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교회에 나오기 어려운 이웃들이 있다면 교회 개척은 계속되어야 합니다:개척을 통해서 교회의 변화를 꿈꾸는 최희동 전도사
- 보현 전
- Dec 3, 2022
- 8 min read

Q: 본인과 현재 하고 계시는 사역에 대한 소개를 부탁합니다.
A: 현재강도사를 준비하고 있는 최희동 전도사라고 합니다. 수도권에 있는 교회에서 전임전도사로 섬기고 있습니다. 어느새 6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다 보니, 이제는 과거에 어떤 일을 했고 어떻게 살았노라는 설명 같은 건 별다른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흔히 나이 오십이 되면 ‘이제 꺾였다’는 표현을 쓰는데, 아마 그 정도 나이가 되면 인생의 후반기를 본격적으로 준비해야 한다는 뜻이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저는 엉뚱하게도 바로 그런 나이에 신학을 시작했습니다. 젊은 시절 상고를 졸업하고 곧바로 은행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기에 신학을 하기 위해서는 학사학위부터 따야 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공부를 하면서 어느덧 1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습니다.
Q: 다소 늦은 나이에 신학을 시작하셨는데,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습니까?
A: 늦이로 신학공부를 시작하는 저를 보며 주변 사람들은 ‘정신 나갔다’고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만, 40대 후반 즈음에 하나님께서 저로 하여금 (하나님의 종으로) 서원기도를 하게 하셨습니다. 어릴 적부터 오랜 기간 교회를 다녔던 저이지만, 40대 후반에야 비로소 하나님을 뜨겁게 만났던 것입니다. 그 후 하나님께서 전도 훈련에 대한 마음을 주셔서, 일주일에 한 번씩 생업을 내려놓고 훈련을 받으러 다녔습니다. 그 훈련에 갈 때마다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모임에 갈 때마다 저를 전도하는 사람으로 쓰시겠다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목회적 소명인지 평신도로서의 섬김의 부르심인지는 확실치 않았지만, ‘복음을 전하는 일에 전도자로 쓰시겠다’는 부르심에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당시에 저는 중등부 교사로 섬기고 있었는데, 교사 기도회 시간에 동료 교사들 앞에서 앞으로 전도자의 삶을 살겠다는 공개적인 서원을 하고 중보기도를 부탁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확신을 고백했던 날이기 때문에 그날을 절대 잊지 못합니다. 그 후 하나님께서는 예수전도단에서 주관하는 DTS (Discipleship Training School)과정을 마치고 간사로 3년간 섬기게 하셨습니다. 저로서는 동일한 과정을 4번이나 반복해서 들음으로써 과정 내용을 더욱 깊게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그 후 선교단체를 더 긴밀하게 섬기고자 담임목사님께 추천서를 받으러 갔는데, 그때 담임 목사님께서는 신학을 권면하셨습니다. 제가 학사 학위도 없다는 점을 말씀드렸으나, 무조건 대학부터 가라고 하셔서 2015년에 대학에 진학하고 신대원 과정까지 7년의 과정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Q: 하나님의 인도하신 과정을 말씀해 주셨지만, 당시에도 교회의 성장이 둔화하고 있던 시기이고, 특히 나이가 있는 사역자들이 사역지를 구하기 어려운 문제도 있었을 텐데, 그 결정에 이르기까지 고민이 없으셨습니까?
A: 그런 고민보다도 우선 늦은 나이에 공부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습니다. 특히 헬라어나 히브리어 공부가 너무나 어려웠고, 지금도 여전히 원어로 성경을 읽고 주해하는 것을 꾸준히 연습해야 하는 수준입니다. 한편, 직접 신학공부를 해 보면서 우리나라 신학교 및 신학생들의 어려운 형편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젊은이들이 어려움 없이 신학을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젊은 사역자들이 훈련되기 위해서는 기성세대들의 기도와 후원이 절실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젊은 나이에 부르심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너무 귀하고, 그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제게 맡겨주시는 일들이 있기 때문에 저는 그 길이 좀 굽어져 있거나 남들이 가기를 꺼린다 하더라도 마다치 않고 순종하려 할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일을 맡겨 주신다는 사실 자체가 저에게는 오직 감사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듯 그릇에도 귀한 그릇과 천한 그릇이 있고, 또 귀한 그릇이 쓰일 곳과 그렇지 않은 그릇이 쓰일 곳이 따로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각자의 지경을 정하시며, 또한 각자가 그 지경과 소명을 깨닫도록 인도하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비록 늦은 때에 부르심을 받았지만, 그 부르심에 감사하며 살아가려 합니다. 남들이 보면 인생 후반기에 이르러 아무 보장도 없는 신학공부를 하는 것이 한없이 어리석게 보일 것입니다. 하지만 저의 쓰임새의 크고 작음과 상관 없이, 저는 각 순간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있습니다. 오늘 밤이라도 하나님께서 오라시면 아멘 하고 가고 싶다는 제 고백처럼 말입니다. 혹여 아무런 사역도 하지 못한 채 하나님께서 부르시더라도, ‘하나님, 저 이제 겨우 대학원 마치고 목사 되었는데, 벌써 부르십니까?’라고 되묻지 않고 순종하고 싶습니다. 짐 엘리엇이라는 선교사는 아마존 정글에 선교를 갔다가 제대로 복음을 전하지도 못하고 순교하였음을 잘 아실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삶이 믿음의 후예인 우리들에게 얼마나 큰 감동을 주고 있습니까? 섬김이란 우리 안에 있는 사랑과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은혜로 하는 것이지요. 물론 현재 한국교회는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고, 목회자들이 사역할 사역지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그런 현실을 계산해가며 사역할지 말지를 결정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은혜를 믿고 간절히 구하며 저에게 맡겨 주신 이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요즘 사역자들이 사역지의 환경을 따지는 진짜 원인은 우리 안에 예수님의 사랑이 없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남들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섬기라는 마음을 주셔도 ‘제가요? 저는 못해요.’라고 버티고 있는 저를 발견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담뿍 받은 저이지만, 그럼에도 제 안에는 나눌 만한 사랑이 없다고 뻔뻔하게 이야기하는 것이지요.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사회적으로 소외된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국 교회가 급속히 성장하던 시기에는 대부분의 성도들이 제도권에 속한, 형편이 좋은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시골에서 막 올라온 사람들, 변두리에 모인 사람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교회 부흥의 핵심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지금도 큰 교회에 발을 들이기가 망설여지는 어려운 이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을 섬기는 데 집중한다면, 지금도 교회가 필요한 곳은 얼마든지 있지 않을까요? 생각해 보면 저의 선배 목회자들은 신학교에 다니는 중에도 개척을 하던 세대였습니다. 그분들의 형편이 지금보다 더 나은 것은 결코 아니었을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중에 하나님을 의지해서 길을 열어 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기독교 인구의 수는 지속해서 줄어들고 있고, 교회도 줄어드는 상황에서 교회를 개척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A: 저희 큰아이가 어느새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요즘 젊은 부부들은 저희 때나 제 부모님 때보다 경제적 형편이 훨씬 좋지만 육아가 힘들다는 생각에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경향이 많은 듯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성도들이라면, 출생률을 높이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아이를 낳고 기름으로써 우리에게 주시는 사명을 이루어가기 위해서도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의미를 부여한다면, ‘이렇게 애들이 많은데 나까지 애를 낳을 필요는 없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저는 교회 개척도 이와 같이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존 교회수가 많고 적음에 상관 없이, 하나님께서 개척의 사명을 주신 이들은 개척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가 젊어져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듣게 됩니다. 그러나 늙은 교회가 젊어지는 유일한 방법은 새로운 젊은 사람들이 교회로 와서 그들이 교회를 새롭게 하고 교회를 젊게 바꾸어가는 것입니다. 저희 교회도 어르신들의 비중이 크기 때문에 젊은 세대의 부흥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교회 사역에서는 물론 목회자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성도들이 없다면 목회자도 없습니다. 새로운 성도들이 교회에 나오고, 그들과 교제하고 양육하면서 목회자도 새롭게 활력을 얻게 되고, 하나님께서 교회에 새로운 사람을 보내서 새로운 일들을 준비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교회가 줄어들기 때문에 교회를 개척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새롭게 하려면 힘써서 개척도 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교회로 인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주신 말씀에 동의하지만, 한편 젊은 세대의 목회 후보생들에게 개척하는 일은 어렵고 심지어는 두렵기도 한 일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이렇게 개척에 대한 부담이 늘어나는 이유, 특히 젊은 세대들이 이를 부담스러워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A: 요즘 모든 교회가 파트 사역으로 일하는 전도사를 구하기가 너무 어렵다고 합니다. 이미 사회에는 전도사로 섬김으로써 받을 수 있는 사례보다 더 적게 일하고 더 많은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일자리가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본인이 원하는 시간에만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되면서 이런 현상이 더 가속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전도사들이 교회 사역을 훈련하고 배울 기회를 갖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죽하면 제가 속한 교단은 강도사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무조건 전도사로 2년을 섬겨야 합니다. 규정이 없으면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기 때문에 이런 규정이 생긴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이렇게 의무화하는 것이 좋은 해결책도 아닙니다. 저는 의무기간이 2년을 채웠습니다. 이제 교회에서 전도사로의 사역을 내려두고 제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 일하면서 강도사 고시에 집중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반면에 교회에서 섬기게 되면, 교회에서 양육하고 교제하는 일들, 그리고 그 외에도 설교를 준비하고 연구하데 필요한 시간이 생활에 필요한 소득을 얻기 위해 써야 하는 시간보다 훨씬 많이 요구됩니다. 지금의 제 상황을 생각하면 교회 사역을 내려두는 것이 더 효과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럼에도 저는 지금 교회에서 섬기는 삶이 저에게 더 맞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효과만을 생각하면 교회는 개척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더 효과적으로, 더 편리하고자 하는 육신의 연약함이 고난을 거부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전통 사회에서는 결혼하지 않으면 어른들이 결혼에 대해 권면 합니다. 그러나 요즘은 결혼이 개인의 선택으로 여겨지면서 이런 권면은 점차 사라지고 있습니다. 교회 개척에 대해서 젊은 세대들이 부담스러워하는 것에도 사회적인 가치관의 변화가 영향을 줄 것입니다. 어떤 결정을 하는 것에 있어서 기도하면서 주님의 뜻인지를 묻기에 앞서서 옳고 그름을 따지거나 효과적인 방법을 계산해 보는 것이 바로 세속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함부로 말할 수는 없지만, 적은 사례라도 어려운 교회에 가서 전도사로 섬기는 것과 선택적으로 교회를 섬기는 일 중에서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원하시는가를 생각해 본다면 답은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게는 여전히 교회를 개척하는 일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새로운 마음과 감동을 주십니다. 그런데 성공을 생각하면 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모두는 아니겠지만 젊은 세대의 목회적 성공의 기준이 다른 데에 있기 때문에 여전히 어떤 교회들만을 찾아다니는 것이 아닐까요? 비록 어렵지만, 그 메마른 황무지 같은 곳으로 가는 마음을 주실 때에 선배들의 본을 따라서 순종해서 개척하는 모습과 한편으로는 기득권처럼 세습하고 누리는 일부 교회를 쫓는 모습에서 세상에 어떤 모습으로 보일 것인가의 문제라고도 생각합니다.
Q: 젊은 목회 후보생들이 목회적 소명 자체를 포기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직업 안정성이 매우 취약한 구조적 문제를 개인의 믿음의 크기나 순종의 문제로 이해하려는 장년 세대와의 인식 차이가 근본적인 원인으로 보입니다. 다만, 전도사님처럼 장년에 목회를 준비하시는 경우에는 교회 개척에 대해서 청년 세대보다 더 적극적이신 것 같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A: 예전에 평신도로 생활하면서 성도 간의 교제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선교단체에서 섬기면서 열방에 대한 선교적 중요성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신다면 당연히 순종할 것입니다. 하지만 제 삶에서 보이는 선교적 사명은 외국에 나가는 것보다는 그동안 가깝게 겪어 본 이웃들에게 있는 것 같습니다. 제 경우에는 탈북민들을 만나서 가까이 지켜보고 섬길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분들과 만나고 나니, 여전히 우리 주변에 사회로부터 동떨어진 분들이 많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치 멀리 있는 선교지처럼요. 안타깝지만, 많은 교회들이 여전히 이런 분들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도 없고 교제하고 싶어하지 않는 듯합니다. 바로 우리 사회 안에 진짜 이방인 같은 분들이 있는 것입니다. 또 제 아내는 어르신들을 돌보는 요양센터를 운영하고 있는데, 센터를 통해서도 돌봄이 필요한 분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제게 보여주신 이런 부분들이 저의 지경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본다면, 각자의 직업은 생계를 해결하는 어떤 수단 이상의 의미, 즉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만나게 하시는 통로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을 주셔서 그분들을 두고 기도하게 되고, 복음을 전하고, 또 교제하면서 교회로 인도하는 일들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저처럼 생활인으로서 어느 정도 경험을 가지고 목회를 준비하는 장년의 목회 후보생들 중에는 그들의 사회 경험을 바탕으로 조금 특별한 형태의 교회 개척을 꿈꾸는 분들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카페 교회가 될 수도 있고, 공방 교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런 형태가 어떤 업종과 결합이 되든 간에 바울이 행했던 텐트메이킹 사역을 실천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역을 겸하여 자기의 생업을 책임졌던 모델이 지금 사회에 매우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도권에 속한 교회들에서 전임사역을 통해서 목회적 소명을 다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고, 저처럼 새로운 모델을 열어가야 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 사회에서 교회 개척의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도 열려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에서 세속화의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서 언급했지만, 사회의 변화가 목회의 새로운 형태를 촉진한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Q: 말씀을 들어보니, 장년 세대가 청년보다 선교적 침투가 훨씬 쉽다는 점, 그래서 다양한 교회의 모델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잠재력이 크다는 점에 대해서 공감이 됩니다. 앞으로 어떤 교회를 개척하고 싶으십니까?
A: 제가 다니던 교회는 신도시 상가에서 출발한 교회였는데 이후에 신도시가 확대되는 과정에서 교회를 새로 건축한 교회였습니다. 새롭게 교회 건물이 지으면서 다들 부러워하는 아름답고, 교회 생활이 편리한 예배당 건물을 세웠는데, 그것이 신앙생활에 어떤 유익이 있었는가는 그렇게 와 닿는 것이 없었습니다. 비록 상가 건물에 있던 때에도 참 훌륭했고, 아름다운 교회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섬기는 교회는 회중이 100여 명이 채 되지 않는 규모입니다. 하지만 예배당은 동시에 150명이 예배를 드릴 수 있기 때문에 성도들만 모인다면, 500명 이상도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교회입니다. 그런 예배당이 있음에도 60~70명 정도의 성도들만 모여도 예배당이 가득 차는 활기가 느껴지는데, 이마저도 연합 예배가 있는 날이나 가능합니다. 결국은 교회의 하드웨어는 그렇게 중요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저는 지금도 제가 섬기는 교회에 더 많은 회중이 모이는 것을 꿈꾸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사람들이 모이는데 하드웨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그 교회가 지역 사회에 어떤 평판을 얻고 있는가입니다. 교회가 자신의 평판을 훼손하는 실수가 있고 이것을 바로 잡지 못하면, 지역 사회 안에 생기는 부정적인 평판을 바꾸어 나가기가 참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 교회는 내가 가고 싶은 교회가 아니라, 그냥 우리 동네에 있는 하나의 교회일 뿐입니다. 부정적인 평판을 바로 잡지 못하면, 그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 것은 바로 교회의 성도들입니다. 교회의 분쟁 탓에 성도들의 마음이 나뉘고, 하나가 되지 못하는 일이 생깁니다. 이런 모습을 볼 때, 목회 후보생으로서 목회적 책임이 크게 느껴집니다.
저는 모든 교회 사역에서 준비되는 과정 중에 있는 사람이고, 부족함이 많은 사람입니다. 지금도 저는 설교 한 편을 위해서 며칠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렇게 준비한 설교가 탁월한 설교자의 설교와 비교가 되는 명설교도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반드시 뛰어난 자들을 통해서만 일하시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제 설교를 들어주시는 분들이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부족하지만 연구해서 설교를 준비하는 그 시간이 하나님께서 저를 가르치시는 시간이고, 공부시키시는 시간입니다. 제가 어떤 탁월함이나 능력이 있어서 목회를 꿈꾸고, 개척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저도 개인적으로는 상담을 더 공부해서 사람들의 내면에 하나님의 형상이 뚜렷하게 나타나도록 돕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신대원에서 3년을 공부했지만, 공부하면 할수록 준비해야 할 것과 배울 것이 더 많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저의 준비가 저의 역량이 되어서 저의 목회를 성공으로 이끌어 준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부족한 자를 긍휼히 여기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을 때, 부족한 말씀이라도 사람들의 심령에 하나님을 증거하는 역사로 나타남을 믿을 뿐입니다.

Q: 한국 교회를 보시면서 안타까운 점은 무엇입니까? 그럼에도 희망을 찾는다면 어디서 희망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A: 이미 한국 교회는 받은 은혜가 엄청납니다. 6만 개가 넘는 교회가 여전히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그 교회를 다 없애지 않으시고, 지금도 존재하도록 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사역지가 없다는 말을 우리가 함부로 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도 지방에서는 사역자를 구하지 못해서 애먹는 교회들이 많이 있습니다. 내가 이 교회 가면 얼마의 사례를 받을 수 있겠거니, 혹은 우리 가정이 제대로 유지될지에 대해서 의심하고 계산하기에 앞서서, 우리가 기도하면서 섬겨야 할 곳이 있음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물론 사람마다 하나님이 그 뜻을 두어 인생을 인도하시고 각양의 은사를 주셔서 교회를 섬기게 하시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모두 같은 모습으로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면 우리 자신이 우리의 두려움을 합리화하는 것인지에 대해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살펴보고, 우리의 판단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한 여전히 희망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한국에 있는 그분의 자녀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그 마음을 알고 그분의 자녀를 섬기는 일에 우리가 하나 될 때 한국 교회는 희망의 빛을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