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이웃을 돕는 것은 이웃의 삶의 실제적인 변화로 이어져야 합니다:NGO 활동가로 이웃을 돕는 김예영,김예진 간사
- 보현 전
- Oct 14, 2022
- 13 min read
Updated: Oct 20, 2022

Q: 본인들의 소개와 하시는 일에 관해서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예영(이하 Y): 안녕하세요? 저는 프로보노 국제협력 재단의 대표 간사를 맡은 김예영이라고 합니다. 대학교에서 NGO학과 사회복지학을 전공했습니다. 전공 외에 청소년 지도사 자격도 획득해서 청소년들을 지도하고 함께 현장에서 뛰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프로보노 국제협력 재단에서 활동 간사로 활동했고 올해로 10년이 되었습니다.
예진(이하 J): 안녕하세요? 저는 프로보노 국제협력 재단에서 간사로 섬기고 있는 김예진이라고 합니다. 저는 춤추는 것을 좋아했는데,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프로보노 국제협력 재단의 문화 활동에 참여하다가, 중학교 때 또래 상담을 통해서 간사로서의 활동을 본격적으로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제 주변에도 학교 적응을 어려워하던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가정이나 개인에게 고민이 되는 문제를 품고 있는 친구들도 많았습니다. 그 친구들을 돕고 싶고 그 친구들의 문제를 같이 해결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서, 청소년이 만드는 안전한 세상 (이하 청만세)라는 활동을 기획해서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청만세를 운영하면서 문화 퍼포먼스를 기획하고 개인 안전뿐 아니라, 사회적 안전에 대한 메시지를 담아서 전국적으로 알리는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대학에 진학하게 되면서 보다 적극적으로 활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현재 대학교 4학년으로 마지막 학기를 다니고 있는데, 요즘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피란민들을 섬기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20여 명의 청년과 팀을 만들어서, 폴란드를 거점으로 우크라이나 피란민을 돕기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현지 NGO 기관들과 협력해서 우크라이나 피란민의 직접적인 필요를 파악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Q: 프로보노 국제협력 재단은 어떤 일을 하는 기관입니까?
J: 프로보노는 라틴어에서 기원한 단어인데, 프로보노 퍼블리코 (Pro bono publico)라는 말에서 파생되었습니다. “공익을 위해서”라는 뜻인데, 공공선이라고도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원래는 변호사들이 변호가 필요한 소외계층을 돕는 활동에서 출발했다고 알려졌지만, 지금은 본인이 가진 전문적인 역량을 재능기부의 형태로 소외계층이나 취약계층을 위해서 사용하는 활동을 뜻합니다. 프로보노 국제협력 재단은 국내에 3개 지부가 있고 해외에도 10개 이상의 지부가 구성된 국제협력 기관입니다. 각 지부가 네트워크의 형태로 협력하여 취약 계층과 소외 계층의 문제 그리고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고 있습니다.

김예영 프로보노 국제협력 재단 대표간사
Q: 또래 친구분들은 이제 졸업을 앞두고 취업을 고민하거나, 한참 경력을 쌓아가느라 분주할 것 같습니다. 두 분은 이미 NGO의 간사로 10년 가까운 경험을 쌓아오셨는데 어떻게 이른 나이에 NGO 활동을 시작하게 되셨습니까?
Y: 저희 아버지꼐서 프로보노국제협력재단을 시작하셨지만, 부모님께서 이 일을 하시기 때문에 시작한 것은 아닙니다. 부모님 역시 간사로서의 활동을 강요하시거나 기대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다른 사람을 섬기는 삶에 대해서 관심을 일찍부터 갖고 있었습니다. 중학교 때부터 학교가 끝나면 봉사활동을 가는게 일상이었습니다. 주로 유아들이 있는 기관이나 고아원 등에서 봉사를 했는데, 활동을 하면서 제가 전문성을 갖고 있다면 이 아이들을 보다 잘 섬길 수 있고 더 좋은 영향력을 줄 수 있곘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 생각이 발전되면서 자연스럽게 NGO학을 전공하게 되었고, NGO 활동가로서의 아버지의 삶을 보면서, 아버지께 활동가로서의 전문성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도 갖게 되었습니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작은 섬김이 중요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전문성을 갖고 그런 활동을 기획하고 사회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활동가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J: 아무래도 부모님과 언니와 오빠 모두가 이웃을 섬기는 활동을 하는 가정에서 자라다 보니 이웃을 섬기는 활동이 어렸을 때부터 제게는 당연하게 다가온 부분이 있습니다. 남들을 위해서 사는 게 당연한 것으로 자리 잡았던 것 같습니다. 이런 삶을 살아내는 데 필요한 전문성을 가지려고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어릴 때부터 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직접적인 계기는 중학교 때, 학교 적응을 어려워하는 친구를 만나면서였습니다. 그 친구가 학교에 작 적응하도록 변화하는 데 도움이 되고 싶었습니다. 늘 사람들의 눈을 마주 보지 못하고 바닥만 보던 친구였고, 본인이 하고 싶은 말도 표현하는 게 힘든 친구였습니다. 늘 의기소침해 있는 친구를 돕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어떻게 해야 그 친구가 변화할 수 있겠느냐는 고민을 깊이 하던 중에 아빠가 도움을 주실 수 있으실 것이라는 생각에 아빠에게 도움을 요청했는데, 가장 먼저 “그 친구를 위해서 네가 먼저 눈물을 흘려봐, 너의 이기적인 마음에서 나오는 눈물이 아니라 그 친구를 긍휼히 여기는 마음에서 눈물을 흘리게 된다면 어떻게 도울지를 깨닫게 될 거야.”라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제가 그 친구를 품고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17살이 되어서 비로소 이 친구를 생각하면서 기도하다가 긍휼에서 나오는 눈물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나를 위한 삶이 아니라 남을 위한 삶을 살아야 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가진 달란트가 춤이었기 때문에 문화를 통해서 사람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저는 춤을 출 때가 행복한 사람이라서, 사람들이 춤을 통해서 마음을 비우고 스트레스를 풀 수 있도록 돕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거울도 바라보지 못하는 친구가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좀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그게 NGO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김예진 프로보노 국제협력 재단 간사
Q: 또래의 청년들이 진로에 대해서 고민하는 반면에, 두 분은 굉장히 빠른 시기에 자신들의 진로에 대해서 방향을 정하실 수 있던 것 같습니다. 혹시 지금 가는 NGO 활동가의 길이 정말 내가 가고 싶어서 가는 것인가? 아니면 이 일이 익숙한 환경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시작한 것인가? 이런 고민을 해보신 적은 없으십니까?
Y: 저는 특성화 고등학교에 다녔는데, 회계를 전공했습니다. 특성화 고등학교는 졸업 후에 취업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고등학교 2학년만 되어도 학교에서 구체적인 진로를 학생들에게 묻습니다. 당시에 성실하고 모범적으로 학교생활을 했기 때문에 선생님들은 은행 취업을 많이 권해 주셨습니다. 취업만 되면 흔히 말하는 먹고 사는 문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을 많이 해주셨습니다. 하지만 중학교 때 이미 사람들을 섬기는 삶을 살겠다는 방향이 세워져 있었고 막연하지만,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기 때문에, 3개월 이상을 선생님께 사회복지사를 진로로 준비하겠다고 설득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사회복지사에 대해서 너무 피상적으로만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버지와 상의 끝에 사회를 이해할 수 있도록 좀 더 경험을 쌓은 후에 사회복지사나 NGO 활동가로 진로 방향을 결정하고, 사회를 더욱 폭넓게 경험할 수 있는 NGO에서 경험을 쌓기로 했습니다. NGO의 영역이 단지 복지에만 국한되지 않고 인권, 환경, 평화 등 사회 전반에 걸쳐있다는 것을 알고 전공을 NGO로 선택하는데 망설임이 없었습니다. 더 큰 범위를 공부하면 그중에서 범위를 좁혀서 제 길을 찾는 것이 훨씬 후회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아직 우리나라의 NGO가 제 기대보다 많이 활성화되지는 않은 좁은 시장이기는 했습니다. (웃음) 그래서 몇 분 건너면 다 웬만큼 알게 되고, 그런 만큼 서로에 대해서 강점과 스킬 셋(Skill Set)도 어느 정도 파악이 되는 점들이 있습니다. 또 NGO 기관 간에 협력할 일들도 많기 때문에 공유하고 소통하는 자리가 많은 것들도 특징입니다. 이런 경험을 쌓아가면서 저 역시 저의 강점을 이해할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전문성을 쌓아가는 중입니다. 제가 제 진로를 구체화하면서 배우고 알게 된 것들을 NGO 활동에 관심을 두는 청년들과 공유하고 도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만나는 청년들과 나누기 시작하면서 활동가로서의 비전과 가치를 더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활동가로서의 매 경험들이 보람이 있었고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시간이 쌓이면서 제 생각도 더욱 분명해진 것 같습니다.
J: 저는 개인적으로 성취 욕구가 강한 편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같이 활동하는 친구들이나 도움을 요청했던 친구들의 실질적인 변화를 보면서 성취감을 느낀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가출한 친구들이 저와의 만남을 통해 가정으로 돌아가거나, 자존감이 낮아서 대인 기피하던 친구가 당당하게 자신을 표현하고 주장하는 것을 볼 때 일의 보람을 느꼈습니다. 제가 도전한 것들에 대한 성취를 맛보면서 저는 이 일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NGO 활동가로서의 삶에 대해 한 번도 의심이 없던 것 같습니다. 다른 일들에 대한 관심이 생기지도 않았습니다. 이 일을 하려고 결심했고, 이 일을 하면서 행복하고 보람이 있었기 때문에 확신이 있었습니다. 저는 되게 이기적인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이웃을 섬기는 삶을 살면서 저를 위한 눈물 대신에 남을 위한 눈물이 늘어나는 것을 보면서, 그리고 좋은 것을 보면 갖고 싶다가 아니라, 누구에게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저 자신의 변화를 보면서 더욱 이 길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가족들이 함께 일하고 있다 보니, ‘아빠 때문에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하는 거 아니야?’ 이런 오해도 많이 받습니다. 그런데, 저는 제가 싫었으면 절대로 이 일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같은 의미에서 아빠가 아닌 다른 분께서 이런 활동을 하셨더라도 저는 이 일에 동참했을 것입니다. 가족들이 함께 일하고 있지만, 일과 가족생활은 엄격하게 구분이 되고 있습니다. 저도 근무 시간에는 부모님이 아닌 기관의 대표님과 국장님으로 대하고 있고, 교회 활동을 할 때는 선교사님으로 구분해서 대하고 있습니다. 물론 6시에 일과를 마치고 나면, 엄마, 아빠라고 자연스럽게 부르고 있습니다.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에서 모두 부모님의 영향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단순한 엄마, 아빠라는 개념보다는 멘토로서의 개념이 더 강하게 느껴집니다. 예영 간사님에 대해서도 사적으로는 언니이지만 단체에서 선임이고 저의 멘토로서 도와주고 계십니다. 서로 공감대가 많다 보니 그렇지 않은 관계보다 더 깊은 이야기들도 나눌 수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Q: NGO 활동가로서 어떤 자부심 혹은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까?
J: 저는 순수함, 투명성에 대해서 자부심을 느낍니다. 저희가 진행하는 모든 프로젝트는 공모 사업에 대한 사업계획서 작성부터 사업 수행과 결과 보고까지의 모든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됩니다. 저희 뿐 아니라 활동하는 청년 활동가 모두에게 투명하게 공개가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을 위해서 활동을 진행한다는 점에서 순수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 이익을 취하기 위해서 모인 사람들이 아니라 오로지 남을 위해서 모인 사람들이기 때문에 성과와 인정에 대해서 참여자들 간에 한 번도 다툼이 없었다는 점은 기관이 순수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Y: 참여자 간에 ‘공익을 위하여’라는 프로보노 정신의 취지에 대한 공감대가 있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느낍니다. 나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나의 성취감을 만족시키는 쉬운 일이지만, 대가 없이 타인을 위해서 시간을 내고 자기 돈을 쓰는 것은 순수한 마음이 없으면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이런 활동을 같이 할 수 있는 분들이 있다는 점과 또, 그분들과 대화하고 함께 활동하면서 보람을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팀원들과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도 누가 어떤 잘못을 해서 문제가 생겼는지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이 일이 잘못되었을 때 도움을 받을 분들에게 미칠 영향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에 누구 탓을 하기보다는 문제 해결에 집중하게 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저 자신 뿐 아니라 함께 하는 분들도 성장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런 부분이 다른 단체와는 차이를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우크라이나 난민 지원 관련 협력을 위한 실무 미팅 (폴란드 적십자 방문)
Q: 반대로 NGO 활동가로서 어떤 점이 어려우신가요?
Y: 저는 사람들 간의 갈등이 가장 어려운 것 같습니다. 저희가 기독 청년들을 만나기보다는 사회에 있는 청년들을 만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다른 사람을 돕는 것에 대한 가치를 이해시키고 동기부여를 하기까지 많은 소통이 필요합니다. 이런 공감대 형성을 위해서 1년 프로젝트를 진행할 경우에 거의 6개월 이상을 이런 대화를 하면서 신뢰를 쌓습니다. 이 과정이 제일 어려운 시간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교회 청년들과 사회 청년들의 느낌이 사뭇 다릅니다. 사회 청년들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냥 안 하고 말지 이런 느낌인데, 교회 청년들은 약간 떠져 묻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웃음) ‘원래 이런 거, 이런 거 한다고 했는데, 지금 하는 건 그게 아니지 않아?’ 이런 느낌으로요. 중간에서 이런 것을 조율하는데 많은 에너지가 듭니다. 일반 청년들이 저희를 볼 때 그냥 좋은 일 하는 애 정도라면 교회에서 보는 시간은 그냥 기독교인으로 보는 느낌이 듭니다.
J: 한 가지 더 덧붙이고 싶은 것은 저희가 수익 사업을 하기보다는 공모사업이나 활동 지원금 모금을 통해서 활동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사실 많은 것들이 어렵습니다. 사무실을 구하는 것부터 운영비를 충당하기도 항상 어려운 것 같습니다. 또한 갈등은 저희 내부에서만 일어나기보다는 외부 단체와 협력을 하다 보니 발생하는 갈등도 있습니다. 갈등이 발생하면 서로 윈윈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서 도움을 주고받을 부분을 찾아야 하는데 만약 한쪽으로 치우치게 되면 청년들은 부당하다고 생각하고 아예 참여를 중단하려는 경향들이 있습니다. 일이 되게 하려면 어느 정도는 인내하고 가야 하는 부분도 있지만 청년들이 이런 부분에 대해서 예민하게 반응하면 진정시키기가 어렵습니다. 더욱이 돈을 주고 고용을 하는 것이 아니다 보니, 사소한 부당함에도 민감한 것 같습니다. 결국은 이 일의 가치를 이해하는 분들이 계셔야만 사소한 부당함을 인내하면서 끝까지 같이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젊은 세대가 이런 점에서 민감하기 때문에 조율이 어렵습니다.
Q: NGO 활동가의 길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신앙이 준 영향이 있습니까?
Y: 저는 남을 위해 사는 삶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있던 것 같습니다. 크리스천이라는 정체성도 있었고, 선교사님께서 늘 남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자랐습니다. 제가 성인이 되고 그 말씀에 대해서 공감하고 나도 그 삶을 살아야겠다고 고백하고 이 일을 시작했지만, 만약 신앙인이 아니었다면 중간에 그만두었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내가 이 길을 가면서 만난 하나님을 생각하면 나의 불편함으로 혹은 나의 힘듦으로 포기하는 것은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생각이 힘든 일들도 감내하게 하고, 무엇보다도 남을 도울 때 느끼는 행복감이 큽니다. 제가 무엇을 성취했을 때 느끼는 행복감보다 남을 도울 때 느껴지는 행복감이 더 큽니다. 이런 마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늘 기도하면서 긍휼과 인내 그리고 지혜를 달라는 간구를 합니다. 이 일에 필요한 것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계시니까 이런 것을 주시기를 기도할 수 있어서 그게 힘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 고백과 간구를 들으시는 분 그리고 응답하시는 분께서 제 마음속에 계시고 제 고민을 함께 들어주시고 지혜를 주시는 분이 저와 항상 함께 계시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 일을 할 수 있던 것 같습니다.
J: 저는 힘든 일이 있어도 가족에게조차 쉽게 말을 하지 못하는 때가 있습니다. 우선 속상해하실 부모님이 걱정되고, 언니나 오빠의 경우는 위로보다는 직언을 하는 스타일이거든요. (웃음) 그래서 힘든 부분이 있을 때마다 항상 하나님을 찾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 제 마음을 고백하는 순간에 그 자체가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 앞에 문제를 가지고 가는 것이 익숙해지다 보니까 예전에는 일주일 동안 우울하고 걱정하던 때도 있었지만 요즘은 매번 더 빨리 털고 일어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친구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는데,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성경 구절입니다. 친구들에게 제 경험을 이야기해줍니다. 나는 “내 몸을 내가 사랑하는 것처럼 남도 이만큼 사랑해 줘야지 그런데 거기에 더해서 나보다 남을 조금 더 사랑해 볼까?” 이런 마음이 들었는데, 너도 너 자신을 먼저 사랑하고 그다음에 네 주변의 이웃을 한 번 보면 이웃에게 사랑을 주고 싶은 상황이 될 수도 있다고 이야기해줍니다. 제가 교회에서 배운 것이지만 제가 경험해보니 친구들에게도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런 모습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종교가 없던 언니가 얼마 전에 교회를 나간 일이 있습니다. 나중에 그 언니가 “너에게서 예수님의 향기가 뿜어져 나와서 나도 교회에 관심이 생겼어, 나도 교회 다니는 사람들을 자주 접하다 보면 너처럼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 내가 살면서 자기보다 남을 더 사랑하는 사람을 처음 봤어, 그리고 나보다 환경이 안 좋은 환경에서도 웃고 있는 사람은 처음 봤어.”라고 했습니다. 제 신앙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일이었고 ‘교회에 대해서 이미지가 좋지 않게 바뀌고 있지만 우리가 하기에 따라서 바뀔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Q: 활동하시면서 가장 인상 깊은 일이 있으셨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J: 지금 진행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지원 활동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일어나서는 안 되는 전쟁이 권력자의 그릇된 판단으로 일어났습니다. 무고한 생명들이 너무 많이 희생당했고, 지금도 그 희생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청년들이 한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시작부터 전적으로 청년들이 주도한 프로젝트이다 보니 개인적 애착이 많이 가고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도 기억에 오래 남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Y: 저도 우크라이나 활동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현장에 방문했을 때 생각보다 훨씬 열악한 상황에 좀 놀랐습니다. 이분들에게 진짜 무엇이 필요할지를 많이 고민했습니다. 이번 활동에서 개인적으로 부끄러웠던 적이 있습니다. 지난 9월에 폴란드로 피란 온 난민들을 만나러 갔습니다. 열악한 환경만 보고 그분들에게 편안함과 안락함을 제공하기 위한 방안을 엄청나게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만난 아이들은 저희의 생각과 달리 너무 에너지가 넘치고 순수하고 해맑은 표정으로 저희를 맞아주었습니다. 물론 어른들은 힘들고 좌절하고 우울감에 사로잡혀서 표정에서도 힘듦이 드러나 보였지만, 아이들만은 정반대의 모습이었습니다. 오히려 저희에게 다가오는 아이들을 보면서 ‘내가 일방적으로 이 아이들의 마음을 판단하고 있었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오히려 제가 이 아이들로부터 위로받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인간에 대해 존중함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고 이후에 우크라이나 관련된 이야기가 단순한 도움에 초점을 맞추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청년들에게 그들이 가진 인간으로서의 존엄함을 잊지 않도록 이야기를 잘 풀어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이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는 쉽게 드러나고 또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Q: 우크라이나 이야기가 나왔으니, 한 번 여쭈어야 할 듯합니다. 두 분 다 한 차례 이상 피란 현장을 다녀오셨는데, 현장 상황은 어떻습니까?
J: 우리 재단은 폴란드 적십자와 함께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폴란드를 중심으로 피란민들을 도우려고 하고 있습니다. 폴란드가 피란민들을 잘 지원해준 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현장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언론보도와는 조금 달랐습니다. 우선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매우 안정적이고 전쟁의 영향이 거의 느껴지지 않습니다. 바르샤바역 앞에 피란민들을 돕기 위한 음식 제공소가 있는데, 이곳을 바라보는 폴란드 사람 중에는 피란민들을 보고 웃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분명히 우크라이나 피란민을 헌신적으로 도운 분들도 계시겠지만 언론에서 보이는 모습이 제가 방문한 곳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 상황이 제게는 이중적으로 느껴졌습니다. 피란 온 분 중에는 딸을 살리기 위해서 기꺼이 26시간 이상을 운전해서 탈출하신 분들도 있었습니다. 자신이 탈출하는 과정을 말씀하시면서 엄청나게 우셨는데 그분의 남편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참전했고, 가족 대부분은 우크라이나에서 탈출하지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서로 연락이 닿지 않아서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처음 뵈었을 때 너무 밝게 웃고 있어서 이런 아픔이 있으리라 생각하지 못했는데, 그 분이 살기 위해서 웃는다는 말씀을 해주셨을 때 가슴이 먹먹해짐을 느꼈습니다. 만났던 청소년들도 아빠를 만나러 다시 우크라이나에 들어가겠다고 하고, 이미 친구들이 죽은 아이들도 있어서 이런 일이 21세기에 벌어진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감히 어떻게 돕겠다는 이야기를 꺼내기도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그분들께 어떤 도움이 필요하신지 여쭈었는데, 찾아와주고 이야기를 들어준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분들의 말씀을 듣고 손을 잡아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는 사실을 다시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물폼을 보내는 일보다도 이분들의 마음을 채워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음이 채워지지 않으면 결코 진정한 지원도 아니고 위로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분들의 마음을 살피는 일부터 청년들과 함께 시작해야겠다는 방향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Y: 전쟁 초기에 많은 나라와 기관에서 물품을 보내주었지만, 지금은 거의 십분의 일 수준으로 줄어들었습니다. 폴란드에서 세금을 사용해서 우크라이나 피란민을 지원하는 데 대해서 폴란드 내부의 반발도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특히 이제 겨울이 다가오면서 그 부담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폴란드 스스로 이런 일들을 해내기 어려운 상황이 되어가지만, 오히려 도움의 손길은 줄어드는 상황입니다. 또한 피란민 내부에서도 빈부의 격차가 큽니다.. 지원을 여러 사람에게 잘 나누는 것도 중요한데 급하게 진행되다 보니 이런 일들이 잘 안되는 것 같습니다. 4월만 해도 물품은 더 이상 필요 없다는 분들도 있었지만, 지금은 무엇이라도 달라는 곳이 대부분입니다.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폴란드 국가는 물론이고, 구호 기관 및 피란민 모두가 지치고 서로서로 힘든 상태입니다.
Q: 청년들과 함께 활동하시는 데 요즘 청년 세대들에 대해서 느끼신 점들을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J: 저도 그 세대에 속하는 사람이지만 어른들의 우려가 틀리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공동체 의식이 없다거나 개인주의적이라는 말씀은 저도 동의가 됩니다. 전체적인 추세는 어른들께서 보시는 바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런 중에도 이타적인 청년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자기에 대해서 표현이 서툴다고 해도 실제 삶에서 이타적인 행동을 보여주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재단 사무실 앞에 큰 오르막이 있는데, 폐지 줍는 할머니 할아버지들께서 힘겹게 손수레를 끄시는 적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분들이 힘들어하시면 도우러 오는 청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일방적으로 청년을 한 가지 모습으로 평가하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점점 예의는 없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 (웃음) 연장자에 대한 존중과 예의가 사라지는 것 같아서 좀 아쉽습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청년들을 보듬어주고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줄 멘토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인생의 멘토를 만나면 변화는 한순간에 일어나기도 합니다. 어른들께서 청년들을 나무라시기에 앞서서 그 세대가 멘토의 역할을 잘하고 계시는가에 대해서도 한 번 생각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Y: 저는 시대에 따라 청년들도 변한다고 생각합니다. 청년들의 변화는 청년들에게 원인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이전 세대에서 오는 영향력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부모들의 변화와 아이들의 변화는 같이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저 역시 청년들의 관심이 자기에게 더 쏠려있다는 점은 공감합니다. 제 주변의 친구들도 내가 승진해야 하고, 돈도 내가 더 많이 벌어야 하고, 힘들어하는 친구에 대한 공감력도 떨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문제도 결국은 사회환경으로부터 생긴 게 아닐까 싶습니다. 양비론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청년들의 탓으로만 돌리거나, 또 환경에 휩쓸려서 주변은 보지 못하는 점도 안타깝습니다.
J: 저는 한 세대의 인접 세대와의 연계성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사실 저와 예영 간사님은 여섯 살 정도 차이가 나는데 제게는 공감이 큰 세대보다는 저보다 한 세대 정도 앞선 느낌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의 성장 과정에서 부모님 못지않게 언니의 역할이 매우 컸습니다. 주변에 대부분이 저처럼 나이 차가 큰 형제나 자매가 있는 경우가 드뭅니다. 인접 세대와의 접촉이 없다 보니 세대 간 차이가 더 크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지금 청년들의 부모 세대와 청년들을 연결해 줄 수 있는 인접 세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지금 하시는 활동은 교회가 본래 하는 이웃을 섬기는 활동과도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NGO의 형태로 이웃을 섬기는 것과 교회로서 섬기는 것의 차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Y: 교회마다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NGO가 교회보다 더 빠르게 문제에 대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회는 아무래도 의사 결정이 NGO보다 더 복잡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느끼기에는 절차가 더 복잡해 보입니다. 또 생업이 있으신 분들이 따로 시간을 내셔야 하므로 더 어려운 점도 있다고 보입니다.
J: 사회적 측면에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외적으로 교회의 이미지가 이전보다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의 선행이 자체의 이미지를 높이기 위한 노력으로 보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그런 활동이 지속성을 갖지 못하고 일회적인 행사로 보일 경우, 지금 같은 사회 구조에서는 오히려 부정적인 평가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NGO의 경우 종교적인 정체성이 아닌 대중 활동으로서 진행하므로 그러한 부정적 시각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굿네이버스나 기아 대책이나 월드비전과 같은 NGO 기관들의 활동이 교회의 구제 활동에 비해서 더 전문적이고 더 효율적이라는 느낌을 주는 것 같습니다. 사회적인 신뢰도의 차이가 분명히 있지 않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Q: 한국 교회를 보시면서 안타깝게 느껴지시는 점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희망을 찾는다면 어디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Y: 저희 어머니가 자라실 때는 언제나 교회 문이 열려있었다고 합니다. 누구나 쉽게 들어갈 수 있고 언제나 교회에 갈 수 있었다고 하십니다. 지금은 문도 잠겨있고 울타리도 높아진 것 같습니다. 말씀에 대한 강조가 “이렇게 해야 해”라는 율법적인 강조처럼 왜곡된 것처럼도 보입니다. 이런 점들이 교회를 폐쇄적인 공동체로 보이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반면, 복음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가진 힘은 여전히 강력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가장 보람 있는 순간은 제가 활동 중에 기독교인임을 직접 말하지 않아도, 활동에서 만난 분들이 제게 교회 다니냐고 물을 때입니다. “아! 굳이 내가 교회에 다닌다고 말하지 않아도 내가 말씀을 실천하면 사람들은 내게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맡는구나!”를 깨달았습니다. 이런 분들이 많아진다면 교회에 대해서 궁금해하고 그런 경험을 해보고 싶어 하는 분들도 늘어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런 부분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J: 제가 어릴 때와 비교할 때도 이미 교회는 많은 부분이 달라진 것처럼 보입니다. 저는 따로 학원에 다니지 않아서 학교를 마치면 교회로 갔습니다. 옥탑방에 전도사님께서 살고 계셨는데, 전도사님이 맞아주시고 함께 놀기도 하고 공부도 하다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정말 교회가 집 같았고 가족 같은 친밀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교회에서 그런 편안함이 사라지고 성도들 간의 다툼도 눈에 보이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이유가 교회 안에 사랑이 없어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합니다. 그런 교회의 아름다운 모습이 사라지는 게 너무 안타까웠고, 고등부 때는 부모님께 교회에 가고 싶지 않다는 말씀도 드린 적이 있습니다. 당시 교회 공동체에서 배우는 것도 없고, 아무런 사랑도 느껴지지 않아서 마치 호랑이굴에 끌려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저는 희망은 다음 세대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다음 세대가 무엇인가를 더 잘하고 있어서는 아닙니다. 오히려 침체하여가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러나, 다음 세대는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이 있고, 그 세대가 역할을 해주어야 교회가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청년 중에도 가나안 성도들이 많습니다. 저는 가나안 성도들은 교회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희도 MK(Missionary's Kids:선교사 자녀)이지만, 주변에 MK나 PK(Pastor’s Kids)들이 많습니다. 이런 친구들이 마음에 상실감이나 상처들이 있어서 소극적이고 자기를 표현하거나 주장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제가 만난 PK나 MK 중에는 부모님의 사역을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라는 친구들이 상당히 있습니다. PK나 MK를 예로 들었지만, 상처 입은 사람들, 가나안 성도처럼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다시 보듬고 껴안아 주는 것부터 그래서 그들이 교회의 사랑을 다시 느낄 수 있도록 할 때 희망이 생기지 않을까라고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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