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한국 교회의 회복은 성도 개인의 회복으로부터:기독교 상담가 신성희 성도
- 보현 전
- Jul 8, 2022
- 9 min read
Updated: Jul 15, 2022

Q: 본인에 대해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A: 안녕하세요? 기독교 상담가로 활동하고 있는 신성희라고 합니다. 심리적인 어려움, 대인관계 및 가족관계에서 어려움을 호소하는 분들을 상담하고 있습니다. 목회자 및 선교사 자녀들, 사역자들의 가족분들에 관심이 많아 그분들을 꾸준히 상담해 오고 있습니다.
Q: 기독교 안에서 상담 자체를 긍정적으로 보지 않으시는 분들도 있으실 것같습니다. 기독교 상담과 일반상담이 어떻게 다른지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그리고, 어떤 계기를 통해서기독교 상담가의 길로 들어서게 되셨나요?
A: 심리학의 아버지라 칭하는 프로이트는 종교를 집단적 강박행위로 주장하였고, 인간이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신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한 인물입니다. 이런 무신론적인 입장이 심리학이 전반이라고 생각한다면 상담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도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학과 상담은 통합될 수 없는 학문의 영역이라고 주장하시는 신학과 교수님의 주장을 들은 경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신학과 기독교 상담학 모두 하나님을 전제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반상담이 하나님 없이 인간 자신의 노력과 변화로 심리적 안녕감을 누리는 것에 대해 설명한다면, 기독교 상담은 기독교인인 상담자가 창조, 타락, 구속의 관점으로 인간을 이해하며 내담자의 심리적 안녕감뿐 아니라 하나님과 건강한 연합을 이루는 영적 안녕감을 이루는 것을 지향하는 점이 일반 상담과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내담자가 동의할 경우 상담 안에서 내담자와 하나님과의 관계 경험과 이해를 다루기도 합니다. 내담자들이 자신의 주요한 대상과의 경험을 통해 습득한 표상으로 하나님을 인식하게 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특히 부모님과의 관계 경험이 하나님을 이해하고 경험하는 것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부모님과의 경험에서 부정적 자기 인식을 하고, 타인을 인식하게 될 경우,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그대로 투영되어 재 경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현재의 성격 구조와 심리적 어려움을 갖게 된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여, 자신과 타인에 대한 건강한 이해를 갖는 것을 돕는 과정, 나아가 하나님을 왜곡하지 않고 이해하는 과정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기독교 상담자로서 가진 목표이기도 합니다. 저는 자신의 이해도가 높아지는 과정이 결코 하나님을 등지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기 내면을 깊이 있게 다루다 보면 그 안에 자리 잡은 죄성을 보게 됩니다. 내면의 죄를 볼 때, 자신을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상담은 내 안의 죄를 직면하는 순간이 죄인인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성을 가진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경험은 세상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조건 없는 사랑을 경험하는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점에서 기독교 상담이 인간 중심의 인본주의적 상담과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학적인 이해가 없이는 불가능한 작업이기도 합니다. 제가 속해 있는 센터에서도 지속해서 상담과 신학을 통합하는 작업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Q: 요즘 상담이 정말 많은 관심을 받는 것 같습니다. 많은 분께서 앞으로도 이런 관심이 지속될 것이라고 보시는 것 같은데, 현장에서 느끼시는 상담에 대한 관심은 어떤가요?
A: 최근에 오은영 박사님께서 방송에 자주 출연하시면서 상담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높아지는 것 같습니다. 이에 따라서 상담에 대한 문턱이 많이 낮아지게 된 것 같고, 저 뿐 아니라 많은 동료 상담자들도 상담이 대중들에게 점점 친숙하게 인식되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상담에 대한 사람들의 높은 관심은 상담의 필요성 또한 그 만큼 높아졌다는의미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많은 상담가분께서 최근 특히 젊은 세대에서 병리적 현상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일반적으로 전쟁과 같이 생존이 위협받는 환경에서는 정신적인 문제가 심각하게 발생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러한 생존의 위협을 경험한 후, 3세대가 지난 후에야 심리적 문제가 수면위로 드러난다고 합니다. 지금 한국이 그 시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도 한국 전쟁 이후에 생존이 위협받는 어려운 시간을 보내왔는데 지금의 20~30대는 생존에 대해위협을 덜 느끼는 세대 특징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생존이 위협받는환경에서는 묵인되었던 부모의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양육 방식이나 무관심 등이 병리적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 미디어의 영향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연예인 등 유명인들이 자살하는 경우, 자살의 동기부터 방식까지 상세히 언론에서 보도합니다. 그런데 상세한 보도는 자살에 대해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역기능을 갖기도 합니다. 자살에 대한 구체적 보도를 빈번하게 접하면서 사회적으로 자살 행위 자체를 익숙하게 여기게 되고 이에 따라 심리적 어려움을 견디기보다는 극단적인 선택을 쉽게 하는 부작용도 발생하는 듯 합니다. 근래에 자살, 자해 시도를 반복적으로 경험하고 호소하는 사람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습니다. 특히나 요즘은 부모가 모두 일하면서 가족의 유대감 자체가 약화되는 환경입니다. 앞으로도 가족 내에서의건강한 관계 형성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상담에 대한 필요성은 지속해서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 상담을 필요로 하는 분 들 그리고, 상담가로 활동하기를 원하시는 분 양 쪽 모두 늘어나는 추세인 것은 분명합니다.

Q: 주로 어떤 분들을 상담하시나요?
A: 정말 다양한 분 들을 상담합니다. 신앙이 없는 분 들도 많이 만나고 있지만, 저의 경우에는 기독교 신앙이 있는 분 들의 비중이 높은편입니다. 이분 들 중에는 선교사나 목회자와 같은 사역자 분 들과 그 가족 분들이 포함됩니다. 교회에서 직임을 맡고 계시는 리더로 섬기는 분 중에도 많은 분이 상담 받고 계십니다.
Q: 사역자가 상담 받는 것은 한국 기독교 문화에서는 좀 꺼려지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할 것 같습니다. 이런 면에서 사역자와 그 가족들이 겪게 되는 어려움은 무엇일까요?
A: 한국 교회에서는 상담받는다는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 혹은 자신의 믿음에 문제가 있다는 것으로 비치는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역자가 상담받는다는 것에 대해서 금기시하는 경향이 있고 심리적 문제를 ‘믿음’으로 해결하시려는 분들도 많이 보았습니다. 가족들 역시 자신이 겪는 심리적 어려움이 밖으로 알려질 경우 사역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으로 느끼시기 때문에 심리적 어려움을 혼자서 감당하려다가 더 큰 어려움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구조는 사역자와 그 가족들이 교회 안에서 건강하게 소통하거나 관계를 형성해가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들기도 합니다. 특히 사모님들은 교역자그룹에 속하지도 않고 성도 그룹에 속하기도 어려운 위치입니다. 이런 구조적 특징으로 인해서 교회에서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심하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겪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최근 심리적 지원을 위해 상담을 제공하는 교회들도 늘어가고 있지만, 교역자 자신과 가족들은 그 대상에서 배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선교사 자녀들에 관심이 많습니다. 선교사 가족은 모든 가족 구성원이 낯선 타국에, 언어와 문화가 다른 환경에서 가족 모두가 적응하게 되는 환경에서, 선교사인 부부가 함께 사역을 감당하기 때문에 아이들의 정서적 필요를 공급하는 것이 물리적으로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교육환경이 마땅하지 않은 경우는 부모님과 떨어져 생활하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으며, 선교지 환경에서는 만남과 이별이 잦은 환경이기에 자녀들은 반복적인 상실을 경험하기도 하지만, 이러한 상실과 슬픔을 표현하고 나눌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되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선교는 교회의 중요한 사역 중의 하나인데 선교 현장에서 그 일을 감당하는 가정이 겪게 되는 심리적 어려움을 이해하고 지속해서 돌보는 것이 아주 부족합니다. 선교의 주체가 되는 선교사 가정이 심리적으로, 사회적으로 안정감이 없는 상태에서 선교를 감당하는 것이 지속 가능한 방식인지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사역자 개개인의 심리적 상태도 중요합니다. 코로나 이전에 한 교단에서는 상담센터와 협력하여 목사고시와 함께 심리검사를 실시하였으며, 면접에서 심리검사를 활용하기도 하였으며, 안수 이전에 리 트릭을 통해 본인의 심리검사 결과를 해석 상담을 진행하였습니다. 그중 한 번은 배우자도 함께 리트릿에 참여해서 함께 해석 상담에 참여한 경우도 있었는데 사역을 시작하기 전 이러한 경험들은 참 필요한 과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상담을 공부하면서 저의 이런 개인적 특성을 더 깊이 볼 수 있었고, 저 자신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통해서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를 더욱 건강하게 세워갈 수 있었습니다. 상담에 대해서 다양한 평가가 가능하지만, 자기 이해를 돕는다는 측면에서 사역을 준비하시는 분들에게 유익한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목양 현장에서 병리적인 심리적 문제를 목회자가 직접 대응하는 것에 한계를 느끼셔서 기독교 상담 기관에 협력을 요청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저는 이러한 협력 관계가 갖는 유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상담의 관점에서 볼 때 멘토링이나 개인 양육은 목적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상담은 기본적으로 내담자가 자율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초점을 둡니다. 상담자가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지시적인 상담은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경우 심리적으로 취약한 내담자의 의존성이 더 강화될 수 있습니다. 내담자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유연한 사고와 태도를 취하는 것을 돕는 것이 상담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내담자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돕는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상담의 관점에서 내담자가 상담자에게 심리적으로 의존하게 되는 상담은 실패한 상담입니다. 멘토링과 개인 양육은 멘토 혹은 목회자가 문제에 대해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데 목적을 두는 것 같습니다. 멘토나 목회자가 자신의 신앙 경험이나 지식에 근거해 문제에 대한 답을 주시는 것을 자주 보게 됩니다. 물론 좋은 목적으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이지만, 의도와 다르게 스스로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결과적으로는 멘토나 목회자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도록 유도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목회자나 멘토를 통해 답을 얻는 방식이 반복적으로 경험되는 것은 한 인간의 자율성과 자립성의 경계가 침범되는 위험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목회자가 성도들 양육하면서 성도가 심리적으로 건강하게 자립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또한 지속해서 고민하고 공부해야 하는 영역인 것 같습니다.

Q: 기독교 상담가로서 한국 교회와 나누고 싶으신 이야기가 있으신가요?
A: 저는 한국 교회가 양적으로 성장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자부심을 가져도 되지만, 질적으로 성장했는가에 대해서는 깊이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질적인 측면이라는 점은 과연 성도들을 건강한 하나님의 자녀로 길러내고 있느냐는 것을 의미합니다. 앞서서 교회 안에서 상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있다는 점을 말씀드렸습니다.
부정적 인식이 형성되는 데는 심리적 어려움이나 부정적인 정서들을 믿음 부족 혹은 영성 관리를 못 했기 때문에 빚어지는 현상, 즉 한 사람의 믿음의 문제로 인식하는 것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런 시각에서 심리적인 문제를 경험하고 있는 분들을 바라보면 미흡한 영성에 대해 부정적 자기 개념과 죄책감까지 더해져 심리적 고통이 가중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심리적 문제를 영성 관리를 안 한 것으로, 믿음이 없는 것으로 보는 인식은 아직 교회 안에서 보편적인 시각으로 보입니다.
또한, 신앙생활이 믿음의 결단 외에 다른 수단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데, 기뻐야지, 왜 우울해? 그건 문제가 있지. 기도하는 사람이 우울할 수는 없지”라고 말하는 분들의 조언으로 자신을 더 자책했던 사람의 경험을 종종 듣게 됩니다. 하지만, 성경 안에 보면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다양한 인물들이 나옵니다. 이들 안에 있는 심리적 어려움은 성경에서도 실재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고, 그 인물들이 겪는 고통은 하나님에 대한 기도와 호소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심리적 어려움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해 조금 더 공감적이고 열린 마음으로 목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현실적 고통과 마음의 번민함을 참 솔직하게 하나님 앞에서 토해냈던 인물입니다. 다윗이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기도로 고백하였기에 셀라(그의 고통이 그쳤다는 의미)라고 기도를 마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성도가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을 올바로 만나도록 교회가 성도를 도우려면, 성도들의 심리적 문제를 축소하지 않고 왜 이러한 지경에 이르게 됐는지를 자각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과정은 신앙 행위에만 매달리는 과정과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개개인의 성도들이 건강하게 회복되는 것이 교회의 회복과 직결된다고 생각합니다. 성도 개인과 그 가정이 건강해질 때, 교회 공동체가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성도 개개인의 문제를 다루지 않고, 신앙 행위를 통해서 각자가 해결하라고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때가 있습니다. 개개인의 심리적 문제는 조심스럽게 다루어져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에서 간증이나 나눔을 통해서 자신의 문제를 나누었다가 이후에 심리적으로 더 어렵게 될 수도 있습니다. 개인의 내밀한 이야기들을 다루는 데에는 다양한 안전장치들이 필요합니다. 어느 정도의 경계를 정해주고 안전하게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는 것이 성숙한 교회의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한 인간의 심리적 안정감과 영적인 안정감은 상당히 맞닿아 있다는 것입니다. 심리적 안정감은 자신과 타인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돕고 이러한 올바른 관계의 정립은 말씀을 올바로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가령 강압적이고 권위적인 아버지를 두었을 경우에 이 건강하지 않은 관점이 그대로 하나님에게 투영된다고 가정해 보면, 성경 전체에서 말씀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을 보게 되는 것이 아니라 통제하고 잘못하면 벌을 주는 나의 아버지의 이미지를 통해서 하나님을 볼 수밖에 없습니다. 상담을 통해서 내면의 문제가 해결되었을 때, 말씀을 더 깊이 읽고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심리적 안정감이 결핍된 상황에서는 우리가 본질적으로 애착을 형성해야 하는 자리에 하나님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두고 이들과 애착을 형성하거나 이들의 인정을 받고자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은 본질적으로 누군가로부터 공급되는 환상적인 기대와 이를 제공하는 이상화된 대상을 찾고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목회자들이 그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천지와 같은 이단들이 개인들의 심리적 취약점을 이용해서 포교하는 것은 심리적 안정감이 신앙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상담을 통해서 심리적 안정을 회복하는 분들이 하나님과의 더 건강하고 단단한 관계를 맺어가시는 경우를 종종 보아왔습니다. 교회에서도 이런 부분들에 대해 인식을 새롭게 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Q: 한국 교회를 보실 때 가장 마음이 아프신 점은 무엇인가요? 그런데도 우리가 희망을 찾는다면 어디서 찾을 수 있겠습니까?
A: 교회가 건강한 성도의 삶에 대해 어떤 모델을 정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도들은 일주일에 하루, 주일에 잠깐 모여서 예배를 드리지만, 결국 다시 현실로 돌아가서 더 많은 시간을 살아내야 합니다. 그런데 그 현실에서 느껴지는 죄책감들이 어떻게든 처리가 되어야 하는데 이런 부분들이 이상화된 교회 생활에 눌려서, 교회 안에서는 정작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 대화할 공간이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죄에 대해서 타협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정말 나의 어떤 부분이 반복되는 죄의 패턴을 선택하게 하는지 인식하고 바르게 대처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이런 부분이 교회 안에서 찾아볼 수 없어서 아주 아쉽습니다. 저희 상담가들의 숙제이기도 합니다. 중요한 점은 내가 나를 올바로 알 때 타인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 성도들이 자신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건강한 교회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서도 정말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기를 소망하고 있고 꿈꾸고 있습니다. 아울러서 한 사람을 건강히 세우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 사람을 살리고 한 가정을 살리는 일, 정말 교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많은 성도를 만나고 있는데, 각 교회에서 심리적으로 고통 받는 성도들 한 분 한 분 정말 소중히 여겨주시고 도움을 주시는 일을 하셔야 합니다. 이분들이 건강한 성도로, 이분들의 가정이 건강한 가정으로 회복되도록 힘써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또 목회자들에 대한 돌봄도 필요합니다. 상담가들도 우울한 분들을 많이 만나면 우울해집니다. 저희는 정기적으로 심리검사도하고 상담가끼리 서로 돕는 모임이나 구조가 있습니다. 반면에 목회자 그룹 안에 그런 보호장치가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목회자들도 성도들의 어려운 사연을 듣다 보면 자신의 심리적 상태에 영향을 받으실 텐데, 이들의 심리적 안정에 교회가 관심을 두고 돌보면 좋겠습니다. 목회자들이 심리적으로 건강하게 서야, 선포되는 말씀도 건강하지 않을까요? 한국 교회는 너무 각자도생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목회자, 리더십 그룹 그리고 성도들 모두 개인적인 아픔들을 각자 알아서 해결하고 계시지는 않은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상담가로서 내담자가 회복되는 것을 보면서 저도 같이 회복되는 경험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특히 성도들의 경우는 회복의 과정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직접적으로 목격하는 은혜를 누리고 있습니다. 동일하게 적용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지만 목회자들도 성도들이 회복될 때 자신도 회복하는 힘을 얻으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생각해 보면, 성도의 회복은 목회자의 회복과도 연결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교회에 참 큰 규모의 대형 교회들이 많습니다. 저는 그 교회들의 건물을 지날 때마다, 그 건물이 아름답고 자랑스럽기보다는 좀 부끄럽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그 큰 규모의 건물을 짓기 위해서 많은 헌금이 모였을 것이고, 어쩌면 성도들에게는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었을 텐데, 과연 그 성도들의 내면도 커다란 건물처럼 든든하고 단단하게 지어져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 커다란 교회 안에서 개개인들의 아픔이나 연약함이 소중하게 다루어지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은 성경의 이야기는 에덴에서 쫓겨나는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께서 가죽옷을 입혀주시는 장면입니다. 죄를 짓고 수치심을 느낀 아담과 하와가 무화과 잎으로 어설프게 자신들의 수치를 가립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가죽옷을 지어서 그들의 수치를 가려주십니다. 신학적으로 옳은 해석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 장면이 죄를 씻어주시는 복음을 말하는 것 외에도, 제게는 수치를 고쳐주시는 것이 아니라 가려주시는 하나님, 즉 우리의 수치를 용납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습니다. 말씀이 교회에 있고, 말씀하시는 그 하나님을 우리가 경험하는 것, 수치를 지적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수치를 가려주시고 용납해 주시는 하나님을 만남으로써 성도 한 명 한 명이 오늘을 성도로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가 상담을 공부하면서 하나님을 깊이 만나고 저 자신을 용납할 수 있었던 것처럼 다른 분들도 용납해 주시는 하나님을 만나면 우리의 아픔으로부터 회복되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지금의 한국교회에서 희망을 품어볼 수 있는 이유는 우리를 용납하시는 하나님께서 계시기 때문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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