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교회를 넘어서 사회와 생태를 아우르는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해야 합니다:연합과 연대를 통해 교회의 갱신을 꿈꾸는 임종한 교수
- 보현 전
- Nov 18,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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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본인께서 하시는 일과 본인에 대한 소개를 부탁합니다.
A: 인하대학교 의과대학 학장과 보건대학원 원장으로 있는 임종한입니다. 저는 그리스도를 닮은 삶을 살기를 바라는 크리스천이라고 설명해 드릴 수 있습니다.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서 다양한 실천을 시도해 왔습니다. 30여 년 전에 인천에서 시작한 의료 소비자 생활협동조합 활동이 이제는 의료 외에도 사회적 돌봄까지 역할을 확장한 사회적 협동조합 형태로 발전했고, 최근에는 시민참여와 사회적 경제를 통해 생태문제와 소외된 이웃을 돌보기 위해 희년상생사회적경제네트워크를 조직해서 교회의 공공성과 교회의 연대를 강화하기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지금의 삶의 모습에 이르기까지는 몇 번의 계기들이 있었습니다.
물리학도를 꿈꾸는 고등학생이었는데, 당시에 핵물리학자인 엔리코 페르미가 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이태리에 거주하던 유태인이었던 페르미는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미국에 망명하게 되고, 2차 세계대전을 끝내기 위해 원자로를 개발하면서 핵무기 제조에도 관여하게 됩니다. 일본에 투하된 원자폭탄으로 수백만의 인명이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느낀 과학에 대한 회의와 어떻게 하면 과학이 전쟁에 이용되지 않고 본연의 목적에 이바지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옮긴 책이었습니다. 제가 동경하던 핵 물리학 거장의 절실한 고백에 진로를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고, 결국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해야겠다는 결심 끝에 의대로 진로를 잡았습니다. 연세대 의대에 진학했는데, 연세대의 전신 중 하나인 세브란스 의대는 에이비슨과 언더우드 선교사에 의해서 설립된 학교였습니다. 기독교 정신이 학교의 중요한 강조점 중의 하나였기 때문에, 입학한 이후에 의료와 교육 선교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제가 신앙이 있다고 이야기하기 어려운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다가 1981년 광주에서 민주화 항쟁이 발발하면서 캠퍼스 안에도 민주화시위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학교 안에 시위진압을 위한 경찰 버스가 들어와서, 많은 학생이 강제로 잡혀가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 제 친구가 끌려가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친구를 구하겠다는 생각에 뛰어들었는데, 친구를 도망가게 하고 제가 대신 경찰 버스에 태워져서 서대문 경찰서로 끌려갔습니다. 당시 학교 사무처장님도 오셔서 단순 가담한 사람들은 곧 훈방될 거라고 말씀하셔서, 안심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삼 일이 지나서 다시 경찰 버스를 타고 이동했는데, 내려보니 강원도 최전방이었습니다. 사실 제가 이 대 독자라서 이미 방위병 복무가 확정되어 있었는데, 강제 징집되어서 현역 복무를 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심한 구타도 당하고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생겼는지 고민도 많이 하게 되었는데, 결국은 실어증 같은 증상도 나타나고 장기 행군과 고된 훈련으로 고관절에도 무리가 왔습니다. 몇 달이 지나서야 어머니의 면회가 허락되었는데, 몸도 마음도 아픈 상태에 있는 저를 보이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순복음 교회 권사님이었는데, 제가 겪는 일들이 하나님께서 저를 사용하시기 위한 연단의 시간을 주신 것이니, 그 의미를 잘 새기라는 말씀과 함께 아픈 고관절 부위에 손을 얹고 기도해 주셨습니다. 놀랍게도 그 통증과 고통이 사라진 일을 겪게 됩니다. 그 이후로 어머니가 말씀해 주신대로 이 시기의 의미를 놓치지 않도록 열심히 성서를 읽었습니다. 성서를 읽으면서 한국 사회의 현실과 남북 대치 관계 속에 있는 한반도의 상황이 다시금 새롭게 인식이 되었고, 본격적으로 교회에 출석하면서 의사로서 한국 사회를 섬겨야겠다는 소망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당시 주변에서는 노동 현장에 투신하는 친구들이 많이 있었는데, 저도 그런 권유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의사로서 이웃을 섬기는 것에 대한 소명이 있었기 때문에 의대를 졸업한 이후에도 의사로서 결코 그 친구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살아가겠노라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약속은 하나님과 저에게 한 약속이 되었습니다.
Q: 그러한 다짐이 의료 생협 활동으로 이어진 것입니까?
A: 의과대학에 다니면서, 삶의 방향을 찾기 위해서 더 깊은 고민을 했습니다. 특히 기독학생회 활동을 통해서 그런 고민에 대해서 신앙의 관점에서 깊이 있는 나눔을 할 수 있었습니다. 선교적 관점에서 볼 때, 한국의 근대 의료체계는 교회가 주도하면서 공공적이고 약자에 대한 돌봄을 강조하는 특징이 있었는데, 산업화과정에서 그리고 교회성장과정에서, 교회에서 설립된 의료기관조차도 공적 기반이 붕괴하고, 의료기관이 사유화되면서, 영리 추구의 수단으로 변질되어갔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기독병원이 있었지만, 이름만 기독병원일 뿐 운영은 일반 영리추구 병원과 다름없는 방식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방식을 지속하면서 사유화가 이익 집단화가 되고 자본화가 되면서 교회가 하나의 기득권처럼 자리 잡게 되고, 그러다 보니 세습과 같은 세속적 행태가 교회 안에서도 종종 발견되는 문제까지 연결되었습니다. 이런 문제 인식에 따라 의료의 공공성을 회복하기 위해서 지역주민과 크리스천들이 참여하는 의료협동조합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청십자 운동을 통해서 의료의 공공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셨던 장기려 박사님의 활동에 크게 영향을 받았습니다.

Q: 한국의 의료보험 제도는 서구에서도 우수하다고 평가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왜 공공 의료가 중요한 것입니까?
A: 의료 체계를 크게 공급 체계와 재원 조달 체계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이중 의료보험제도는 재원 조달 체계에 관한 것인데, 모든 국민이 참여하는 단일 보험으로 공적 보험으로 구성되어 있고, 보험자가 통합되어 있다 보니 미국처럼 민간보험이 주도되는 시스템과 비교할 때 훨씬 개별 보험사의 이윤 추구를 예방하는 제도라는 점에서 우수한 것이 사실입니다. 즉 재원 조달 체계는 잘 구성된 반면에, 의료 공급 체계는 공급자 중심으로 구성되었다는 점을 문제로 제기하는 것입니다. 유럽은 의료 공급체계의 상당 부분이 국가 소유거나 국공립 형태가 일반적이기 때문에 의료의 이윤 추구가 제한적입니다. 대부분 재원이 세금을 통해서 조달됩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의료 공급에서 미국과 같은 사적 소유 중심의 체계를 갖고 있습니다. 즉, 재원 조달은 잘 되어있지만, 의료의 공급은 이윤 추구에 중점을 두기 때문에 환자의 건강을 최우선에 두기보다는 병원의 운영과 수익을 우선으로 고려하기 쉬운 환경입니다. 일례를 들어, 일반적으로 일차 진료기관의 경우, 의사와 간호조무사만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간호조무사도 연차가 오래되면 급여가 오르기 때문에 신입이나 경력이 높지 않은 사람으로 자주 교체됩니다. 여기에 의료 수가를 받는 데 필요한 방사선사나 임상치료사 정도가 병원에 있습니다. 즉 돈 되는 것만 남기고 인건비를 최소화하는 구조입니다. 심지어는 전문 인력인 간호사도 없는 의원이 많습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의사로서의 윤리적 책임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질병을 예방하는 것보다 수가가 높은 진료를 하는 것이 병원 유지에 합리적인 선택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즉, 예방이 아닌 치료 중심의 공급체계가 만들어지게 되고, 치료 중심의 공급체계는 이윤 중심 체계로 바뀔 가능성이 높습니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병원을 기업자본이 소유하게 됨에 따라서 자본화된 고급 의료 서비스를 우수한 것으로 마케팅 하므로 전체적인 의료 시장은 더 수익 중심으로 변해가게 됩니다. 더욱이,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보험의 혜택을 보는 노령 인구는 늘고, 생산연령층인 젊은 인구는 줄어들기 때문에 점점 건강보험의 재원이 고갈되는 것입니다. 결국은 이런 환경에서 시민들의 의료비 부담이 늘어나면서 건강 불평등이 심화되고, 결국은 가난한 사람들은 점점 의료 혜택에서 소외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지금도 아파서 일을 쉴 때, 기본 소득을 보장해 주는 상병 급여 제도가 없어서 대다수 저소득층은 아파도 일을 쉴 수가 없습니다. 결국, 지금의 의료 시스템이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가지 못하고 병원의 이윤을 늘리고 건강보험의 재정을 갉아먹는 형태를 존치하다 보니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는 것입니다.
좀 더 확대해 보면, 이 구조는 단지 의료에만 국한되지 않고, 교육에서도 마찬가지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사교육과 같은 기형적 구조가 강화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의과대학에 가정 형편이 어려운 친구들이 입학하기 정말 어렵습니다. 대한민국이 더는 기회의 땅이 아니라, 교육의 기회도 막히고, 아플 때 치료받을 기회도 제한되는 불평등 사회가 되어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사회적 불평등의 문제에 교회가 관심을 둬야 합니다. 왜냐하면, 어려움이 닥칠 때, 더 큰 고통을 받는 것은 불평등한 구조에서 약자의 위치에 놓이는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약자에 대해 관심을 두고 그들과 연대하는 것은 예수님으로부터 시작된 교회의 전통적 가치입니다.

기독청년의료인회에서 주최한 의료협동조합 토론회 (임종한 교수님 제공)
Q: 지금 활동하시는 의료 협동조합도 그런 교회의 가치를 이어가는 측면이 있으실 듯합니다. 그렇다면 같이 일하시는 분들 사이에 기독교적 정체성이 자리 잡고 있습니까?
A: 물론입니다. 의료생협을 처음 시작한 곳이 안성이고, 그 다음에 인천평화의료생협이 시작되었는데, 두 의료협동조합 모두 기독청년의료인회 내부에서 육성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대부분의 참여자가 의과대학 기독학생회에서 활동하던 분들이었습니다. 따라서 기획과정이나 초기 자금을 조성하는데 기독청년의료인들이 주도하고 실제로 많은 기여가 있었습니다. 인천평화의료생협이 시작되기 전에 제가 가정의학 수련의 과정을 마치고 나서, 학교에 펠로우로 남든지 아니면 지역 사회로 갈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가정의학을 공부하면서 주치의 중심의 의료체계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고, 이것을 지역 사회에서 구현하고 싶은 마음에 주임 교수님께 면담을 신청해서 제 생각을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교수님께서 주치의 모델이 한국에서는 현실적인 이유로 구현되기 어렵다고 말씀하시면서 포기하라고 조언하셨습니다. 주임 교수님은 한국에서 이런 모델을 만들기가 어렵다고 생각하시고, 또 대학에서도 이런 모델에 대한 의지가 없다면 제가 학교에 남을 이유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길로 바로 인사를 드리고 나왔는데, 기독청년의료인 회에서 그런 취지를 공감해 주시고 동료와 후배들이 기금을 모아 주셨습니다. 그때가 1989년도입니다. 40명 정도가 6천 7백만 원을 모금했는데, 지금으로는 4억 원 상당의 큰돈이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기독교 정신에 근거해서 지역 사회를 돌보는 의료 기관이라는 정체성을 가질 수 있었고, 저 역시 개인이 개업하는 개업의 모델이 아니라, 운영위원회를 조직해서 투명한 운영 체계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4년 정도 열심히 활동하니까 지역에서 좋은 평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직접 왕진도 가고, 의료비가 없는 분들은 받지 않고 치료하거나, 후원금으로 보조하면서 운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다가 1990년 초, 지역 사회에 기반을 둔 사회활동이 과연 얼마나 사회의 변화에 영향을 줄 수 있을지에 대해 의구심과 패배의식이 사회 운동 전반에 퍼졌습니다. 그러면서 중간에 포기하시는 분들도 나타나고, 또 당시 근무 환경 자체가 다른 곳과 비교하면 정말 힘든 조건이었기 때문에 가족들의 반대와 포기에 대한 권유도 상당히 있었습니다. 후원금도 점차 고갈되어가는 상황에서, 가난한 지역이기 때문에 돌볼 이웃은 줄어들기는 커녕 늘기만 했습니다. 과연 이 일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지 정말 고민이 많이 되었고, 기도를 정말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내려놓는 것에 대해서 아무런 응답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웃음)
그러던 중에 안성농민의원에서 일본 의료협동조합을 방문해 보자고 제안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이 제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에서 온 것입니다. 일본은 협동조합을 통해 지역주민이 참여하는 의료 모델을 40년 정도 운영해 오고 있었는데, 의료 기관의 규모도 크고, 이러한 모델을 운영하기 위한 주민 훈련도 잘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방문 마지막 날에, 일본 협동조합연합회 회관을 방문했는데, 일본 협동조합의 아버지라고 하는 가가와 도요히코(賀川豊彦) 목사님의 동상이 있었습니다. 이 분의 동상을 보는데, 마음에 그리스도께서 베드로에게 부활 이후 하셨던 ‘내 양을 먹이라’는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인천평화의원을 그만둘지에 대해 기도했는데 그 응답으로 “지역주민들을 돌보라”는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이 방문을 통해서 기독교 신앙과 의료인으로서의 저의 정체성이 의료 협동조합 운동에서 하나로 결합할 수 있는 것을 알게 되면서 제 사명도 더욱 선명하게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협동조합에 대해 더 공부하고 인천평화 의료협동조합으로 발전시켜서 28년 정도 이어오고 있습니다.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저의 기독교 신앙과 공동체에 대한 인식, 사람들을 세우기 위한 교육, 의료적 돌봄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동력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기독교 신앙을 사회에 공적으로 구현하려는 신앙 실천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협동조합의 기반이 미미했기 때문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어느 정도 기반도 구축하면서, 지금은 기독교적으로 이런 실천을 확장하는 방법에 대해서 많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특히 사회적 경제를 통해서 사람들을 돌보는 모델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이미 독일이나 이탈리아의 교회의 사회적 경제에 관해 많은 사례와 축적된 지식을 갖추고 있습니다.
Q: 사회적 경제에 대해서 설명해주시겠습니까?
A: 사회적 경제는 불평등과 빈부격차, 환경 파괴와 같은 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부작용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모색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도입된 역사가 비교적 짧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는 금전적 이익보다 사회적 가치를 우위에 두기 때문에 ‘사람 중심의 경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볼로냐는 사회적 경제가 도시 GDP의 45%에 이를 만큼 큰 규모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반을 만드는데 가톨릭 교회가 중추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유럽도 사회적 경제가 처음부터 있던 것이 아닙니다. 이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데 있어서 교회의 디아코니아 (사회적 섬김) 차원에서의 참여가 그 뿌리를 이루고 있습니다. 독일과 덴마크, 네덜란드에서 협동조합 활동을 하는 분들을 직접 만나보니, 그들의 협동조합 근간에 교회의 기여와 참여가 활발하게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개혁신학의 기초를 다진 캘빈도 자본주의가 탐욕적인 형태로 발전하지 않도록, 부자가 빈자를 착취하지 않도록 끊임없는 경고를 했습니다. 한국도 켈빈주의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기독교인데 아쉽게도 그런 강조점을 계승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한국 경제의 압축 성장 과정에서 ‘사람중심’이라기 보다는 ‘이윤중심’의 천민자본주의가 자리 잡게 되었고,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의 삶은 더욱 척박해져 갔습니다. 경제 규모는 늘었지만, 그 안에서 여러 제약이 사람들을 옭아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들의 삶이 근본적으로 나아지기 위해서는 교육과 의료를 포함하여 일상생활의 모습부터 바뀌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어야 하고 소비생활과 경제 참여의 방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삶의 뿌리부터 바꾸기 위해서 경제에 대한 인식 또 그것의 가치에 관한 공부를 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한국 사회 안에서 이러한 변화의 중요성을 더욱 깊이 깨닫고 있습니다. 사실 교회의 사회적 참여에 대한 인식은 한국 선교 초기부터 강조된 부분인데, 한국 교회의 발전과정에서 선교의 개념이 하나님의 선교라기보다는 교회의 선교로 협소하게 인식된 측면이 있습니다. 특히 지도자들의 신학적 인식이 협소해지면서 사람들의 일상의 삶이 교회로부터 분리되어 버리면서 교회가 기득권화되지 않았느냐는 반성을 해봅니다. 그 결과로 교회의 세습이나 사유화 같은 현상이 지금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요?
Q: 기독교 정체성에 뿌리를 둔 의료협동조합을 꾸려오시면서, 그리고 지금 사회적 경제를 주제로 더욱 확장된 실천을 준비하시면서 교회와도 많은 접점이 있으셨을 듯합니다. 공공선에 대한 한국 교회의 관심과 참여는 어떻다고 생각하십니까?
A: 최근에 교회 중심 선교의 틀을 깨기 위한 새로운 시도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민주화가 어느 정도 완성이 된 이후에 작은 지역 교회를 중심으로 지역아동센터나 어린이집 같은 돌 봄의 필요를 교회가 채우기 위해 실천적인 노력을 많이 기울여왔습니다. 그러나 이런 지역 참여가 지닌 선교적 가치가 그동안 제대로 평가되지 못한 측면이 있습니다. 최근에 교회가 꾸준히 시도해 온 작은 도서관 운동이나 지역 아동 센터와 같은 지역 사회 참여를 통해 사회복지와 선교를 연결하는 흐름이 나타나는 것은 고무적인 현상입니다. 정부에서 사회적 협동조합의 전환을 장려하고 견인하면서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었다고 평가합니다. 또한, 농촌 교회가 속한 지역 공동체가 와해하면서 생존의 위기를 겪기도 했는데, 최근에 생산 공동체를 통한 사회적 농업을 새롭게 시도하면서 교회도 활기를 되찾는 사례도 있습니다. 생산 과정에 어르신이나 장애우들이 참여하면서 농사를 통한 치유와 돌봄을 동시적으로 추구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 농업을 통해서 지역 내의 돌봄의 필요도 함께 해결하는 모델입니다. 이미 네덜란드와 같은 나라는 농업협동조합에서 돌봄을 제공하고 국가가 지원하는 구조가 잘 구축되어 있습니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다양한 주제를 갖고 사회적 농업 활동을 통한 돌봄 공동체를 구축하려는 농가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또한, 도시에서도 의료협동조합과 돌봄 공동체를 결합하는 형태를 시도하기도 하고, 교회가 참여하면서 기존의 지역아동센터를 사회적 협동조합의 형태로 확장시켜나가고, 또 의료 이외에도 지역 내 문제를 해결하는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기업이나 사단법인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지역 교회들이 마을 목회 협동조합을 구성해서 교회의 연합과 지역 내에서의 사회적 경제를 만들어 내기 위한 모델도 있습니다. 더욱이 중대형 교회들이 이런 작은 지역교회를 지원하면서 교회 간의 연대의 새로운 모습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과거의 개 교회주의를 극복하고 선교와 복지, 그리고 돌봄의 교회론에 근거해서 개교회의 영적인 에너지가 성도의 삶을 실질적으로 바꾸어 나가고 지역사회에도 선한 영향을 주는 한국판 세이비어 교회 모델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조만간 다수의 성공적인 모델들이 나타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부응하기 위해서 사회적 경제를 추구하는 여러 기관과 교회들이 희년과 상생 사회적 경제 네트워크를 구상하게 되었습니다. 각 지역의 의료협동조합과 지역아동센터, 돌봄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마을목회 협동조합 등 다양한 형태의 그룹들이 지역마다 돌봄의 생태계를 만들고 교회가 동참하고 이바지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함입니다. 더는 개교회 간에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교회들이 서로 협력해서 새로운 지향점을 찾고, 태동하고 있는 사회적 경제가 우리 사회에 안착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흐름이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를 한 단계 도약시킬 중요한 시민 사회적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의 독립과 민주화의 중심에 있던 교회가 이제 확장되고 성숙한 민주주의를 만들어 내는데 기여할 수 있도록 흐름을 만들어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Q: 교회의 공공적 참여에 대한 필요성은 많이 이야기하고 있지만, 특정 진영이 주도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어 보입니다. 이 우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A: 관료화되고 비민주적인 형태의 사회주의는 이미 생명력을 다 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가 이런 극단주의에 휘둘릴 만큼 우리 국민이 어리석지 않습니다. 경제화의 측면에서 극단적으로 진행된 이윤중심의 천민자본주의 역시 개발 독재나 인간 소외 등의 한계가 명확히 드러났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민주화를 이루었지만, 어떤 정치권력이든 불평등을 해결하기 어렵다는 점도 경험했습니다. 결국, 극단적 형태의 이데올로기는 현재의 문제에 근본적인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다만, 그간의 경험을 통해서 다가올 세대에는 자본주의가 사람을 배제하고 이윤만을 좇지 않는 건강한 사회를 이루도록 하는 동시에 훨씬 더 민주화된 사회로 나가는데 지향점을 두어야 한다는 점은 명확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 교회가 움직여야 합니다. 또한, 기후 재난 속에서 시민의 책임지는 자세와 참여를 이끌어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제들은 지역 교회가 아닌 전 교회가 다루어야 할 주제들입니다. 하나님의 선교적인 관점에서 삶 전체, 나아가 사회 전체가 하나님의 통치 안에서의 질서를 회복시켜 나가는 꿈을 꾸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서 교회가 기도하고 헌신해야 합니다. 개 교회를 넘어서는 공 교회 차원의 사회적 섬김이 기독교의 본분 중 하나입니다. 한국 교회가 지난 시간 교회의 성장에 취해서 그것이 전부라는 착각에 빠진 나머지,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길을 잃은 느낌입니다. 한국 교회가 어디로 가야 할 지를 모르고 있으니 젊은 세대들이 보기에는 교회가 무엇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으로 비추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 근본에는 물신성 즉, 돈을 섬기는 물신주의(mammon ism)가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회의 지도자들이 하나님선교의 방향을 살피지 못하고 “사회와 담을 쌓은 교회의 성장”이라는 왜곡된 방향을 잡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 방향이 어떤 교리적이고 신학적인 정당성을 갖는가에 대한 교회 내에 공동체적 성찰이나 논의도 없을 뿐 아니라, 이에 대한 대화도 부족한 상태이기 때문에 젊은이들이 교회가 설득력이 없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사회와 공동체를 떠나서 교회가 존재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교회 내에 어른들의 목소리만 들리기 때문에, 어른들이 붙잡고 있는 생각이 교회 안에서 지배적인 것은 당연한 것 같습니다. 지금의 문제를 교회안에 갇혀서 보는 것은 기성세대의 접근 방법입니다. 문제에 대해 세대를 초월하는 교회적 대화를 하여야 합니다.
Q: 교회의 사회적 참여가 과거와 비교할 때 확대되었다고는 하지만, 최근 한국 사회에서 이 주제에 대한 교회의 영향력은 상당히 상실되었다고 느껴집니다. 오히려 한국을 대표하는 교회들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윤리적 실패가 교회의 지배적인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우려도 있습니다. 한편에서는 교회의 공적 참여가 지속해서 시행됐음에도 여전히 한국의 지배적인 이미지가 개선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A: 이 문제는 교회 지도자들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평신도들이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고 사회적 약자를 도울 수 있도록 성도의 역할을 인식하고 이를 위해 기도하는 과정이 있어야 하는데 이런 부분은 목회자들이 제대로 강조하지 않고, 본도 보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과적으로는 공교회로서의 인식이 약하기 때문에 개 교회 중심의 교회관을 갖게 되면서 결국 자기 교회의 성도 수가 늘어나서 큰 규모를 이루는 것을 우선하여 추구해 온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교회의 규모가 커질 때, 급여나 사회적 위상, 또는 능력을 인정받는 것과 같은 부분에서 목회자가 가장 혜택을 보게 되지만, 정작 평신도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서 주의 깊게 살피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인식이 단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교회의 교육 프로그램입니다. 주로 새 신자나 제자훈련과 같이 입문 과정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 이후 신앙인으로서의 소양과 인식을 지속해서 키워나가는 과정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주일 성수와 십일조만 잘하면 모범적인 교회 생활이 됩니다. 삶 속에서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하는가? 하나님의 선교에 어떻게 동참하는가? 이런 문제에 대한 설교도 거의 없고, 연구도 없습니다. 목회자들의 고민이 드러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런 실천적인 문제에 대해서 진지하게 연구하고 전문가들의 의견도 듣고 해야 하는데 그런 과정이 없는 것입니다. 이점이 안타깝습니다. 또 교단의 영향도 있고, 미국의 기독교가 주는 영향도 있을 듯합니다. 한국 선교 당시에 배양되었던 좋은 전통들이 지금 교회 안에서 찾아보기가 어렵게 되었고, 전반적으로는 노쇠한 이미지가 되어서, 젊은 세대에게 어떤 비전을 줄 수 있는지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Q: 어머니께서 순복음교회 권사님이시고, 교수님도 치유의 체험도 있으셨음에도 현재 신앙의 정체성은 신앙의 공공성에 대한 인식이 강하신 것 같습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습니까?
A: 특별한 계기나 인물의 영향보다 제가 군에서 성경을 읽을 때에, 사람을 회복시키고 자유롭게 하는 것이 중요한 주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회복과 자유가 개인 차원에서는 치유로 나타나지만, 사회적 차원에서는 사회의 약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회복하는 것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성경에서 만난 예수님께서 직접 그런 활동을 하시다가 결국은 기득권의 눈 밖에 나서 돌아가신 것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예수께서 가르치신 핵심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주려고 하셨다는 점이 성경을 읽을수록 분명해 졌습니다. 이후 기독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민중신학자이자 에큐메니칼 운동도 활발하게 진행하셨던 김용복 박사님을 신앙의 좋은 선생님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제 어머니의 신앙처럼 당시 한국 교회 안의 뜨거운 영적 체험을 통한 에너지를 사회적으로 어떻게 연결해야 하는가가 저의 문제의식이었습니다. 그것이 단지 개교회의 부흥으로 이어져야 하는가? 혹은 삶 속에서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사회 전체가 회복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있었고, 결론적으로는 한국 사회에서 개개인의 자유를 확대해 가는 것이 당시에는 민주화로 연결되었고, 민주화는 사회적 약자들의 권익을 회복시키는 과정과도 직결되는 문제로 인식되었습니다. 특히 주류 사회의 엘리트적인 접근이 과연 종으로 섬기시는 예수님을 모델로 볼 때 옳은 방향인가에 대한 고민, 결국 크리스천의 정체성을 갖는다면 섬김의 지도력이 필요하다는 생각들이 중요한 동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신앙 정체성의기초에는 늘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주신 어머니와 오순절 신학이 사회적 약자와 빈자들이 예수님에게 더 쉽게 다가갈 수 있고, 또 많은 영향력과 도움을 주었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제가 성경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 산상수훈입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이 하나님을 차지하고 그분의 위로를 받아서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이 자연스럽게 교회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결국, 그 이웃들이 바로 애통해하는 사람들이지 않겠습니까?

한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연합회 주최 장애인주치의제도 촉구집회 (임종한 교수님 제공)
Q: 교회의 공공성을 확대하기 위해 교역자와 평신도들이 각각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A: 교회마다 환경이 달라서 일괄해서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목회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좋은 설교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규모와 관계없이 성도들이 살아가는 삶의 현장과 사회 현장에서의 이슈를 인식해서 설교나 교회의 활동과 연계하는 것만으로도 큰 역할을 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설교 사역 외의 다른 일을 하는 것이 버거울 수 있고 특히 목회의 규모가 큰 중대형 교회의 환경은 더욱 그러하리라 생각이 듭니다. 상대적으로 목회의 규모가 작은 지역 교회들은 협력해서 협동조합 등의 형태로 직접적인 돌봄과 경제활동에 참가하는 것이 쉽습니다. 작은 교회들이 지역을 실질적으로 섬기는 일을 할 때에 중대형 교회의 연합과 지원이 큰 힘이 됩니다. 이러한 협력을 통해 중대형 교회 성도들도 자신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지역과 연계되는지를 이해할 수 있고, 힘을 보탤 수도 있습니다. 교회의 영적 훈련이 피상적으로 되지 않고, 현장과 밀착해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목회자가 이런 지도력을 세우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중요하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고, 지역 사회에 대한 섬김의 경험이 목회자의 목회 훈련에도 유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사들을 훈련할 때에 종합병원에서 전문적인 진료를 한다고 해도, 초기에는 지역사회에서 주치의 활동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쌓는 것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지역 현장에서의 경험과 이해가 중요하다는 인식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을 교회에도 적용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대형교회의 목회자들이 지역의 작은 교회들과 연합하여 공동 사역을 한다면, 개교회주의를 극복하는 동시에, 목회자들이 현장의 단독 목회부터 큰 규모의 협동 목회까지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목회 모델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요? 지금 보면, 교회의 수평이동 현상만 두드러지면서 큰 교회는 더욱 비대해지고, 작은 교회는 지역에서 살아남기 어려워지는 문제가 있는데, 이 문제가 결국은 교회 전체의 감소로 나타나기 때문에 깊이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단이 주도해서 이런 문제를 해결해 주면 좋지만, 교단이 그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지역 중심으로라도 새로운 연합과 모델들이 나타나고 진보와 보수의 이념을 초월하는, 또 에큐메니칼 진영과 복음주의 진영을 초월하는 연합 모델을 만들어가면 좋겠습니다. 교회의 연합이 한국 사회가 지금의 보이는 분열의 사회를 극복하고 더 성숙한 사회로 가는 데 있어서 마중물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러한 시도는 아시아와 세계 선교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은 한국 전쟁 이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경제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나라로서, 많은 나라에 좋은 역할 모델로서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성숙하고 발전된 시민 사회의 모델을 제시한다면 동아시아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큰 영향력과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요즘 몽골에 큰 관심을 두고 자주 방문하고 있습니다. 몽골은 한국 전쟁에서 발생한 북한의 전쟁고아를 받아서 길러주고 다시 북한으로 보내준 나라입니다. 그러다 보니 북한과 남한 모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특수한 나라입니다. 몽골은 기후위기 때문에 국토의 80~90%가 사막화되는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이 문제를 돕기 위해서 한국의 많은 선교사와 교회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16개 교단이 참여해서 방풍림 조림 사업과 유실수 조림을 통해 마을을 세우는 일을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유목문화가 강한 몽골은 농사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부족한데 한국 선교사들이 이런 부분을 돕고 있습니다. 또한, 협동조합을 통해서 청년들의 창업을 지원하면서 좋은 선교적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특히 북한과도 교류가 많아서 북한에도 직간접적인 영향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이런 모델들이 아시아 전역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150년 전 한국의 기독교가 있게 했던 선교의 역사가 지금 한국 사회가 민주화되고 경제화되는 데 있어서 좋은 토양을 제공한 것처럼, 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시아 지역에 확대되는데 할 수 있는 일이 분명히 있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 먼저 더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고, 모두가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인간의 존엄성이 지켜지는 기회의 땅을 만들어야 합니다. 저는 이것이 우리나라를 찾았던 선교사들의 꿈이라고 생각합니다.
Q: 한국 교회를 보시면서 가장 안타까운 모습은 무엇이라고 또 희망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A: 희망은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고자 하는 선교적 비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선교적 비전은 민족의 앞날을 고민하면서 분투했던 김구, 안중근, 안창호 선생이나,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 헌신한 장기려 박사 등 기독교 신앙에 바탕을 두고 실천해 온 선배들의 삶에서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이제 그 하나님의 선교적 비전을 다시 되살려서 한국 사회를 변화시키고 이웃 국가에도 우리가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를 전해야 합니다. 반면에 목회가 너무 기술적(technical)으로 인식되는 것 같아서 아쉽습니다. 교회를 효과적으로 성장시키고 유지하는데 주된 관심이 쏠리다 보니, 사회를 포함하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교회에만 국한되는 협소한 관점에 머무르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의 일에 헌신하려는 성도들의 마음을 열지도 못하고, 교회에 나오지 않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제대로 보여주지도 못하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요즘 교회가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마음의 문을 닫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됩니다. 교회의 불미스러운 일들은 세상의 욕심이 교회 안에서 드러난 것입니다. 그것을 아무리 신학적 용어로 포장해도 진정성이 없어서 청년들에게 실망감을 주는 것입니다. 결국은 교회가 종교를 통해 사업화되는 모델로 가고 있는데 이것이 일반 기업의 모습과 과연 다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기업이란 결국 사적 이익을 공유하고 이해관계에 따라 배분하는 것인데, 교회가 기업과 다르다면 적어도 이웃들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 이바지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비전을 제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우리 사회에 임하면서 사람들이 변하고 사회의 뒤틀어진 것들이 회복되는 것이 경험되어야 하는데, 이런 부분이 교회를 통해서 보이지 않기 때문에, 교회가 은혜의 통로가 되어야 함에도, 오히려 통로를 막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우선 목회자들이 교인들에게 영향을 많이 주는 만큼, 지금의 모습에 대해서 큰 책임감을 느끼시고 회개와 함께 갱신의 노력을 기울이면 좋겠고, 평신도 지도자들도 함께 이러한 노력에 동참해야 합니다. 좋은 모델들이 나오는 만큼 이를 확산시키는데 한국 교회가 마음을 모은다면, 기독교의 불모지에서 선교하는 나라로 성장한 한국 교회의 DNA가 작동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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