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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교회에도 청년들의 다양한 실험과 도전이 필요합니다:일터에서 교회적 삶을 추구하는 고가은, 홍승현 청년



Q: 본인과 하고 있는 일에 관해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Ga Eun (이하 G): 저는 진저티프로젝트에서 일하고 있는 고가은이라고 합니다. 제가 일하는 진저티프로젝트(이하 진저티)는 한 문장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조직입니다. 처음에는 경력 보유 여성들이 모인 스터디 모임으로 시작했고, 지금은 연구와 출판 그리고 교육 등 조직의 건강한 변화를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청년과 청소년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저희는 프로젝트별로 구성원들이 유닛을 이루어서 과제를 수행하는데, 저는 현재 조직이 변화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기획하고 운영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는 진저티의 첫 청년이었습니다. 진저티는 한 사람의 성장 가능성을 바라보고, 구성원을 신뢰하며 일합니다. 처음에는 잠깐 있다가 다른 곳으로 가려고 했는데, 저희 조직이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다 보니 정말 다양한 경험을 쌓고 있습니다. 배우는 것이 많고 저 스스로 성장도 느끼고 있어서 계속 일하고 있습니다. (웃음) 그리고, 저는 다른 부분보다도 이곳에서 신앙적으로 정말 많은 것들을 배우고 훈련받고 있습니다. 특히 흔히 세상에서는 일이 우상이 되어서 삶이 다른 영역을 지배하는 경우가 많은데 , 이곳에서 일보다 항상 하나님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연습을 하고 있고, 제게는 회사가 아니라 공동체 같은 느낌이 더 강하게 있습니다.

Seung Hyun (이하 S) : 진저티프로젝트에서 함께 일하고 있는 홍승현입니다. 앞에서 설명해 주신 것처럼 우리 회사는 개인과 조직의 건강한 변화를 위한 실험실이라는 슬로건을 갖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개인과 조직의 변화를 관찰하고 해석하고 또 건강한 활용을 고민해서 연구 결과물을 내거나 출판을 하거나, 워크숍이나 네트워크를 활용한 지식의 전파 등 다양한 방법으로 결과물을 내고 있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일하면서 청소년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청소년 교육 전문가이신 대표님을 도와서 연구나 워크숍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대학에서 중국어와 경영학을 전공한 후 어머니를 따라서 의류 관련 업계에서 커리어를 쌓으려고 했는데, 취업 준비 중 아산나눔재단에서 운영하는 아산 프론티어 유스라는 사회적 기업가 육성 프로그램을 통해서 진저티에 인턴으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사회적 가치를 만드는 일을 접하면서 일과 제가 추구하는 가치가 하나로 통합되는 현장을 경험하면서 즐겁게 일하고 있습니다.


Q: 두 분 말씀을 들어보니 진저티는 굉장히 혁신적인 조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흔히 MZ세대로 일컬어지는 청년 세대들이 자발성과 일과 삶의 균형이 보장되는 수평적인 일터를 선호한다는 인식이 있는데, 두 분이 진저티에 근무하시는 것도 비슷한 이유가 있는 것인가요?

G : 청년 세대의 행태를 일반화하는 것은 복잡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저희 조직이 흔히 말하는 일과 삶의 균형을 보장하는 일터가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용어가 일과 개인의 시간이 명확하게 구분이 되는 단절적인 개념으로 사용되는 반면에, 저희는 일의 진정성과 의미 그리고 가치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깁니다. 저나 승현님이 이런 가치를 추구하는 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은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개인의 시간이 보장되는 개념에서의 일과 삶의 균형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면 진저티에 남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저희는 일과 삶이 분리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구성원 간에도 서로의 가정에 대해서 관심을 두고, 가족들이 회사에 오고 함께 대화하는 일도 전혀 어색하지 않습니다. 개인의 삶에 깊이 침투한다는 점에서 말씀하신 일과 삶의 균형과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S: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은 저희가 수행하는 일이 연구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사실 그 주제에 몰입하기 시작하면 일과 삶이 분리되기가 어렵습니다. 저희 홍주은 대표님께서 워크 앤 라이프의 블렌드 (Blend of work and life)에 대해서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단절의 개념보다는 조화의 관점이 중요하다고 하셨습니다. 결국 의미 있는 활동으로 삶이 조화롭게 구성될 때 더 건강한 삶이 가능하다는 의미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제 주변의 청년들 역시 단절적인 개념의 일과 삶의 균형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이론적으로는 성립할 수 있지만, 현실에서 그런 방식으로 구현되기는 어렵다는 생각입니다. 이런 단절 중심의 개념은 일이 생활에 개입되기를 원하지 않는 환경에서 나온 것 같습니다. 일에 대해 동기 부여가 되지 않으니까 적어도 내가 주도할 수 있는 삶에서는 분리하고 싶고 삶의 의미를 생활의 영역에서 찾고 싶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일의 영역에서 자발적이고 주도적이라는 것이 막상 시도해 보면 또한 어렵다는 것을 알고, 회사의 상황이 그런 것을 충분히 기다려줄 만큼 여유롭지 않다는 것도 알기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어렵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인 의견일 수 있지만, 의미 있는 일이 있으면 일이 내 삶에 들어오는 것을 막으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 삶을 그 일에 쏟아부어서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진저티에서 하는 연구가 내 삶에도 의미가 있고, 신앙인으로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일하고 있고, 또한 그것이 가능한 조직이기 때문에 매력을 느끼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조직은 위에서 결정하면 아래에서 실행하는 톱다운(Top-down) 구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이런 구조에서는 내가 얼마나 잘 수행했는가가 중요합니다. 반면에 진저티는 다양한 의견이 좋은 의사 결정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입사한 직후부터 저의 의견을 물으시고, 또 타당한 의견은 적극적으로 반영해 주시기 때문에 제가 의견을 내는 것이 실제로 프로젝트와 조직에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진저티에 대해서 더 책임감을 느끼고 몰입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G: 맞습니다. 진저티 내에서도 구성원의 역량과 경험의 수준이 다양하기 때문에 모두가 같은 수준의 업무를 하지 않습니다. 사실 보통 주니어들이 의견을 내지 못하는 이유는 의견을 냈을 때 반영이 되지 않거나, 존중을 받지 못할까봐 두렵기 때문입니다. 진저티는 개인의 성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특히 리더 분들이 일을 통해서 성장하도록 세밀한 부분까지 고민하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 의견도 적극적으로 낼 수도 있고, 저희도 그런 적극적인 소통이 저희의 성장과 직결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보니 자신이 일하는 직무 외에도 대화할 주제가 있으면 수평적인 대화도 가능합니다. 더욱이 저희뿐만 아니라 리더분들도 성장하시는 것이 보이기 때문에 더 많이 자극받고 이곳에서 일하는 것에 대한 매력을 느끼게 됩니다.

고가은 매니저


Q: 흔히 MZ 세대의 특징으로 탈권위 혹은 반권위를 이야기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MZ 세대는 권위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갖고 있다고 보십니까?

G: MZ 세대들이 인정하지 않는 권위에 대한 반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짜인 구조에서 부여되는 권위를 불편해 합니다. 권위를 실행하는 리더가 납득되지 않으면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진저티는 일에 대한 맥락에 대해 충분한 소통을 하면서 일이 진행되기 때문에, 리더십을 존중하고 따르는 것 같습니다. 리더들의 선택이 하나님의 방향 안에서 올바른 결정이라는 것을 많이 경험했기에 그 선택들을 더 지지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권위라는 것은 스스로 드러낼 때 더 불편한 것 같습니다. 리더로서 먼저 헌신하고 더 수고할 때 권위는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세대 특성을 생각해 본다면, 아마 가부장적인 부모님 세대의 소통 방식이 지금 젊은 세대에게 영향을 준 부분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세월호, 탄핵과 같은 사회적 사건들에서 기성세대가 보여준 무책임한 모습들이 권위에 대한 반감을 만들었고, 신뢰를 떨어뜨린 것 같습니다.

S: 저는 권위는 본인이 세우는 것이 아닌, 그 권위를 따르는 사람들이 인정해 주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따르는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는데 본인이 권위를 주장한다고 진심으로 권위가 세워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저희가 세대 연구를 많이 하는데 요즘 젊은 세대는 많은 정보를 접하면서 자라난 세대입니다. 또한 자신이 만들어 낸 결과로 타인의 평가를 받으면서 자랐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떤 결과물을 냈는지를 민감하게 보는 것 같습니다. 단지 나이 혹은 직급이 높거나 조직에 오래 있었다는 것이 상대방을 인정할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 지금의 사회 분위기도 영향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경제가 성장하는 시기는 그 경제에 속한 기업이나 조직들도 쉽게 성장하고 탁월한 성과를 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런 조직에 속해 있는 것 자체가 자랑스럽습니다. 내가 그 조직의 구성원으로 주어진 일을 잘 수행하고 이것이 우리 조직의 성장에 기여한다는 인식이 있습니다. 부모님 세대에 계시는 분들이 경험하신 것으로 생각합니다. 반면에 요즘은 내가 조직에서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한다고 해서 회사를 오래 다닐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많습니다. 또 내가 열심히 한다고 그것이 내 성과로 인정되는 것도 아닌 경우도 많습니다. 이미 성과를 내는 시스템이 구축되어있고, 사실 나의 성과도 그런 시스템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경우도 많습니다. 이럴 때 내가 열심히 한다고 해서 조직 안에서 가시적으로 확인되는 큰 변화가 있는지도 느끼기 어려운 때가 많습니다. 소속감도 약해지고 안정감도 떨어질 수 있습니다. 즉 조직이 나에게 어떤 발전 가능성을 주지 않기 때문에 나 스스로 자신을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언젠가 이 회사를 떠나야 할 때, 내가 여기서 가지고 갈 수 있는 나의 성과와 성장 가능성이 중요해집니다. 그러다 보니 나와 일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가에 앞서서 나의 성장에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는가에 더 관심을 두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요즘 세대가 별난 사람들이라서 이런 특징이 있다기보다는 지금의 환경이 취업도 어렵고 취업한 이후도 불안정하기 때문에 조직이나 공동체보다는 개인의 동기가 점점 더 중요해 진다고 생각합니다.

홍승현 매니저


Q: 교회 안에서의 권위에 대해서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많은 교회가 30대 이후 세대와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보입니다. 아마도 교회 안의 권위와 리더십 그리고 소통 등이 다양한 영향을 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만, 이런 현상에 대한 두 분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G: 저는 제가 다니는 교회보다 회사가 더 교회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우리 교회에 어떤 문제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정체성을 사람이 모인 공동체에서 찾아야 하는 시기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교회에서 예배당을 성전으로 보는 인식이 있는데, 이미 건축물로 교회를 설명하기는 어려운 사례들이 많이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제가 다니는 교회도 제법 규모가 있는 교회인데, 사실 교회 안에서 제 속에 있는 진짜 이야기는 꺼내기가 어렵습니다. 이런 부담감을 저만 느끼는 것도 아닙니다. 저는 교회에서 청년부 리더로 오랫동안 섬겨왔는데, 조원들과 솔직하게 대화하려고 해도 어느 정도 한계가 정해진 겉도는 대화만 하다가 끝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곳에서 나눈 이야기가 어떻게 전해질지 확신할 수 없으니까 소그룹 내에서 완전한 신뢰를 갖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회사에서 제 내면의 깊은 부분까지 나누고 서로를 위해서 중보하는 것이 가능한 것을 경험하면서 진정한 공동체에 대해서 많은 고민이 되었습니다. 저 스스로 열심히 교회를 나가고 섬겼던 사람인지라 이 문제를 더 깊이 고민했던 것 같습니다. 왜 교회에서는 이런 나눔과 대화가 어려울까에 대해서 고민이 되었고, 사실 이 고민은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나름 진저티에서의 경험을 교훈 삼아 교회 안에서 건강한 대화를 만들어 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많이 어렵기는 하지만 저희 세대의 특성을 고려할 때, 이러한 노력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위 MZ세대로 불리는 젊은 세대들은 사회적 불신이 높은 환경에서 자랐다고 생각합니다. 겉으로는 잘 지내는 것 같지만, 뒤에서는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부담감이 늘 존재하는 환경에서 타인을 신뢰의 대상으로 보기보다는 경쟁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익숙한 세대입니다. 개인마다 맥락이 다를 수 있고 교회마다 환경이 다를 수 있지만, 이런 문화적 사회적 특성을 단지 몇몇 개인의 노력으로 바꾸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S: 저는 유연성의 측면에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 생각에 초대 교회는 정말 세계 최고의 트러블 메이커였습니다. 기존 시스템과 다른 질서를 주장하고 그 질서에 따라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황제에게 절하지 않고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살아내는 모든 방식이 당시 질서에 대한 도전이고 충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 교회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것이 미덕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경직된 모습이 가장 안타깝고 답답하게 느껴집니다. 청년들이 무엇인가를 새롭게 시도하기 어려운 분위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스트레칭을 너무 하지 않아서 무슨 운동을 하려고 해도 어색하고 잘 안되는 것 같습니다. 진저티가 교회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내년에 진저티가 어떤 프로젝트를 할지 모릅니다. 내후년에 진저티가 존재할지조차 불확실합니다. 그런데 그 불안정함과 유연함 때문에 진저티는 새로운 일들을 벌일 수 있습니다. 저희가 특별히 잘나서 그런 것이 아니라,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까 어려운 일이라도 하나님 믿고 한번 가보자는 마음을 같이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한 일이라면 우리가 그거 하나 믿고 가보자! 하나님이 어떻게든 감당하게 해주실 것이다. 이런 믿음이 있습니다.

교회가 올바른 방향과 삶의 행동 양식을 제시할 수 있던 때에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대부분이 이런 지식 자체가 없었던 때에는 지식을 배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교회가 성도 각자에게 삶의 행동 양식을 제시해 주는 것이 불가능할 만큼 개인의 삶의 모습이 다양해지고 맥락도 더욱 복잡해진 것 같습니다. 아무리 탁월한 지도력이 있다고 해도 한 두 분이 모든 상황을 다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아는 것을 기반으로 목회자부터 청소년까지 어떻게 살아낼지에 대해서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하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삶의 모습에 대해서 지혜를 모아야 하는데 교회의 속도감은 확실히 더딘 것 같습니다. 말씀과 설교에 대한 강조가 저는 당연히 우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와 더불어서 사회의 변화에 대해서 같이 고민하고 각자가 성경과 부합하는 입장을 찾을 수 있는 그런 신속한 움직임이 있으면 좋겠는데, 교회에서는 교회 내부의 이야기만으로도 시간이 모자란 것 같습니다. 마치 몸집이 커지면 커진 몸집을 유지하기 위해서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것처럼, 지금의 교회도 유지에 필요한 에너지가 너무 많아서 새로운 것들을 이야기하고 실험해보고 실패해보고 다시 시작해 볼 에너지는 부족해 보입니다. 제가 어떤 책에서 ‘예수는 12명의 교인이 다니는 초소형 교회의 최연소 목회자였다.’는 구절을 읽었는데 크게 공감이 되었습니다. 주변에서 좋은 교회를 이야기할 때 교인의 수나, 소위 담임목사님의 스펙이 조건으로 이야기되는 현실이 좀 아쉽게 느껴집니다.

G: 진저티의 분위기를 안아주는 환경이라고 표현합니다. 안아주는 환경은 안전한 환경이라는 뜻인데, 새로운 시도를 하거나, 일을 할 때 실수를 하게 되면 모두가 함께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환경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실수를 비난하고 비판하는 것이 아닌 더 나은 방향으로 가게 되는 고민을 함께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원죄로 인한 것인지 문화적 영향인지는 불분명하지만, 무엇이 잘못되면 먼저 정죄할 대상을 찾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사회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교회에서도 쉽게 발견되는 현상 같습니다. 그런데 진저티는 잘못을 우리의 잘못으로 받아들이고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고 예방할지에 집중합니다. 즉 누구나 잘못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또한 이럴 때 그 사람이 다시는 동일한 실수를 하지 않도록 중보하고 도와주는 문화가 있기 때문에 안정감을 느낍니다. 교회에서는 청년이 되면 교회의 모든 일들에 동원이 될 수밖에 없는데 고등부까지는 너무 귀한 존재로 대접받다가 청년이 되면 그동안 대접받았으니 이제 섬겨야 한다는 전제가 느껴집니다. 그런데 때에 따라서는 청년의 존재 자체가 일하는 사람 즉 어떤 도구적인 관점에서만 이해되는 것 같아서 심리적이나 정서적으로 쉽게 소속감이 소진되는 경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공동체를 섬기는 것이 기쁨으로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되려 자신이 소진되고 끝나는 경우도 있어서 안타깝습니다.

S: 환경과 관련해서 실수가 용납되지 않기는 사역자들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젊은 목회자분들의 환경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성도들이 교회 안에서 무엇인가를 공식적으로 시도하려면 목회자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도 실수나 실패가 용납되지 않다 보니 출석 인원이나 기존의 교회 관행에 영향을 줄 가능성을 피해서 아주 보수적으로 안전한 수준에서만 진행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이제 저보다도 어린 연령대에서도 목회자가 나오고 있는데 교회의 전반적인 안정감이 떨어지다 보니 성도뿐만 아니라, 교역자들도 점점 변화를 기피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성도들도 이런 환경을 감지하기 때문에 교역자에게 부담이 될 일은 알아서 피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Q: 두 분께서 일터에서 교회 적인 정체성을 많이 느끼신다고 하셨지만, 진저티가 명시적으로 기독교 신앙에 정체성을 두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혹시 사회에서 기독교적 가치를 실천하려고 할 때, 어떤 부딪힘이나 힘듦을 느끼셨는지요?

G: 일을 하면서 청년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프로젝트로 진행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다양한 성 정체성을 가진 분들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신앙인으로서 그리고 책임감 있는 직업인으로서 일을 할 때 위해서 이분들을 어떤 관점에서 보아야 할지를 정말 오랫동안 고민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손으로 빚으신 생명이라는 점이 모인 분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관점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모인 분들의 영혼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생명력을 되살리기 위해서 어떤 것을 고민하고 이야기해야 할지를 모두가 고민했습니다. 그 프로그램의 마지막 날에 참가하신 분들이 ‘이렇게 따뜻한 곳은 처음이다.’ ‘존중 받는 느낌이었다.’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사실 저희가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내부적으로는 영적인 전쟁을 치르는 것 같은 치열함이 있었습니다. 함께 붙잡고 기도하면서, 소망을 갖고 바라보던 그 방향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습니다.

매 순간을 고민하면서 영혼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처음에는 모인 분들 사이에서 저란 존재가 너무 이질적으로 느껴지기도 했지만, 한 분 한 분과 만나서 대화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분들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신다는 마음이 점점 확신이 섰습니다. 처음에 가졌던 불편한 마음이 한 영혼을 집중해서 보게 하시고, 그 한 영혼의 주변을 넘어서 다른 청년으로 확대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조직의 변화라는 것이 몇 번의 워크숍으로 이루어질 수 없듯이 이분들 삶의 변화도 지속적인 노력을 통해 작은 부분부터 서서히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떤 결과를 목표하기 보다는 함께하면서 좋은 경험을 하실 수 있도록 노력했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 일을 통해서 죄를 죄의 관점에서 바라보기보다는 그 영혼을 먼저 생각하게 되는 제 관점의 변화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Q: 지금 한국 교회를 보실 때 가장 안타까운 점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희망은 어디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G: 저는 앞에서도 언급되었지만, 한국 교회의 경직성이 가장 안타깝습니다. 개인에 따라 그리고 세대에 따라 신앙생활은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떤 한 가지 유형이 옳다고 정해지면 다른 유형들은 잘못하는 게 되어버립니다. 본질적인 부분에서의 판단이 아니라 본질적인 가치를 실현하는 방식의 차원에서 이야기입니다. 그러다 보니 젊은 목회자들이나 청년들이 다른 도전을 하고 교회적 가치를 사회로 확장해 나가기가 어렵습니다. 결국 교회에서는 기성세대의 허락을 받아야 도전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제 주변만 보더라도 교회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는 청년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그리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내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저는 회사에서도 그런 분들을 많이 만나고 있습니다. 또 건강한 젊은 목회자분들도 많이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분들이 있다는 것이 희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분들 사이에서 연결의 고리를 이어가시는 교회와 내일의 도전도 이런 맥락에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가장 큰 희망은 역시 하나님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S: 저는 한 마디로 지금 교회의 문제는 노잼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뭔가 도전을 하고 사회를 놀라게 할 사고를 치고 해야 재미가 있고 신선하고 관심이 쏠리는데, 오히려 부모님 세대보다도 교회는 더 재미없는 곳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교회가 너무 뻔한 곳이 되어 버리지는 않았나. 모였을 때 무엇을 하고 어떤 이야기를 나눌지 이미 예상 가능한 것이 요즘 교회의 상황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교회를 다니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 가능한 프로세스인 것 같습니다. 이래서 교회에 가는구나! 교회에서 볼 만한 것이 있구나! 이런 느낌이 있어야 하는데 교회 안에 있는 분들도 재미가 없고 밖에서도 관심이 없습니다. 제가 드리는 말씀이 최신 유행을 좇자는 것이 아닙니다. EDM 찬양이나 힙합 찬양을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님 세대가 부르던 복음성가도 좋습니다. 이런 형식의 문제가 아니라 진짜 사람 간에 살아있는 대화를 하고 교제가 있고, 내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그런 생동감 넘치는 만남과 자극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에게 어떤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제가 교회에 대단한 기여를 하는 사람도 아니지만, 성도로서 안타까운 점을 말씀드렸습니다. 정말 코로나 이후에 많은 친구가 교회를 떠났습니다. 저도 소그룹을 리더로 섬기고 있는데 재미있는 것은 교회를 떠난 분들이 단톡방을 나가지도 않으신다는 점입니다. 아무 반응이 없으시지만 나가지도 않으십니다. 그런데 최근에 한두 분이 교회로 돌아오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이유를 들어보니 이러다가 정말 영영 교회를 떠날 것 같았기 때문이라고 하셨는데, 저는 이 말을 들으면서 교회에 희망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교회가 지금 당장 망한 것처럼 말하지만 각자의 마음에는 아직 회심의 순간과 예배의 뜨거운 감격과 나의 삶을 바꾼 말씀의 흔적이 남아있다는 것, 하나님께서 만지신 그 순간이 돌에 새겨진 말씀처럼 남아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인생에서 하나님께서 일하심을 기억하는 성도들이 있다면 한국 교회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앞으로 어떤 삶을 살기를 꿈꾸십니까?

G: 저는 진저티에서 일하면서 청년들을 많이 만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청년들을 왜 많이 만나게 하시는지 기도하며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직 제 사명이 무엇이라고 분명히 말씀을 드리기는 어렵지만 저에게 보여주시고 붙여주신 청년들을 돕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또 곧 결혼을 앞두고 있는데 남편과 함께 하나님의 가정을 이루는 사람들로 잘 살아내자는 소망을 품고 있습니다.

S: 저는 제 인생에서 단 한 명이라도 저를 보고 하나님을 궁금해한다면 충분히 의미 있는 삶을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위해서 저를 내려놓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저를 내려놓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갈 때 저의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을 궁금해하는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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