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다음세대를 향한 그리스도의 비전 : 캠프프레이저스 권혁래 대표
- 보현 전
- Jun 29, 2022
- 12 min read
Updated: Jul 15, 2022

Q : 본인과 사역에 대해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 저는 경남 밀양에 있는 캠프프레이저스에서 캠핑 사역을 하는 권혁래입니다. 원래 미국에 있는 교회에서 유소년 및 청년 사역을 하다가 5년 전에 이곳 밀양에서 부산과 영남 지방에 있는 소외된 청소년들을 섬기기 위해서 캠핑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캠핑 사역으로 시작했지만, 점차 전반적인 문화 사역이나 다음 세대 사역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밀양을 중심으로 주변 소도시를 연결하고 지역 교회와 같이 다음 세대의 대안을 찾고 실험하고 있습니다.
Q : 캠프 사역이란 무엇인가요? 또 이 사역을 시작하게 되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A : 사역하면서 많은 성도가 학창 시절 교회의 수련회나 캠프와 같은 집회에서 예수님을 만났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상당히 많은 분이 ‘그 시간’을 통해서 예수님을 만났다고는 하는데 정작 ‘그 시간’에 대해서 누군가가 공부하거나 또는 어떤 투자를 하거나, 심지어 교회에서도 ‘그 시간’을 위해서 특별한 것을 만들어 가지 못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지만 ‘그 시간’을 통해서 많은 친구가 그리스도를 만나는 일은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사역을 시작하면서 보게 된 것은 한국 교회가 캠프 또는 수련회에 대해 연구하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은 이전의 방식들만을 반복적으로 경험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또한 교회 자신도 이를 단순히 연중행사 중 하나로 치부하는 경우도 많아 보입니다. 세상이 변하면서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는 세대들은 지속해서 나타나지만, 교회에서 이런 변화들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회가 세상 문화에 열광하는 아이들만 탓하는 것은 아닌지?’라는 의문을 품고 있습니다. 제게 캠프 사역은 ‘누군가는 이런 문제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시간’을 통해서 아이들이 그리스도를 만나는 경험을 했다면, 그 경험을 유지할 수 있는 사후 프로그램 등을 통해서 교회가 아이들을 섬길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Q : 캠프 사역에 헌신하시게 된 개인적인 동기나 경험이 있으실 듯한데요?
A : 당시 제가 행사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이벤트 사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는 분께서 저에게 ‘한국 기독교 수양관’을 도와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처음에는 이 일에 큰 의미를 두지는 않았고, 그냥 끌려가는 듯이 도왔던 것 같습니다. 수양관에서 당시 강조했던 간단한 원칙들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판단하지 말고 아이들의 요청을 즉각적으로 섬겨줄 것’ ‘교사들이 아이들이 식사를 직접 준비해주고 식사하되, 아이들보다 먼저 식사를 마치도록 할 것’과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자신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도록 즐거운 시간을 준비하지만, 그 모든 활동의 목적은 ‘복음으로의 초대’라는 ‘예수님을 만나는 경험’을 위한 시간에 집중해야 한다는 원칙이 있었고, 저희에게 허락된 30분의 복음 전파 시간을 위해서 교사 모두가 복음 상담법을 익히면서 이 시간을 준비하고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부탁받고 처음 아이들을 섬기러 갔을 때, 아이들의 요구를 맞추어 주면서 섬기는 일은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처음으로 섬긴 기수에서 76명의 아이가 결신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이 일로 수많은 아이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할 수 있다면, 아이들을 위한 맞춤 캠프, 그리스도의 캠프를 누군가는 제대로 해줘야 하지 않냐는 생각이 들어서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기독 레크리에이션 경영을 공부하고 난 이후, 26년 동안 청소년 사역을 해 오고 있습니다.
Q : 안수받지 않은 청소년 사역자는 교회에서 비주류 사역 또는 견습 과정처럼 여겨지는데요, 목사 안수 또는 장년 사역에 대한 제안을 많이 받으신 것으로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길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가 있으신지요?
A : 사업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청소년 사역에 전념하겠다고 결심했을 때는 복음 전파에 대한 분명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교역자 생활을 하다 보니 믿는 아이들만 만나고 있는 저를 보았습니다. 양육도 아주 중요하고 의미가 있지만, 믿지 않는 아이들을 만날 기회가 거의 없는 사역 환경에서 ‘교사들에게만 복음 전파를 위한 대사명을 강조할 뿐, 저 자신은 실천을 안 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제가 목회자라는 타이틀을 갖고 아이들을 만나게 되면 아이들이 제가 무엇을 기대하는지를 지레짐작하고 저를 대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안수받지 않았습니다. 목회자로서 다가가기 이전에 하나님을 보여주는 재미있는 사람으로서 아이들을 만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제 경험으로 목회직을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아이들에게 너희들과 다를 바 없이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나 역시 세상에서 여전히 부딪히는 사람으로서 다가가고 싶었습니다. 또 목회자로서의 완벽한 삶을 감당할 자신도 없었고 그저 아이들과 함께 뒹굴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습니다.
Q : 아이들과 사역 현장에서 함께 뒹굴고 싶다는 말씀이 인상적입니다. 캠프 사역에서 기대하시는 바를 이루고 계시는가요? 또는 캠프 사역에 어떤 매력이 있는 것일까요?
A : 캠핑 사역의 매력은 삶의 일부를 온전히 다 드러내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캠프에서 몇 일 동안 함께 먹고 마시고 자기 때문에 한순간 잘 보이려고 포장하거나 정해진 시간 동안 어떤 주장을 하는 것으로 캠프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는 아이들에게 화도 내고 아이들과 논쟁도 합니다. 저는 이런 시간이 저의 솔직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삶을 드러내다 보니, 제가 아이들에게 뱉은 말이 저에게 족쇄처럼 저희 행동에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저의 이기적이고 세상의 마음을 행동으로 실천하지 않도록 아이들에게 한 말들을 제게 적용하는 것입니다. 캠프 사역이 교회를 위해 특정한 달란트를 요구하는 사역이라면 교회 안에서 그런 전문가들이 좀 키워져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Q : 미국에서의 오랜 생활을 마치시고 밀양까지 오시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A : 저희 캠프는 밀양에 있습니다. 밀양은 저희 장인어른과 장모님께서 태어나신 곳입니다. 두 분 모두 젊을 때 서울로 가셔서 삶의 기반을 그곳에서 이루신 분들입니다. 저는 서울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공부하러 가서 그곳에서 사역하고 있었고, 아내는 일찍이 미국에 공부하러 와서 미국 시민권을 갖고 있었습니다. 저는 미국의 대형 한인 교회에서 사역하고 있었는데, 사역 환경이 참 좋은 곳이었습니다. 저희 장인어른이 좀 무뚝뚝하시긴 하지만 참 대범한 분이셨습니다. 결혼식을 며칠 앞두고 처음 장인어른을 뵙게 되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아버님 인사가 늦었습니다. 진즉에 찾아뵈어야 했는데요.”라고 인사드리니까 “괜찮다. 오늘 봤으니 본 걸로 치자.” 이렇게 말씀하실 정도였습니다. 장인께서는 어느 날 메타세쿼이아 나무를 보시고는 상당히 마음에 드셨던 모양이셨던지, 이곳에 있던 과수원을 모두 밀어내고, 메타세쿼이아 나무를 심으셨습니다. 메타세쿼이아 나무는 보기에는 멋지지만, 아무런 수익을 내지 못하는 나무입니다. 수익을 내는 과수원을 밀어내고 아무런 수익을 내지 못하는 나무로 바꾸어 심으신 것은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이었습니다. 당시 장인어른이 신앙생활을 막 시작하셨을 때인데, 가족들 모두가 기독교인으로서의 분명한 정체성을 표현하고 있던 것과 달리 장인어른은 좀처럼 그런 표현을 하지 않으시던 분이셨습니다.
결혼 후 몇 해가 지나서, 장인어른을 뵈러 올 일이 있었는데, 당시 장인어른께서 홀로 밀양에 내려와 계실 때였습니다. 제게 앉으라고 하시더니 스크랩을 보여주시면서 지금 캠프가 있는 이곳에 휴양시설을 꾸미시고 싶으시던 꿈이 있었노라 말씀하시셨습니다. 그러시더니, 제게 이 땅을 어떻게 사용하는 게 좋겠는지 물으셨습니다. 이 상황을 깊이 생각하고 드린 답은 아니었지만, 평소에 갖고 있던 생각처럼 “아버님, 사람 만드는 땅으로 쓰시지요.”라는 말씀을 드리고 미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당시에 제가 그 일을 맡아서 하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아버님이 소천하시고 이 땅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가족들끼리 상의하는데, 저희 처형께서 이 땅을 사람 키우는 땅으로 쓰자고 제안하셨습니다. 처형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게 된 이유를 들어보니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아버님께서 하나님에 대한 고백과 자신의 구원에 대한 확신들 그리고 지금 이 땅의 사용 방향에 대해 남기신 노트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 노트를 보시고는 처형께서 미국에 있던 제게 들어오면 좋겠다고 연락을 하신 것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미국에서 사역을 정리하고 캠프장을 열려고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처음 밀양으로 오라는 말씀을 듣고는 제가 10년 이상 섬기던 아이들을 두고 가기 어렵다고 사양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처형께서 기도해 보라고 권하셔서 기도하던 중에 한국으로 돌아가라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에서 받은 상처가 있어서 한국으로 오는 게 정말 기쁘지 않았습니다. 순종하는 마음으로 밀양에 왔고, 밀양의 크리스천 인구가 4%가 되지 않는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밀양에 처음 온 저와 아내에게 지역 방언도 매우 생소했습니다. 보통 기독교 인구가 5% 미만이면 선교지라고 하던데 언어도 땅도 낯선 밀양은 저희 부부에게는 선교지 같은 느낌을 주었습니다. 이것이 선교로의 부르심이라면 기꺼이 가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버님의 유지에 따라 사람 키우는 일에 대한 경영은 제가 맡고, 이를 위해 가족들이 돕기로 하였습니다. 특히 저보다 더 교육에 열정이 있으신 저희 처형께서 이 사역을 위해서 모든 것을 지원하시겠다고 말씀하시면서 미국에서의 모든 생활을 정리하고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Q : 밀양에서의 (선교) 사역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A : 미국 생활을 정리하면서 제 삶을 돌아보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삶을 정리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만 하더라도, 마음속으로는 미국과 한국의 삶 모두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만 잘하면 한국과 미국 사역 모두를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은 말도 안 되는 인간적인 욕심이 제 안에 있었습니다. 밀양으로 와서 센터를 건립하기 위해 가족들 모두가 매달렸고, 대출까지 받으면서까지 이 일에 매진했습니다. 감사하게도 건축을 마치고, 센터에 관심을 두시는 여러 주변 교회와 사역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기대한 대로 계획처럼 잘 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중에 코로나 상황이 되었고, 센터의 모든 활동이 중단되고 버티기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코로나 기간을 지내면서 제 안에 있던 인간적인 욕심과 기대들이 얼마나 부질없는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모든 것이 멈춘 2년이 지나고, 올해부터 교회에서 조금씩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섣부른 기대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이 시간을 거치면서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교만한 마음들과 내 생각대로 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마음들을 내려놓게 하셨습니다. 이 과정에서 때에 따라 허락하시는 일용할 양식들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셨습니다. 예상하지 못했지만 2년의 세월 동안 다음 세대에 대해 같은 마음으로 동역하시는 교회들과 사역자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이 일을 해야 한다고 가치를 부여해 주시는 분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코로나 기간에 외부에서 캠프를 찾는 일이 적어지면서 저희가 밀양이라는 지역을 더 깊이 이해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수도권 지역에서 있었다면 알지 못했을 이야기를 알게 되었습니다. 지방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꿈꾸기를 두려워하는 아이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것을 알아가기를 겁내는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이 친구들을 만나면서 누군가는 이곳에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점점 굳혀가고 있습니다. 처음에 이곳에 왔을 때, 저에 대해 많은 오해도 있었지만, 아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살아가는 누군가가 있으면 좋겠다는 제 생각이 조금씩 주변에도 전달이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한 가지 더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밀양에 큰 교회가 많지 않습니다. 몇몇 작은 교회들이 있을 뿐입니다. 작은 교회 안에도 많지는 않지만 3~4명의 청년이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교회가 우리 교회는 청년이 없어서 청년들을 위해 할 일이 없다고 하십니다. 그중에 많은 친구가 PK(Preacher’s Kids)입니다. PK들이 성경적 양육의 사각지대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교회 사역에 참여하고 있지만, 정작 성경적 양육을 경험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이들을 위한 섬김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친구들을 미국으로 데려가서 밀양 밖의 세상들을 보도록 했습니다. 많은 도움을 받아서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친구들이 그 일 이후 많은 변화를 보이는 것을 봅니다. 여느 농촌처럼 다양한 다문화 가정을 만나는데, 가정이 깨어진 경우도 보게 됩니다. 이 경우 조손가정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많은 아이가 가정으로부터 적절한 관심과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교회는 섬길 아이들이 없다고 합니다. 저는 이런 한두 명의 청년들을 섬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교회가 그 일을 감당하기 어렵다면 캠프 프레이저스가 그 일을 섬기기를 원합니다.
지금은 몇몇 친구들이 주일에 이곳으로 와서 예배를 드리고 있고, 토요일에는 온라인으로 성경 공부를 합니다. 여러 이유로 지금은 밀양을 떠난 친구들이 감사하게도 이 온라인 모임에 계속 참석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밀양을 중심으로 영남 지역의 청소년들을 섬기는 기획캠프와 지역 교회들과의 연합 캠프를 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역 교회들이 저희에게 캠프를 위탁하시거나 전문적인 부분의 구성과 진행만을 맡기시기도 합니다. 저희와 함께 가는 30개의 지역 교회를 기도하고 있는데, 감사하게도 지역교회 중 교육사역을 담당하시는 몇몇 분들과 다음 세대를 어떻게 섬길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협력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Q: 유소년 그리고 청년 사역을 하시면서 느끼신 점을 말씀해 주신다면?
A: 가장 먼저 드리고 싶은 말씀은 한국 교회가 “참 변하지 않는구나”라는 점입니다. 제가 한국에서 사역을 시작했던 26년 전이나 지금이나 청소년 사역에 대한 입장은 바뀌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다음 세대가 중요하다고 이야기는 하지만, 정말 그렇게 행동하고 있는지 돌이켜 보게 됩니다. 모든 교회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방문했던 많은 교회에서 아이들이 생활 환경이 어른들에 비해서 열악한 현실을 보게 됩니다. 이런 현실이 안타깝지만, 각 교회의 상황이나 사정이 있으시다는 점을 알기 때문에 쉽게 비난할 수만은 없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다음 세대가 우리 교회의 희망이고 보물이라고 이야기한다면, 최소한 이에 걸맞게 아이들을 대해 줄 수는 없는 것인지 의문이 듭니다. 여러 행사가 몰려있는 5월에만 교육부서에 관심을 두는 것은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여전히 많은 교회들의 교육부서들이 예산으로 인해서 제약받는 것을 보면서 한국 교회의 청소년 사역 현장이 제가 26년 전에 이 일을 시작할 때의 상황과 크게 바뀌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밖에서 이 친구들이 어떤 문화를 겪는지를 이해하지를 못합니다. 아이들에게서 변화가 보이지 않을 때 많은 경우 “교회가 아이들을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는지 알고 있기는 할까?”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나 정작 “교회가 아이들이 밖에서 어떤 존재로 대해지는지, 어떤 문화를 누리고 있는지, 어떤 것들을 즐기고 있는지 알고 있기는 할까?”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아이들은 교회 밖에서 거의 모든 곳에서 디지털로 되어 있는 다양한 세상을 만납니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여전히 프로젝터로 보이는 이미지 이상의 경험을 하지는 못합니다. 제가 이해하는 요즘 아이들은 시각적 이미지에 매우 예민합니다. 동일한 화면에서도 어른들보다 훨씬 많은 의미들을 파악해 냅니다. 1~2초 이내에 아이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면 집중을 끌어내기가 어렵습니다. 또한 한 가지 일에 집중하는 것이 미덕인 어른들의 눈으로 멀티태스킹이 가능한 아이들을 보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듣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듣고 있고, 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른들의 방식과 다르다는 이유로 아이들이 잘못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이켜 봐야 합니다. 아이들의 방식대로 집중하고 있는 것을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저는 아이들이 신뢰하는 대상에게 진심으로 마음을 열고 진지하게 대하는 것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어른들처럼 계산하지 않고 순수하게 대화하는 아이들을 보고 있습니다. 저는 아이들이 순수하게 대화할 수 있도록 곁을 지켜주는 누군가가 되고 싶습니다. 이 일에 교회에서 관심을 두고 정책적인 지원을 해주시면 좋겠고, 이 아이들을 이용해서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아이들과 함께 걸어가는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일들이 특정한 사역 단체나 사역자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의 일상이 되었으면 하는 소망이 있습니다.
Q: 현장에서 느끼시는 어려운 부분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A: 교회마다 처한 상황은 다르겠지만, 청소년에 대한 재정이 현실화가 되면 좋겠습니다. 다음 세대에 더 많이 투자해 주시고 관심을 주시면 아이들은 더 많이 성장할 것인데 현실은 아직 많이 열악한 것 같습니다. 다음 세대에 대한 미흡한 관심은 이 사역을 전문적으로 연구하시는 분들이 적다는 것에도 보입니다. 또한, 사역자들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이 사역을 하려는 분들이 많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유소년 및 청년 사역이 교회 안에서 장년 사역에 비해 관심이 적은 게 사실입니다. 많은 사역자가 장년들을 대상으로 성공적인 목회를 꿈꾸고 있는 것 같습니다. 청소년 사역에 뜻이 있는 분들도 지방까지 내려오지 않으시려는 것이 현실이기도 합니다. 제 삶에서 감사한 것 중 하나가 열 명 규모의 교회부터 만 명 규모의 교회를 모두 경험했다는 점입니다. 최소한 한 교회에서 2~3년 이상 충분한 시간을 보내면서 다양한 교회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기간에 유소년 사역에 대한 전문가를 키우려는 교회를 단 한 곳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각자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잘 개발해서 전문성을 갖고 있기를 바라지만, 현실은 모든 사역자가 사역자라는 이유만으로 교회의 모든 기능을 수행해야 하는 만능 제너럴리스트가 되기를 기대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슈퍼맨 병’을 좀 고치면 좋겠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사역자들이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최대한 발전시키는 전문가로 성장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Q : 신학교 교육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셨는데요. 다음 세대 사역자들을 위해 신학교 교육에 꼭 반영되었으면 하시는 내용이 있으신가요?
A : 교육부서 중심으로 이야기하자면, 사역자가 교육 부서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프로그램 기획과 교사 훈련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대한 교육은 거의 전무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역이 언어를 매개로 이루어짐에도 불구하고 말을 하는 방법인 화술이나 커뮤니케이션에 관해서 공부하지는 않습니다. 아이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은 문화적 차이 등으로 인해서 더 어려운데도 기본적인 소통 방법조차도 배우지를 않는 것입니다. 프로그램 기획법을 학습하지 않으니까 거의 모든 수련회가 매해 비슷한 구성과 방식을 되풀이합니다. 각 순서의 의미와 목적도 생각해 보지 않고 프로그램을 편성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근 교회 안에서 청소년 상담 전문가로 자처하시는 분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중에 상담을 학문적으로 전공하신 분들이 아니라, 신학을 전공하신 분들이 상담센터나 교육센터를 운영하시는 경우가 자주 보입니다. 신학이 사역을 위한 보편적인 교육임은 분명합니다만, 신학을 바탕으로 무엇인가를 응용하는 측면에서는 좀 더 전문성을 갖추는 것이 필요해 보입니다. 저는 기독 레크리에이션 경영을 전공했습니다. 신학적인 부분은 일반적인 수준으로 배웠을지는 모르겠지만, 캠프 사역을 위한 전문적인 교육을 받았다는 점에서 제게는 큰 유익이 있었습니다.
Q : 신학교의 교육과정 이외 다음 세대 사역적인 측면에서 바꾸어야 할 것은 없을까요?
A: 사역에서의 평신도의 위치를 다시 생각해 보자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미국에서 방문했던 많은 교회들의 교육부서에는 소수의 신학 전공자들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오히려, 교육의 전문가들이 교육부서를 주도하고 있었습니다. 설교는 물론 신학을 공부하신 목사님들이 하시지만, 이외의 다른 활동은 교육 전문가들이 책임지고 있습니다. 또한 평신도들의 재능을 사역에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제가 방문했던 한 교회에서 설교와 관련한 영상을 예배 중에 보여준 적이 있었는데, 유명한 할리우드 영화의 장면이 그대로 나왔습니다. 그 영상에 설교하시는 목사님이 등장하시는데 전혀 이질감을 느낄 수 없는 뛰어난 품질의 영상이었습니다. 나중에 어떻게 그런 뛰어난 품질의 영상을 만들 수 있었는지를 물었는데, 그 교회의 영상 담당자가 할리우드에서 실제 편집을 하시던 전문가분이었습니다. 그분이 교회에서 사례를 받고 자신의 재능을 사용해서 사역의 한 부분을 맡은 것이었습니다. 아동부실에 가보면 정말 아이들이 오고 싶은 공간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재정 수준의 차이가 결정적인 원인일 수 있지만, 재정이 많다고 해서 다 그런 투자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분명합니다.
저는 그런 인식의 전환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왜 교회는 재능있는 평신도들을 전문가로 인정하고 그분들의 의견을 묻지 않는지, 영적인 권위를 내세워서 전문가 평신도들이 그저 담임 목회자가 원하는 대로 따라주기만을 원하고 있지는 않은 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교회의 권위가 말씀으로부터 온다는 것이 하나님으로부터의 권위인지 목회자로부터의 권위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설교가 목회자의 전유물로 인식되고, 목회자의 축도가 특별한 은혜의 수단으로 인식되는 것이 과연 성경적으로 충분한 근거가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성도들의 재능에 대해 교회가 사례를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성도들의 재능은 교회 밖에서는 전문성이 인정되어서 대가를 지불하고 사용됩니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모든 것이 봉사가 되어 버립니다. 심지어는 그 봉사가 강요되기도 합니다. 과연 이런 구조가 요즘 세대들에게 어떻게 느껴질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교회 밖에서는 전문가인데 교회 안에서 그 전문성을 인정받지 못한다면 전문가들의 역량이 교회를 위해서 사용되기 어려울 것입니다. 결국 교회는 전문성이 부족한 사역자들이 그 빈 부분을 메꾸어 나가면서 전체적으로는 완성도가 떨어지는 결과물을 낼 수밖에 없습니다. 대가의 지불 여부가 핵심이 아니라, 성도들을 교회의 동등한 구성원으로서 인정하고 동역의 주체로 인정하는가에 대한 문제를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
덧붙이자면, 목회자들이 성도들의 헌금을 귀중히 여기면 좋겠습니다. 예배당에 정말 필요한 것만 갖추어진 부산의 한 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이 교회의 규모 등을 고려했을 때, 그 이상의 시설을 갖추고 있을 법한 교회이지만, 검소한 교회의 구성을 보면서 이 교회가 성도들의 헌금을 대하는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그런 마음이 느껴지니까 저도 더 겸손한 마음으로 예배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겉모습으로만 보기 때문에 저의 판단이 틀릴 수도 있지만, 교회가 재정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를 되짚어 보자는 말씀은 꼭 드리고 싶습니다. 코로나 상황 이전에, 청년들과 지속해서 방문하던 선교지가 아프리카에 있습니다. 선교지에서 예배를 마치고 나니, 어떤 할머니께서 꼬깃꼬깃하게 접힌 지폐를 건네주셨습니다. 한국 돈으로 천 원 남짓한 금액인데, 선교사님께서 이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 할머니께서 최소한 이틀에서 사흘을 일하셨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지폐를 제 책상에 올려두고 헌금을 대하는 제 마음을 매번 점검하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가 성도들이 어떤 노력을 해서 헌금을 하는지를 알고 있다면 재정을 둘러싼 잡음도 나오지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자신들이 쓸 것을 줄여서 헌금하신 성도들이 교회의 건물은 높아져 가지만 정작 그 헌금이 쓰여야 할 곳에 쓰이고 있는지 의문을 던지신다는 점을 두렵게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배당을 키우는 것인지, 사람을 키우고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신학교도 교육전도사-부목사-담임목사로 이어지는 전통적인 성장 패턴에만 초점을 맞추어서는 앞으로 변화하는 환경에 대응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소수를 제외하고는 이러한 패턴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제한된 기회만을 보고 달려가는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Q: 한국 교회를 보시면서 안타까우신 점과 그런데도 희망을 어디서 볼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A : 아픈 점은 많이 말씀드렸고, 그런데도 희망을 꿈꿀 수 있는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 때문인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 공부할 때, 911이 터졌습니다. 모든 학생이 수업을 중지하고 기도하기 위해 기도를 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그것이 그 학교만의 분위기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왜 하나님께서 미국을 사랑하시는가를 볼 수 있었습니다. 미국은 죄악의 끝을 달리는 나라입니다. 한국에서의 청소년 일탈과 차원이 다른 마약, 총기 사건이 학생들 사이에서 빈번히 발생합니다. 그러나, 그 죄악이 가득한 땅이 멸망하지 않고 서 있는 이유는 바로 기도하는 사람들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한국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한국에서 개독교라는 말이 자주 들립니다. 그러나 교회가 구제를 중단할 때, 교회가 사회를 섬기는 일을 멈출 때 어떤 일이 생길지 일방적으로 교회를 매도하시는 분들은 잘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목회자 세습이나 대형 교회의 일탈적 행동으로 인해 교회가 욕을 먹지만, 지금도 섬에서, 산골에서 땀과 눈물을 흘리며 목회하시는 분들의 헌신은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힘이 한국 교회를 지탱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음 세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만나는 많은 분이 지금도 눈물로 기도하시고 아이들을 위해서 함께 뛰려고 하십니다. 단지 그 방법을 잘 모를 뿐입니다. 저는 이런 분들과 동역하면서 함께 나아가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저는 보이지 않는 이 힘이 한국 교회의 희망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은 지금은 모든 아이를 다 섬기기 어려운 때인 것 같습니다. 제가 강조하는 것은 한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의 누군가를 변화시키고 그 친구가 또 다른 누구를 변화시키도록 하는 것입니다. 저는 제자화라는 개념은 재생산을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그런 개념으로 제자들을 길러왔습니다. 그러나, 제자 사역이 나의 무엇인가를 완성하는 것은 아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리시는 큰 그림 안에서 작은 부분에 사용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시는 그림의 처음과 끝을 볼 수 없습니다. 다만 나의 시작과 끝을 비교했을 때, 하나님의 사람을 한 명이라도 길러낼 수 있기를, 내가 있던 곳이 좀 더 하나님의 나라에 가깝게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 일을 위한 징검다리에 작은 돌 하나를 놓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맡길 뿐이지만 하나님의 길을 이어가는 작은 돌 하나를 놓고 싶고 저를 딛고 제 뒤의 누군가가 제가 놓은 돌에 이어서 또 다른 돌 하나를 놓아 가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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