형제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목장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대부분 젊은 세대 아빠들이 따로 시간을 내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분들이 지속해서 모이는 목장이 드물기도 합니다. 또 삶의 환경이 다른 선배님들과 같은 그룹에 있을 때 좋은 점도 있지만 서로 관심사나 처한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교제에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이런 이유로 젊은 분들과의 목장을 따로 만들어서 두 개의 목장을 섬기고 있습니다.
약 10년간 유치부에서 찬양 반주자로 섬겼고, 지금은 교육훈련부에서 새생명반으로 부르는 지구촌교회에 처음 오신 성도들의 입문 과정을 돕는 조장이기도 합니다. 교회의 장학위원회에서 장학위원으로도 섬기고 있습니다. 목자들을 섬기는 마을장을 잠깐 하기도 했었는데, 제 능력으로는 지금 섬기는 일도 감당하기 버겁지만 기쁜 마음으로 즐겁게 교회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Q: 송진호 집사님의 신앙 생활 중 증권단 선교회 관련한 이야기를 여쭈어보고 싶습니다. 증권단 선교회는 어떤 단체이고 어떻게 증권단 선교회에서 활동하게 되셨습니까?
A: 증권단 선교회에서 활동하기 이전에 당시 제가 근무하던 회사에서 자발적으로 독립적인 신우회를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을 깊이 알아가게 되면서 신앙 생활을 제대로 해보고 싶던 생각이 가득할 때 였는데, 같이 일하던 친구 중에 신학교를 나온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의 아버님도 목회를 하시고 형제 중에도 목사님이 있는 목회자 가정이었습니다. 이 친구는 군대 가기 전에 아르바이트로 금융 회사에서 전산관련 일을 하다가 전공과는 관련이 없는 전산업무가 본업이 되었고 당시 새로 생긴 회사에 합류하면서 저와 함께 일하게 된 것입니다. 저랑 둘이서 소위 ‘음주 전도단’을 만들었습니다. (웃음) 회사는 불신자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니 무한한 전도의 가능성이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불신자들과 소주도 한 잔하고 맥주도 한 잔 하면서 신우회 멤버를 모았습니다. 그래서 신우회를 조직했는데 참 재미있었습니다. 제가 신앙인으로서 분명한 정체성을 갖고 살기 시작하면서 열정도 있고 의지도 있었습니다. 당시에 직장 생활하면서 교회에서와 똑같이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갖고 있었습니다. 자발적으로 모임을 조직하니까 더 열정이 있기도 했습니다. 매주 수요일에 함께 예배를 드리고, 근처 교회에 함께 가기도 했습니다. 이후 증권사로 이직을 하게 되면서 그 회사의 신우회에 참가하게 되면서 증권단 선교회라는 단체를 알게 되었습니다. 증권단 선교회는 증권업계와 증권 유관기관에 있는 신우회들이 연합한 선교단체인데, 증권단 선교회를 통해서 여러 회사들이 어떻게 신우회 활동을 하고 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에 계시던 분들 중에는 금융인으로서 전문성을 갖고 있으시면서 따로 신학을 공부하셔서 전도사가 되신 분도 계셨고 다들 열정이 대단하셨습니다. 그리고 당시 금융사의 대표로 계신 분들 중 몇 분께서 선교회를 잘 지원해 주셨습니다. 코로나 상황을 겪으면서 약간 주춤했지만 그 이전까지 매해 여름 장애우와 함께 하는 물놀이 캠프와 겨울에는 장애우와 함께 하는 음악회를 지속적으로 해왔습니다. 장애우들이 물놀이를 하려면 적어도 한 명의 성인이 함께 동행하고 함께 놀아 주어야 합니다. 대부분의 장애우 기관에서 장애우 한 명당 전담 돌봄 인원을 배치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돕는 손길이 있어야만 장애우들이 물놀이를 할 수 있습니다. 증권단 선교회에서 각 회사마다 기관을 매칭하고 한 기관을 한 회사가 섬기기 어려우면 두 세 개의 회사가 함께 섬길 수 있도록 해서 신우회 회원들이 장애우들과 함께 물놀이를 합니다. 신우회원들 가족들도 함께 할 수 있어서 자녀들이 장애우 친구들과 어울릴 수도 있습니다. 섬김을 받는 쪽도 섬기는 쪽도 모두 기쁨이 넘치는 시간이었습니다. 아이들끼리 서로 어울려서 장기자랑도 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데 2000년 초반부터 꾸준히 섬겨오면서 매우 안정적으로 운영이 되고 있었습니다. 음악회를 준비해서 티켓 판매 수익을 장애우 시설에 기부하기도 하고, 무료 급식소를 지원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구제와 이웃 섬김의 활동을 해 왔습니다.
증권단 선교회 주관 2016 장애우초청 물놀이 여름캠프

(사진출처:하나복지센터 https://hanawf.kr/hana/bbs/board.php?bo_table=gallery&wr_id=120&page=19)
Q: 다른 업계에 있는 신우회에 비해서 매우 적극적으로 활동하신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라는 말씀도 있습니다만, 돈은 성경에서 늘 죄악과 연결되는 모티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돈을 직접적으로 다루시는 업종이다 보니 혹시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신우회 활동도 열심히 하시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크리스천들에게 금융업이라는 것이 다른 직업과 달리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또 그것이 신우회의 활발한 활동과 연합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십니까?
A: 많은 교회 관련 기관들이 돈과 관련한 내용을 다루는 것 같습니다. 일례를 들어 FWIA(Faith and Work Institute Asia) 같은 곳에서도 돈에 대한 성경적 관점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다른 사람의 자산을 관리하는 일이자 정당한 투자를 통해서 수익을 내는 일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금융업도 어떤 역할이 주어진다는 점에서 다른 업종과 큰 차이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사람들이 모인 조직에서는 언제나 탐욕과 권력에 대한 유혹이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는 교회에서도 말입니다. 교회에서도 이권을 둘러싼 잡음들이 들리는 때가 있는데 이 역시 세상 속에 있는 기관으로서, 조직으로서 가진 한계가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꼭 금융업이 이런 유혹이 더 크다는 것을 느끼지는 못했습니다. 투자업에 있는 사람으로서 저도 파생상품을 다루어보기도 했습니다. 파생상품은 말 그대로 실물에서 파생된 숫자이고 실물거래와 달리 증거금으로 보다 더 큰 배수로 거래를 합니다. 작은 시세 변동에도 큰 수익의 변동이 따르기 때문에 더욱 정교하게 시장지표를 보고 판단해야 하고, 판단에 대한 책임은 의사 결정을 한 사람이 져야 하므로 더 많은 고민과 냉정한 판단이 요구됩니다. 좀 더 깊이 생각하면 투자라는 게 가치에 대한 판단을 거래하는 것이기 때문에 제가 수익을 내려면 누군가는 제가 판단한 것보다 더 높은 가치가 있다고 판단해야, 거래가 성립하고 이윤을 낼 수 있기 때문에 속이거나 과장을 할 위험이 있지만, 사실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는 금융업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산업에 다 숨어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아직 쓸만한 핸드폰을 2년마다 한 번씩 바꾸도록 유도하는 마케팅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실 현대 경제에서 발생하는 거래의 상당 부분이 실제적 필요 이상의 가치를 교환하게 하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금융업이 직접적으로 돈을 다루다 보니 투기적인 면이나 부가가치 창출의 측면에서 취약하다는 비판도 일부분 긍정할 수 있지만 그런 현상의 근본적인 원인도 극단적인 수익 추구가 원인이지 금융 자체의 문제는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금융업의 긍정적인 측면도 분명히 있습니다. 지금 제가 하는 벤처투자는 기업의 미래가치를 평가해서 그 가치가 실현될 수 있도록 장기적으로 투자하는 업입니다. 특히 금융과 투자의 다양한 영역을 경험하고 기업들을 만나다 보면 저의 경험이나 판단을 통해서 기업들을 도울 수 있다는 점에서 직업에 대한 만족도가 높습니다.
오히려 금융업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말씀하신 대로 성경에서 돈에 대해 경고하는 이야기들을 듣고 자란 크리스천들이 금융업에 입문하면 자신이 크리스천으로서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크리스천이 보여야 할 것 같은 모범적인 모습과 그에 미치지 못하는 자기 모습 사이에 있는 간극을 느끼기 때문에 자신의 신앙 정체성을 드러내기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제가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한 증권거래소에 근무할 때, 같은 팀에 교회를 열심히 다니던 선배가 있었습니다. 그분은 당시 거래소에 있는 신우회에 속해 있는 분이셨는데, 믿음의 중심이 바로 서기 전의 저는 솔직히 그 모습이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자기들끼리 모인 폐쇄적인 모임, 그리고 기복적인 모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스스로 하나님을 깊이 믿기 시작하면서 나중에 그 선배분을 뵈었을 때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 선배님이 저를 위해서 열심히 기도해주신 것이 제가 하나님을 만나는 데 영향을 주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이후에 제 눈에는 이해가 되지 않는 신앙의 모습이라도 누군가를 위해서 하나님이 귀하게 사용하실 수 있다는 생각에 함부로 판단하거나 비난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요즘 ‘예수 천당, 불신 지옥’ 외치시는 분들을 보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저는 잘 모르겠지만 누군가가 그 외침을 듣고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다면 이 일도 하나님께서 귀하게 보실 수 있는 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부분을 깨닫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신앙이 단지 그렇게 눈에 보이는 분명한 영역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제가 신앙생활을 본격적으로 해보려고 결심을 하고 술도 멀리하고 일을 하면서도 제 소신껏 하려고 노력했는데 동시에 제 내면에 ‘자기 의’와 ‘남에 대한 판단’이 생겨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제가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는데 마음이 온유하고 너그러워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경이 말하는 기준으로는 정말 나쁜 사람이 되어 버린 것 같았습니다.
제가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주변에 정말 다 훌륭한 스펙을 가진 분들만 있었던 것 같습니다. 능력도 좋고, 학벌도 좋고, 성과도 좋은 분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그런 가운데에서 자신의 소신을 지키면서 살아남기가 어렵습니다.
그런 가운데 자기 스스로 돌아볼 때 모범적인 삶을 살지 못한다는 정죄감이 크리스천으로서 정체성을 표현하지 못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전통적으로 한국 교회가 성결에 대한 강조가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이에 대해서 사회에서도 암묵적인 기대감이 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안타깝게도 교회에 대한 이런 기대는 많이 무너진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기 삶에서도 정체성을 뒷받침할 근거가 약해지고 대외적으로도 교회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여전히 아름다운 삶을 살아내는 분들이 더 많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사실 제가 근무하는 곳은 신앙을 가진 분들이 많습니다. 특히 회사의 시니어들 중 같은 신앙이 있는 사람들 간의 의견 대립도 있고 때로는 비본질적인 일로 논쟁도 합니다. 신앙인이어도 그럴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증권단 선교회는 자신의 대외적인 정체성을 분명히 하기 위한 그리고, 신앙인으로서 완벽한 삶을 살아내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그 괴리를 줄여보고자 하는 도구적인 역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이런 면에서 동일한 고민이 전제된 모임이다 보니까 상호 간의 신뢰 수준도 높고 활발하게 활동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Q: 신앙인으로서 삶을 지켜내는 것의 어려움을 말씀해 주셨는데, 송진호 집사님께도 동일한 어려움이 있으셨을텐데 어떻게 그 어려움을 겪어내셨습니까?
A: 저는 결혼을 하고 나서 아내를 통해서 신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비록 교회에 나가기 전이지만 고등학교 윤리 시간에 배웠던 중용의 신독(愼獨: 군자는 홀로 있을 때도 그 몸가짐이 어그러짐이 없이 바름)이라는 개념이 깊이 마음에 자리 잡았습니다. 신앙을 갖게 되면서 신독과 코람데오(Coram Deo)가 같은 것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무도 없이 하나님 앞에 있을 때 나의 모습을 바르게 하는 것이 신독의 개념과 같다는 것입니다. 제가 저의 신앙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휴대폰 연결음이나 식사 기도 등 대외적으로 드러나는 부분부터 제가 신앙이 있다는 것을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저 스스로 경계선을 좀 그어두는 의미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고 나니, 전에 함께 술도 마시고 하던 친구들이 그런 저의 모습을 놀리기 시작합니다. 그런데도 그것을 지속했던 것은 저를 어떤 틀에 가두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외환은행(현 하나은행)에서 근무할 때 점심시간에 테이블에서 기도하고 식사하는데 나중에 어떤 선배분이 자리로 오셔서는 ‘너 교회 다니는구나’라고 말씀하고 가셨습니다. 제가 기도하는 모습을 보셨다고 하셨습니다. 제게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일관된 얼굴을 갖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회사에서의 얼굴, 집에서의 얼굴, 그리고 교회에서의 얼굴이 다르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누군가가 교회에서는 정말 신실한 집사님으로 사랑이 넘치는 모습으로 사람들을 대하다가, 회사에서 직원들을 막 대하거나 자기의 이익만 챙겨서 보너스를 많이 받으려고만 한다면, 더구나 또 가정이나 친구들을 만나면 또 좋은 사람의 얼굴로 대하다가 밖에서는 또 엉뚱한 행동들을 하고 있다면 그것이 옳은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다른 사람의 사례가 아니라 제 삶에서도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일들이었습니다. 거기에서 일관된 모습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던 것입니다. 그렇게 한동안 정말 세상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 역시 좋은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어느 순간 제가 너무 어울리기 어려운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더욱이 앞에 말씀드린 대로 저의 사적인 삶에서도 흠이 없으려고 노력하고, 성과도 잘 내고 그러면서 저에 대한 확신이 커져 버려서 ‘자기 의’가 되기도 했습니다. ‘저 사람 말이 맞기는 하지만 저 사람을 대하기는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아...’ 이런 마음들이 직원들에게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저의 그런 뾰족한 모습을 깨닫고 직원들과 간단히 맥주를 하기도 하고 식사를 마친 이후에 직원들끼리 마음 편하게 놀도록 자리를 일찍 일어서기도 하는 등 자체의 규칙과 방법들을 만들어 갔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이 규칙 세우기는 진행 중인 상태입니다. 환경과 상황에 따른 지혜로운 행동이 필요함을 배웠습니다. 그러다 보면 어떤 때는 무너지기도 하고 실수도 할 수 있지만, 그래도 실수를 통해서 나름의 경계선을 파악하고 세워가는 것 같습니다. 사회에서 절대적인 기준을 지키시려는 분들이 잘못하신다는 말씀이 절대 아닙니다. 그분들은 그분들 나름의 인도하심과 확신을 갖고 하시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다만, 저의 경우에는 말씀드린 대로 상황과 환경을 고려해서 하는 것이 더 지혜롭다는 생각이 드는 것뿐입니다.
아직도 가끔 술자리에 가야 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합니다. 왜 왔냐고 핀잔을 주는 친구가 있으면, 불신자 만날 곳이 술자리밖에 없다고 농담 반 진담 반 이야기합니다. 저는 하나님을 모르는 친구들에게 결혼 잘하고 싶으면 교회 오라고도 합니다. 과연 그것이 올바른 복음 전파의 방법이냐고 누군가 따져 물을 수도 있겠지만 저는 이렇게 해서라도 교회와의 접점을 늘려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그렇게도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누군가는 이런 이야기를 듣고 교회에 관해서 관심이나 궁금함을 갖기도 합니다.

Q: 현재 벤처캐피탈에서 창업 투자를 하고 계시는데, 아마 기업들의 혁신적인 변화를 많이 보고 계실 듯합니다. 상대적으로 교회의 변화는 더디게 보이는데, 어떤 분들은 교회가 시대의 흐름에서 뒤처지고 있는 것을 걱정하기도 하십니다. 벤처 생태계에 속해있는 투자가로 그리고 교회의 리더인 안수집사로 두 영역을 모두 경험하고 계신다고 생각됩니다. 한국 교회의 변화에 대해 송진호 집사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A: 교회는 분명 기업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가 지켜야 하는 본질적인 부분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표현들이 특정한 행동에 대한 찬반으로 나타나는 것이 과연 적절한가라는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요즘에 힙합이라는 음악으로 찬양하는 팀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또 조금 더 이전에는 드럼의 사용에 대해서도 비슷한 논쟁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방식 자체가 혁신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새롭다고 해서 무조건 반대하는 것 역시 올바른 태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한국 교회의 포용력이 너무 제한되어 있지 않으냐는 생각을 합니다. 즉 교회 스스로 교회는 이래야 한다는 기준을 설정해 두었는데 이 기준들이 변화를 고려하지 않다 보니, 자신이 했던 발언을 수정하는 것이 마치 신앙을 배도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경직된 부분이 문제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속한 지구촌 교회도 초기에 불필요한 건물들을 갖지 않으려는 지향점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자체적으로 수양관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저는 처음에 교회가 정한 방침을 준수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으나, 결국 수양관이 지어졌습니다. 그런데 지금 수양관이 나름 교회에 유익하게 잘 사용되고 있습니다. 방향을 바꾸는 게 문제는 아닙니다. 처음 판단이 잘못되었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양한 의견이 있을 때 트집을 잡아서 상대의 의견을 깎아내리려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 같습니다. 이런 태도는 사회에서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공론의 장을 열고 열린 토론을 통해서 공감대를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론 이 공론장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사심을 내려놓고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동시에 사람들의 죄 된 성향을 무시하지 말고 사적인 욕심들이 개입할 여지를 인정하고 이를 지혜롭게 걸러내는 프로세스의 구축도 필요합니다. 복잡한 일입니다만 필요한 일이라면 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의 혁신이라는 것이 어떤 프로세스와 방식의 문제라기보다는 정말 사심을 내려놓는 우리의 내면적인 변화에 더 가까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것이 교회 개혁의 가장 큰 숙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제가 과거에 정부의 지분이 많은 기업에서 근무한 적이 있습니다. 정부 지분이 많다 보니 따로 분명한 소유주가 없어서 운영이 약간 공무원 조직 같은 느낌이 있는 조직이었습니다. 이곳에서 하는 회의가 너무 힘들었는데, 임원 회의에서 한 명이 탁월한 성과를 낼 기회를 가진 임원이 의견을 내면, 이분을 잘 도와서 회사 전체적으로 큰 성과를 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자신의 성과가 돋보이지 않을 것 같아서 협조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를 여러 번 보았습니다. 이런 문제가 비단 회사에만 있고, 교회 조직 안에는 없을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요? 저도 교육부서에서도 섬겨보고, 장학 위원회에서도 섬기고 있지만 교회 안에서도 자기 부서의 사역적 성과를 두고 경쟁하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됩니다. 더욱이 교회의 특성상 강한 오너십이라는 부분이 존재하지 않을 때는 욕을 먹지 않고 문제없이 넘어가는 것이 최선의 목표처럼 여겨지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부분에서 교회가 교회 적인 목표에 한마음이 되어서 협력하고 내부적으로도 덕을 세우는 운영을 보여주는 교회가 나오면 정말 멋지겠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한국 교회 안에서도 개인들의 평가는 다르겠지만 이런 면에서 좋은 시도들이 있었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항상 이면에는 보이는 것과 다른 이야기들이 있었다는 말도 동시에 듣게 됩니다. 꼭 아름다운 이야기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결국 세상의 빠른 변화 속에서 교회도 당연히 변화하고 있고, 여러 가지 형태의 도전과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고 보입니다.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어디까지를 봐야 하나 고민이 되고 결국은 ‘나나 잘하자.’고 귀결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내가 성도로서 무엇을 할 수 있고 어디까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고민합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저는 소위 586이라고 부르는 60년대 후반에 태어난 세대입니다. 저희 또래가 어떻게 보면 사회뿐만 아니라 교회에서도 매우 일찍 안수집사가 되고 장로가 되는 세대였던 것 같습니다. 요즘은 30대, 40대 장로를 보기가 어렵습니다. 이 연령대에 계신 분들이 제일 사회생활을 바쁘게 하실 때일 수도 있지만, 저는 청년들이 줄어드는 것 이상으로 이 세대의 남자분들이 빠르게 줄어가는 것 같습니다. 이분들과 교회를 이끌어 가는 책임을 나누어야 하지만 함께 나누어질 분들이 많이 보이지 않습니다. 어찌 보면 50대까지는 부모님들의 결핍을 보고 자라면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잘해야 한다는 그런 신념을 갖고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반면에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에 태어난 세대들의 경우에 그 세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중심적인 가치들을 교회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저 역시도 그 세대의 분들과 대화를 시도해 보지만 저와 맞닿은 세대임에도 저 역시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대중문화가 발전하면서 말씀이 주는 감동 대신에 어떤 콘텐츠를 통한 감동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사회 전체적으로 제도적인 합리성이 개선되면서 그런 기준을 교회에 적용하기도 합니다. 일례로 얼마 전에 젊은 삼십 대 부부가 교회에 새로 왔는데 등록과 동시에 교회에서 필요한 것들이 시스템으로 앱을 통해서 착착 안내되기를 기대하셨던 것 같습니다. 요즘 대부분의 사회 기관들의 경우는 사실 그렇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만 하더라도 한국에서 상당한 규모를 갖춘 교회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이런 면에서 미흡한 부분이 많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이전에는 교회로서 당연한 삶의 모습을 교회 밖에서 살아가기가 어려웠다면, 요즘은 교회 밖에서 당연한 것들이 교회 안에서는 당연하지 않다는 점에서 교회에 처음 오신 분들이나 젊은 세대들이 당황할 수 있다고도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예를 들어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오늘 교회에서 철야 기도회가 있어서 퇴근하겠습니다.’라는 말은 비록 자기가 할 일을 다 마쳤다고 하더라도 쉽게 하기 어려운 분위기였다면, 요즘은 내가 할 일만 다 했으면 굳이 이유를 말하지 않고 퇴근해도 이상할 게 없는 분위기입니다. 전에는 함께 일하는 후배들에게 ‘주말에 뭐 했어?’ 묻기도 하고, 교회에서 있던 일도 이야기해도 이상하지 않았는데, 요즘은 이런 이야기를 이유 없이 굳이 꺼내는 게 좀 이상한 것 같기도 합니다. 저도 전에는 팀원들의 개인적인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많이 노력하고 이를 고려해서 업무를 할 수 있도록 조율했지만 , 최근에는 이런 대화를 시도하는 사람이 상대가 원치 않는 내용을 이야기하고 대답을 기대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고민이 생겼습니다. 이런 부분에 대한 대화와 이해가 있어야 한국 교회가 시간이 걸리더라도 다음 세대와 함께 변화해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Q: 한국교회를 보시면서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시는 부분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희망은 어디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A: 가장 안타까운 점은 다음 세대가 떠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이러한 현상에 부모 세대의 신앙 모습 혹은 부모가 자녀에게 신앙을 가르친 방식에 대한 반감이 있다는 점에서 마음이 아픕니다. 고등학교 때까지 모범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다가 성인이 되어서 교회를 떠나는 친구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고등학교 때까지 교회를 다녀주었다는 표현이 맞을 수도 있습니다. 동시에 교회를 떠난 자녀를 보면서 마음 아파하면서 기도하는 부모들의 모습도 있습니다. 왜 이런 문제가 우리에게 있는가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개인적으로는 부모들이 아이들을 믿고 기다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믿음이 내 의지로 되지 않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내 결단과 노력으로 되지 않는 것을 압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인도하심이 있습니다. 제가 새 신자를 위한 교육과정인 새생명반에서 우리 교회에 처음 나오신 분들을 많이 만납니다. 그런데 예수님에 관해서 이야기를 한 번도 듣지 못한 분이 오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거래처에서 만난 분이 자기를 위해서 기도해주는 것을 알고 나왔다는 분도 계시고, 어떤 성도분을 보고 감동이 있어서 나오신 분들도 간혹 있습니다. 물론 저처럼 결혼하고 아내의 권유로 인해서 나오는 분들, 더욱이 가족들이 다 나오니까 그 대화에서 소외되기 싫기 때문에 마지못해서 나오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런데 간혹 이런 분들이 “저는 등록은 부담되지만, 궁금하긴 한데 그냥 청강하면 안 됩니까?” 이렇게 묻기도 합니다. 당연히 등록이 원칙이지만, 교회의 본래의 목적을 생각해 보면 그 원칙을 유연하게 적용할 수도 있어야 할 듯합니다. 누군가가 엄격한 기준을 들이대서 기준에서 벗어났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 엄격한 기준이라는 것이 대부분 사람이 정한 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교회의 제직으로 섬기면서 어떤 때는 교회의 운영을 깊이 들여다보고 알아야 하는 것이 부담되고 싫어지기도 합니다. 한 교회를 오래 섬기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는 분들도 많아지기 마련인데, 교회의 운영을 살피다 보면 부족한 부분들이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그런 부분을 어떻게 교회의 덕을 세우면서 고쳐나갈지는 참 지혜가 매우 필요한 일인 것 같습니다. 또 중대한 결정을 앞두고는 서로 의견이 나뉘기도 하고 논쟁이 되기도 합니다. 한국 교회의 판단 기준이 사회의 그것보다 더 윤리적이고 더 합리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어찌 보면 이런 면에서 한국 교회가 사회에 영감을 줄 수 있는 더 멋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기준들이 너무 더디게 변화한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한 편으로는 교회에 대해서 고민하는 성도들이 꾸준히 있다는 점이 희망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는 사람들이 모이고 사람들이 서로 만나는 장이 되어주는 힘이 있습니다. 최근 우리 교회에도 코로나 상황이 나아지면서 꾸준히 새로 등록하는 분들이 오시고 계십니다. 제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빠르게 외형을 회복해가는 교회를 보면서 교회가 지닌 힘을 새롭게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또한 성도들의 전반적인 인식의 수준이나 학습의 수준도 더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 역시 이제 젊은 세대들을 점점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이 어려워지겠지만 한 편으로는 코로나로 인한 위축된 순간이 있었음에도 빠르게 교회를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세대 간의 문제도 하나님의 방법으로 답을 찾아갈 수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막연하게 해보면서 다음 세대에 대해서도 희망을 놓지 않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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